이민희/ 여민동락 살림꾼

"왜 자꾸 목욕을 허라고 혀? 안해, 안한다구. 어제 했다는디도 또 허라네." "어르신, 어제 하셨어도 오늘 한번 더 하셔요. 등도 시원하게 밀어드릴게요." "아따, 싫다니께 그려. 징허게 귀찮게 허네이." "헤헤헤, 그러지 마시고 하셔요. 얼마나 좋아요. 시원하고 개운하고.." 몇 번의 실랑이가 더 오고 간 후에야 어르신은 못이기는 척 목욕탕으로 걸음을 옮겼다. 매주 목요일, 목욕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풍경이다. 이제는 모시는 이들도 요령이 생겼다. 목욕하는 날이면 아침부터 어르신을 살살 꼬셔(?) 오늘은 씻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야 만다.

내가 사회복지사로 있는 주간보호센터에는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치매 어르신들이 예닐곱분 계신다. 치매를 앓고 있는 어르신에게 매일 매일은 늘 처음 겪는 새로운 일상이다. 어제했던 말과 행동을 금세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처음'의 소중함을 알기에 누구 하나 어르신의 행동에 짜증을 내지 않는다. 이분들 덕분에 웃고 이분들을 통해 인생을 배운다. 물론 노인복지 현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전문가답게 능숙하게 대처하기란 쉽지 않다. 어르신들을 예우하려는 시도와 행동들이 오히려 어르신들의 자존감과 자립의지를 훼손하는 어이없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때문에 이 일은 끊임없는 성찰이 필요하다.

프리랜서 편집자인 가노코 히로후미의 <정신은 좀 없습니다만 품위까지 잃은 건 아니랍니다>라는 책은 일본의 매우 특별한 노인요양시설 '다쿠로쇼 요리아이'에 관한 이야기다. 이야기는 외부와의 접촉은 철저히 차단한 채 '객사할 각오'로 버티는 험악한 치매 노인과의 만남으로부터 시작한다. 노인은 오랫동안 씻지 않아 오물이 두 다리를 타고 흘러내렸고 그녀와 그녀의 집에는 악취가 진동했다. 등은 굽었고 옷은 갈아입지 않으니 그 모습이 영락없이 요괴같다고 해서 마을 주민들을 그 노인을 '요괴할멈'이라고 불렀다. 간병 전문가 시모무라는 의연한 모습으로 치매에 걸린이 굉장한 할머니에게 빠져들었다.

'요리아이'의 철학은 노인 한 명이라도 그의 삶을 온전히 책임진다는 것이다. 치매에 걸린 노인의 혼란과 어려움을 함께 겪으며 그들에게 공감하고 그들과 맞추려고 한다. 무분별하게 그들을 구속하거나 제지하고 흐름을 방해하면 안 된다고 믿는다. 강 하나하나에는 나름의 흐름이 있듯이 바다로 향하는 인생의 여정은 각자 다르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는 노화현상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 '치매'를 마치 업병(전생의 악업 때문에 생긴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병)처럼 취급하고 '예방'을 외치는 풍조에 대해 "정말 그럴까요?"라고 되묻는다.

치매라는 질병에 안 걸리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혹여 발병하더라도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주간보호센터에서 치매 어르신들을 모시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치매라는 질병에 대해 과도한 공포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되새겨보게 된다. 치매 초기 단계는 약물치료를 병행할 경우 일반인과 거의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일상 생활이 가능하다. 중증이라 하더라도 가족들만 간병을 전담하는 대신 적절한 보건복지서비스를 연계하고 사회가 책임지는 시스템을 갖춘다면 얼마든지 안정된 노후를 보낼 수 있다. 오히려 치매를 더럽고, 위험하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무서운 질병으로 생각하는 과도한 공포심이 이 병에 대한 적절한 대처를 방해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요리아이'의 간병인들은 "치매에 걸린 사람들을 거치적거리는 존재로 생각하는 사회는 언젠가 치매에 걸리지 않은 사람도 거치적거리는 존재로 생각하게 된다""쓸모가 없어 도움이 안 되는 존재로 또는 국력을 떨어뜨리는 밥도둑으로. 아무리 예방하려고 노력해도 소용없다. 자기는 치매에 걸리지 않았다고, 자기는 치매에 걸린 사람이 아니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소용없다"(191)고 충고한다.

치매 환자라고해서 사회와 격리되어 시설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살아온 익숙한 터전에서 평범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치매 환자를 시설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일상세계로 끌어내는 것이다. '배회'의 문제를 안고 있는 치매 노인도 방치하면 문제가 되지만 함께 걸으면 '산책'이 된다. 이것은 '치매에 걸려도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노인들의 욕구와도 맞아떨어진다.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망이 곧 안전망이 되는 복지, 치매에 걸렸을지라도 익숙하고 평범하고 평화롭고 행복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복지가 가능할까. 유쾌한 치매 세계로의 초대, '요리아이'는 그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