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석/ 전 영광읍장

잘 주무셨습니까? 주무시는데 깨우지는 않으셨습니까? 오늘 좋은 하루 보내셔요!” 하고 전화를 하는 사람. 가르치지 않았고 전화하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거의 매일 나에게 안부 전화를 한다. 그 사람은 발달장애인(, 56)이다.

나는 발달장애인의 법적후견인이다. 후견인 제도는 2014년에 발달장애인지원법이 제정되어 성년후견, 한정후견, 특정후견 제도를 두고 있다. 이법은 발달장애인(자폐성 장애, 지적장애)이 일생 동안 삶의 전 영역에서 지원이 필요할 경우 법원의 허가를 얻어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나는 특정후견에 속한다.

내가 후원하고 있는 그는 지적장애 2급으로 친인척이 아무도 없다. 본인 말로는 아주 어렸을 때 집에서 나와 떠돌이 생활을 하였다 한다. 왜 집에서 나왔느냐고 물어보면 부모가 싸움을 많이 해서 집을 뛰쳐나왔으나 집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염전에 정착하여 18년간 현대판 노예생활을 하다 풀려난 사람이다. 여기저기서 안 해 본 일 없이 갖은 고생을 하면서 살아 온 것 같다. 그의 몸 상태를 보면 어깨뼈가 골절되어 두 군데나 튀어나오고 손목을 많이 사용하였는지 손목 굴 증후군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시키는 일만하고 살아온 것 같다. 장애는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 모르겠다.

그는 몇 년 전에 영광으로와 어떤 시설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중에 함께 있기 싫다고 호소하여, 나와 첫 인연을 맺게 되었다.

나와 처음 대면했을 당시에는 수심이 가득 찬 얼굴에 내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나이는 몇이냐고 물어 보았으나 주민등록증만 내밀어서 자기 나이도 모르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는 염전에서 풀려나올 때 인권변호사가 재판을 하여 피해보상금으로 받은 돈이 있었다. 나는 우선 살집을 알아보고 마침 혼자 살기에 적당한 작은 방이 있는 빌라 한 칸을 장만해 주었다.

집을 마련하니 필요한 것들은 아내의 도움을 받아 간단한 취사도구 등을 준비하여 밥을 해 먹으며 살아 갈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는 돈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을 뿐더러 한글이나 숫자도 모른다. 처음에는 돈을 세는 정도는 알겠지 하고 10만원을 주어보았다. 이튼 날 어디에 사용하였는지 물어보았으나 무엇을 구입하였는지도 모르고 돈만 없애서 체크카드를 만들어주고 마트에 같이 가서 물건구입 요령을 알려주었다. 처음에는 체크카드 1일 사용 한도액을 5만원으로 만들어 주었으나 하루에 거의 다 사용하기에 3만원으로 줄였다. 앞으로 2년 후면 기초수급자가 될 수밖에 없어 소비습관을 줄여야 하는데 걱정이다.

그는 집에서 숫자 한번만 누르면 나와 전화통화가 가능하도록 설정하였더니 매일 한두 번 전화를 한다. 그는 때론 오늘은 일요일인데 선생님은 아시는가요?” 하고 묻는다. “나는 잘 모르는데 자네는 어떻게 그리 잘 알고 있는가?”하고 칭찬 해주면 크게 웃으며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는 나와 3년간 신뢰가 쌓이다 보니 자존감을 회복한 것 같다. 이제는 농담도 곧잘 하며 전화해서 먹을 반찬이 없다고 하거나 변기가 고장 났다는 등 한 가족인 양 스스럼없이 말한다. 서로 자주 왕래하다보니 정이 들어 나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것 같다.

한때는 맥주병이 방에 너부러져 있어 많이 먹으면 건강에 해롭다고 자주 타일렀더니 이제는 먹지 않는 것 같다. 본인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여 주며 잘못하고 있는 행동에 대하여는 질책하지 않고 계속 시정 하도록 하였더니 잘 듣는 것 같다. 웬만한 일은 스스로 잘 처리하고 공공장소에서 쓰레기를 줍기도 하고 무거운 짐이 있으면 같이 운반도 해주는 착한사람이기도 하지만 그에게는 안 좋은 일도 가끔 발생한다.

지나가는 승용차가 뒤에서 밀쳐놓고도 돈 몇 푼주고 그냥 가버리는 가하면 돈을 셈하는 것이 서투니 바가지 쓰는 경우도 있다.

장애인은 이웃의 도움이 필요하다. 최대한 의견을 존중해 주며 스스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반면에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내 가족처럼 사랑과 도움으로 보충해 주어야 한다. 장애인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가 하루빨리 정착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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