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택/ 시인

1월은 새해의 첫달이여서 바쁘고 2월은 구정이 있어서 또 신경을 써야할 달이다. 그런가하면 3월은 새학기 새학년을 맞이하는 달이여서 바쁘다. 이제 첫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새내기 학부모들은 설렘과 함께 감당해야 하는 일도 많을 것이니 걱정의 연속이 아닌가 싶다.

옛날 같으면 그럭저럭 챙겨서 할머니나 어머니 손을 잡고 학교로 가는 모습 이외는 별 다른게 없었지만 지금은 무엇이 그리 복잡한지 아이하나 챙기는데 해외 유학길이라도 나서는 것처럼 복잡한 모양이라. 경기는 좋지 않아서 어렵기 짝이 없는데 예닐곱살의 어린시절부터 눈과 입은 고급화가 되어 있어 책가방 하나에도 온 가족이 난리법석대는 모습을 보면 또 끼니를 굶던 시절의 보릿고개가 자꾸 가슴 한켠에서 밀고 나오려 하는 것은 우리세대만의 과거가 아닐까.

일전에 버스 속에서 들은 이야기다. 손자 녀석 입학기념으로 선물하나 사주겠다고 백화점에 데리고 나갔다가 손자의 마음만 상하게 하고 말았다는 이야기였다. 버스 저 뒷켠에서 하시던 얘기였지만 그 소리 말고는 버스안이 비교적 조용했던 탓이라 잘 들렸다. ‘이삼만원쯤 주면 살테지하여 백화점에 들어가는 순간 손자 놈은 잽싸게 혼자서 뛰어가더니 가방가게 앞에서 나와 제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가 가방 하나를 들쳐 보이고 있었다. 흐릿한 눈으로도 그냥 만단위가 아니라 한단계 더 십만단위가 표시되어서 나는 그 사이 풀이 죽어 호주머니안을 손으로 뒤적거렸다. 그 흔한 카드 한 장 없는 내 신세에 이걸 어떻게 헤쳐나가나 가슴을 콩콩거리게 했다는 말씀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그 할아버지의 맺음 말씀이 재미가 있었다.

딸하고 같이 가서 다행이지 며느리하고 같이 갔다면 시애비 꼴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니 그날 백화점 같이 간 일이 세상물정을 공부하는 좋은 기회도 되었지만 그 가방 하나가 농촌에서 사는 우리 세식구 한두달 식량값하고 같으니 1년 농사 서빠지게 지어봐야 손자놈 가방 2-3개 사면 끝나지 않겠는가. 몇날이 지났어도 TV에서 물가 이야기만 나오면 가슴이 터지면서도 화면 속에서 종종걸음으로 그 백화점에서 보았던 그 비싼 가방을 매고 가는 아이가 나오면 그날의 손자놈이 떠오르니 그것이 손자사랑이더라고.

두 노인이 박자를 맞춰가며 가방을 산 이야기 시작으로 계속되는 세상사는 이야기는 생생한 토크쇼보다 더욱 실감이 났었다.

가방 하나가 이럴진대 옷가지며 먹을거리 등은 어쩌겠는가 유치원 다니며 보아왔던 것이 잘 입은 짝궁 친구들의 좋은 옷이며 좋은 장난감에만 익숙 되어 투정을 부려댈 것이니 새내기 엄마들도 이만저만한 고생이 아니겠구나

어린 자녀들의 높아진 눈높이에 속터지는 새내기 엄마들의 멍드는 가슴, 그래서 새벽부터 서두르고 서둘러 집안정리 끝내고 일터를 찾아 나서지 않겠는가 그러다보니 아이들의 하교 길에는 한번도 관심을 줄 수 없을뿐더러 아이들은 끝나면 끝나는 대로 여기저기 학원을 전전하고 집에 가도 엄마는 집에 없을 것이니 엄마의 사랑 속에서 지내야 할 어린아이들의 생활은 무너져 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일터를 그만두고 아이들만을 위해 집에 있다 보면 가방하나 사줄 수 없는 형편이 될것이고 이러도 저러도 못해서 우선은 가방을 사야하기 때문에 일터를 찾아나서는 우리들 새내기 엄마들의 마음은 누가 어루만져 줄것인가

일터에서도 수십번은 아이들의 생각으로 일손이 안잡혔을 것이니 정말 걱정되네. 학교는 점점 삭막해지고 하교 길마져도 두려운 상황에서 ……. 누가 이 어지런 병세에 묘약을 칠것인지 새학년 새학기의 달 3월을 앞에 두고 남의 일 아님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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