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수필가 사진가

지난 223일 영광의 대표적 문인 모임인 칠산문학이 30주년 책자 발행과 기념식을 가졌다. 부대행사로 수원문인협회와 문학관련 업무협약 MOU를 체결하고 조운 선생 생가를 방문하기도 했다. 모처럼 올라온 단체 사진은 그래서 더욱 보기가 좋았다. 이번에는 반짝 이벤트로 끝나지 않으리라 믿는다.

30년이면 짧은 역사가 아닌데 발자취를 보기 위해 서가를 뒤져보았지만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기 발간된 칠산문학 책자를 몇 권 뒤져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다. 남아 있겠지만 쉬운 열람이 불가능하면 의미가 없다. 최근 침체 되었던 분위기만큼이나 회원들 활동도 뜸했던 게 사실이다. 신임 회장의 어깨가 무거울 것이다. 문학의 문제는 사람이다. 글쟁이의 특징만은 아니겠지만 경험의 느낌이다. 급하면 찾고 일이 끝나면 문자도 전화도 관심에서 멀어지곤 한다. 여기에 적당한 반목과 질시가 더해지면 내부는 싸늘해지고 일 년에 한번 모이기 힘들다. 깜짝 이벤트로는 영광 문학을 과거 전성기로 돌리지 못한다. 사람 사이의 끈끈한 정과 관계가 중요한 이유다. 적어도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글이 자신이고 자신이 글이어야 한다. 글 쓸 때와 일상에서의 자신이 전혀 다르다면 글과 자신 둘 중 하나는 위선이다. 미당의 시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는 진정한 시인이 아니다. 아름다운 시어를 찾아내는 기술자일 뿐이다. 영광에서 시인 등단이 가장 활발한 시기가 요즘 2~3년이다. 주위에서 아는 사람은 거의 등단을 하는 추세다. 이른바 시인이 된 것이다. 좋게 생각하고 싶지만 뭔가 개운치 못하다. 이들 중 몇이나 문법과 문리를 깨우치고 맞춤법을 틀림없이 구사할 수 있을까. 나 역시 아직 일본과 중국식 표기법을 벗어나지 못하는 우를 이따금 범하고 있음에 부끄럽지만 내 눈에도 선 글발이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여담으로, 서예 분야에서 기본을 갖추지 못하면 현대 서예라는 장르를 선호한다. 파자(破字)를 하고 법을 무시해도 모던 켈리그라피에서는 문제 삼지 않는다. 그림은 추상화다. 엄청난 내공을 쌓은 피카소 같은 입체파 거장들의 작품이 있는 반면 조영남이나 임지호 같은 사이비 부류의 그림도 있다. 마음의 형상을 표현한다며 마음대로 빗자루질을 해도 유명인이라면 고가로 판매가 된다. 감탄사는 모두 비슷하다. ‘뭔가 느낌이 있다.’는 것이다.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으니 당연하다. 글쟁이는 역시 시인이 압도적이다. 문법을 정확히 몰라도 되고 단어가 틀려도 된다. ‘시어적 표현이라는 말로 모두 덮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문인이 시인이다. 특히 영광의 일부 시인들은 부끄러움도 없다. 자신을 모르니 당연하다. 행만 나누면 시가 된다고 생각한다. 이어서 붙여 놓으면 틀림없는 초등학생 산문이다. 그러면서 시는 다른 문학과 격이 다르다고 강변한다. 남의 글을 평하는 것은 큰 결례인줄 알지만 시인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기에 돌 맞을 준비를 하고 직설을 해본다.

정종 박사는 생전에 시인과 시·인을 구분했다. 시와 사람이 다르면 안 된다는 뜻이다. 중간에 찍힌 점은 아마도 욕심일 것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을 돌아보자. 혹시 내 글이 욕심으로 흐려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이가 들수록 자리에 연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인의 글을 질시하고 있지는 않은지.

영광은 일찍이 문화가 성했던 지방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데올로기라는 족쇄에 걸려 추락했고 지방자치라는 2차 덫에 걸려 암흑기로 들어가 버렸다. 조운 생가는 복원은커녕 상징의 석류나무도 훼손되었고 이화재단 이사장이었던 화암 신봉조 선생이 영광까지 내려와 국제공통어인 에스페란토를 조운, 김형모, 박화성에게 강의했던 전설 같은 사실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영광향교 은행나무에 조운선생이 소설가 박화성을 위해 만들어 주었다던 그네는 작품 그네로 남아 전하지만 이들의 기록을 남길 한 뼘 장소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칠산문학의 이번 행사가 ‘30주년 이벤트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태동의 시발점이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모든 출발은 사람이다. 신임 임원진은 가족 같은 칠산문학을 추구해야하며 자주 만나 문학의 발전방향을 논의해야 한다. 문학의 산실인 영광에 적어도 문학관 하나쯤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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