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죽음(16)-사형(세네카)

영광백수 출신/ 광주교육대 교수/ 철학박사

예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인생의 다섯 가지 복으로 장수(長壽)와 물질적인 부, 건강, 유호덕(攸好德-덕을 베푸는 일), 그리고 고종명(考終命-평안하게 죽음을 맞이함)을 꼽았다. 고종명 대신 많은 자손이나 건강한 치아를 드는 경우가 있긴 하나, 예나 지금이나 고통 없이 죽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바일 것이다. 그러나 훌륭한 철학자 가운데에도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세계 4대 성인 가운데 동양의 두 성인(공자, 석가모니)이 자연사한 데 반하여, 서양의 두 성인은 사형을 당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감옥에서 독배(毒杯)를 마시고 죽었으며,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려 숨을 거두었다. 그 다음으로 소개할 사람이 스토아 철학자인 세네카이다. 엄격한 금욕주의에 입각하여 내면적인 덕을 얻는데 온 힘을 다했던 그가 어떻게 하여 제자인 네로 황제로부터 사형을 당했을까?

로마의 칼리굴라 황제는 한때 정치를 잘해나갔다. 그러나 중병을 앓고 난 후부터 난폭한 정치를 펼치다가 근위대 장교의 손에 살해되고 말았다. 근위대는 칼리굴라의 숙부 클라디우스를 황제로 추대하였다. 한편 칼리굴라의 여동생인 소 아그립피나에게는 전 남편과의 사이에 태어난 네로라고 하는 아들이 있었다. 그녀는 아들의 교육을 위해 코르시카 섬에 유배되어 있던 세네카를 궁중으로 불러들인다. 야망이 많았던 그녀는 어느 날 클라디우스 황제를 독살한 다음, 열일곱 살의 아들 네로를 황제자리에 앉히고 그 뒤에서 섭정(攝政)을 실시한다. 그러나 네로는 어머니를 죽이고 본처(本妻)인 옥타비아와 이혼한 다음, 친구 오토의 전처(前妻)인 폽파이아와 정식으로 결혼한다. 추방당한 왕후는 나중에 처형당하고 말았다. 간신들에 둘러싸인 네로는 이때부터 어린 시절의 가정교사였던 세네카의 말을 듣지 않기 시작한다. 그 무렵 마침 로마에는 원인 모를 대화재가 발생한다. 위기에 몰린 네로는 그 죄를 기독교도들에게 뒤집어씌워 대학살을 자행한다. 다음 해에는 한 원로원 의원의 음모가 발각되어 많은 사람들이 처형되었는데, 그 가운데에는 페트로니우스와 그의 애인 루카누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자 네로는 루카누스의 백부(伯父)인 세네카에게도 음모 가담의 혐의를 씌워 자결을 명하기에 이른다.

처음에 동맥을 끊었으나 평소에 조식(粗食-검소한 음식을 먹음)하였던 관계로 피가 나지 않았다. 이에 허벅다리와 전체 몸의 동맥을 끊었다. 그래도 죽지 않았고 독약에도 효과가 없었으며, 손발을 묶었으나 얼음처럼 차져서 피가 나지 않았다. 드디어 뜨거운 물에 집어넣었는데, 이때 세네카는 하인에게 이 물은 주피터 신(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에 해당)의 거룩한 물이라고 말하면서 죽었다고 한다. 다른 설에는 또 그가 당시의 자살방법대로 손발의 핏줄을 통해 독약을 흘려 넣은 뒤, 한증탕의 열기 속에서 죽어갔다고도 한다. 당대의 유명한 스토아학자는 결국 세기적인 패륜아인 제자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세네카가 죽은 후 네로의 치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그의 혹독한 공포정치는 서기 68년 갈리아를 필두로 전국에서 반란이 일어나게 하였고, 이러한 상태에서 근위대와 원로원마저 그에 대한 충성을 거부하였다. 마침내 네로는 왕궁으로 몰려드는 반란군들의 말발굽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목에 칼을 찔렀으니, 이때 그의 나이는 겨우 서른 한 살이었다.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