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17 월 11:12
> 뉴스 > 여론마당 > 여민동락에서
     
불완전한 천국
이민희/ 여민동락공동체 살림꾼
2018년 07월 09일 (월) 10:36:45 영광신문 press@ygnews.co.kr
   

이런 상상을 해 보자. 공자와 예수와 부처가 한마을에 산다면? 성인군자들이 모인 마을이니 어떤 어려움이나 갈등도 없이 완벽할까? 꼭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사람이 모여 사는 곳에는 언제나 크고 작은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갈등을 슬기롭게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공동체 의식도 더 성숙해지고, 공동체로의 단결력도 더 강화될 것이다. 모름지기 인간이기 때문에 '완벽'이라고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설사 공자와 예수와 부처가 한마을에 산다 해도 말이다.

인간의 유토피아에 대한 갈망은 세상을 바꾸는 동력이 되기도 했지만, 광기와 야만으로 인류사에 큰 질곡을 낳기도 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우월한 인종인 게르만족만의 유토피아 건설을 위한 수단이었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강제수용소들도 비슷한 명분을 내세웠다. 다수의 꿈을 제어하고 지배하려는 환상에서 비롯된 획일성의 추구는 파시즘과 독재를 낳았다. 완벽한 사회가 곧 나타날 것이라는 착각, 미래에 나타날 혹은 만들어낼 천국을 위해 현재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사고는 모두 허황된 약속이다.

유토피아는 완결되고 완성된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오히려 과정에 가깝다. 현재의 삶을 만들어가는 방식이며 다른 현재를 창조해나가는 하나의 여정이다. 사회운동가인 존 조던과 이자벨 프레모 부부가 쓴 책 <나우토피아>는 완벽을 추구하지는 않지만 자본주의 내부에서 '다른 유토피아'를 실행하며, 자본주의 세계에 기꺼이 대항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자본주의와의 단절을 선언하고 '오래된 미래'로 돌아간 이들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사회가 결코 완벽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기존 사회보다는 훨씬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고 만들어 갈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한다. 이 책의 저자는 오히려 유토피아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지금 실현가능한 실천의 태도라고 강조한다. 한마디로 말해 '불완전한 천국'인 셈이다.

영국에서 가장 생태학적으로 지속가능한 마을이라고 평가받는 '랜드매터스'(Landmatters)'영속농업'을 통해 땅과 함께 공생하는 삶을 추구한다. 영속농업이란 전통적인 지혜와 현대의 과학적인 생태학을 조화시켜 지속가능한 생활체계를 고안해내는 방식이다. 랜드매터스 사람들은 소비지향적 사회가 이끄는 전 지구적 재난을 피할 방법은 자연의 기능, 자연의 회복력으로부터 교훈을 찾는 것이라고 믿는다. 나아가 단순한 자급자족을 넘어서 지역 주민들과 지속적인 상호관계를 형성하고 회복력을 갖추는데, 그리고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는데 특별한 주의를 기울였다고 한다. 이들은 속도를 늦추는 거야말로 아마도 현재의 우리 문화 속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반체제적인 일이라고 말한다.

프랑스의 대안학교 '파이데이아'(Paideia)의 아이들은 학생과 교육자의 권리를 동등하게 인정하는 분위기속에서 교육 과정 전반을 스스로 논의하고 결정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고 비로소 자유의 본질적인 개념에 접근하게 된다는 것이 파이데이아 교사들의 생각이다. 학생들은 자유를 위한 공동체 차원의 상황조건을 만들어내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유로워지는 법을 배운다. 이 매커니즘 속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공동의 책임이 나란히 존재하며 좀 더 강한 수준의 자유로 이르기 위해 서로를 북돋운다.

처음에는 미약했으나 결국 역사를 바꾼 새로운 시도들은 주류보다는 변방에서 잉태된다. 인류의 역사는 변방이 새로운 중심이 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변방은 단순한 공간적 의미가 아니라 변방성, 혹은 변방의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고 신영복 선생은 변방의식에 대해 우리가 갇혀 있는 틀을 깨뜨리는 탈문맥이며, 새로운 영토를 찾아가는 탈주 그 자체이다. 변방성 없이는 성찰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특히 위기 상황일수록 이러한 실험들로부터 영감을 얻고 회복력에 대한 교훈을 찾아야 한다. '불완전한 천국'인 이 유토피아를 일구는 이들은 대안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변화를 창조함으로써 미래에 대한 환상과 역사의 종말로부터 현재, 바로 이 순간으로 유토피아를 데려왔다. 새로운 세상은 어떤 완벽성을 갖춘 부동의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적응하고 변화하는 역동의 과정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영광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 영광신문(http://www.ygnew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영광신문 | 기사제보 | 제휴안내 | 광고문의 | 불편신고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이메일무단수집거부 | 편집규약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읍 물무로2길 37번지 | ☎061-353-0880-0881 | fax 061-353-0883 | 청소년보호책임자 : 채종진
등록번호(전남 아00220) | 등록연월일: 1997-02-27(창간) | 발행인 편집인 대표이사: 박용구
Copyright 2009 영광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yg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