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사진가 수필가

광주시에서 고등학교 시험지 유출사건으로 시끄럽다. 가장 중요한 시기인 고3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번 시험지 유출은 기말고사 뿐만 아니라 중간고사에서도 발생했다는 것이고 결국 해당 고등학교를 압수수색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행정실장과 학부모 간에 금품이 오갔을 가능성과 윗선 개입까지 염두에 둔 행동이다. 실제 해당 학부모는 학교에 300만 원의 발전기금을 냈다고 전한다. 시험지 유출 건은 최근 서울과 부산에서도 연달아 벌어졌다. 학생들이 벌인 사건으로 퇴학처분으로 종결은 되었지만 점수가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 사고였다.

한국은 벌써 오래 전에 사교육이 공교육을 압도하고 있는 이상한 나라다. 교사 역시 공교사보다 학원 등의 사교사 숫자가 앞 선지 이미 오래다. 학부모의 비상식 행동 역시 이해가 힘들게 발전했다. 학교에서의 체벌은 용납이 안 되지만 학원에서는 때려서라도 가르치라고 부탁을 한다. 체벌이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학부모의 머릿속이 문제다. 학교는 법적으로 가는 곳이고 공부는 학원에서 한다는 식이다. 학과의 보충기관으로서 학원 존재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시험을 위해서 진짜 공부를 하는 곳으로의 인식이 훨씬 강하다. 대한민국은 시험공화국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의 의미는 교육의 상실성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애들의 장래가 오직 시험이라는 단순한 행정적 판단 기준에 의해 결정이 되는 사회에서 학부모의 관심은 시험으로 쏠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생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관문은 대학에서 거의 결정이 되는 사회이니 누군들 도외시 하겠는가. 더욱이 여기까지 무사히 안착하기 위해선 수없이 치러지는 시험의 관문들을 통과해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시험 기술을 가르치는 학원을 선호하고 심지어 시험지를 훔쳐 자식에게 제공하는 이상한 부모까지 등장했다. 내신 1등급 상향을 위해서 자식에게 부당거래의 부도덕을 시범해 보이는 부모는 흔치 않겠지만 그만큼 우리 학부모의 마음이 간절하다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

어느 시대에나 시험은 존재했다. 우리 조상들도 고려(4대 광종) 때부터 시작해 조선시대의 발전된 과거시험 문화 속에서 살았다. 이른바 미꾸라지가 용이 될 수 있는 관문인 등용문을 통과하면 어느 정도의 출세는 보장이 되었고 신분 역시 상승을 가져왔다. 하지만 시험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부류는 양반이었다. 이들은 전체의 5% 정도에 불과했고 여기에 음서제도를 통해 등용된 사람들이 상당량을 차지했으니 극히 제한된 일부 인구였다. 나머지 양인 이하는 거의 생업에 종사했다. 시험이 전체 국민을 줄 세우는 일은 없었다는 말이다. 특히 당시 교육은 지금처럼 획일화 된 시험만을 위한 공식을 앞세운 교육도 아니었다. 현재에 와서는 답을 골라내는 정석의 기술을 가르치는 교육으로 전락했지만 과거엔 적어도 인성을 따지는 시험이었다. 유교 경전과 정책 중에서 골라 논술하는 단순하다면 단순한 방식이지만 응시자의 정체성과 인성을 따져 구분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인물의 비평과 정책의 평론 등을 논하는 곳엔 부정적 인성이 낄 자리는 없기 때문이다. 완전하거나 완성된 사람은 없다. 단지 우리는 고상해 지려고 혹은 정의로워 지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공부다.

현재 국기를 흔들어 놓고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 인물들을 검색해 보면 이른바 명문대 출신들이 상당히 많다. 특히 서울대 출신들이 나라를 망친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올 정도다. 당연한 결과다. 이번 시험지 유출 사건의 부모 같은 사람들이 부도덕으로 가르친 자녀들이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빼돌린 시험지로 성적을 올린 아이들이 과연 도덕과 정의라는 단어를 알기나 할까. 이들에게 지식이란 흉기에 불과하다. 노자는 덕은 명성으로 무너진다. 명성은 헐뜯고, 지식이 경쟁의 도구가 되면 흉기다. 행함이 없으라고 말한다.

성적이 세상을 덮어버린 현실에서 교육을 바로 세울 제도는 요원하기만 하다. 이제 등교까지 시켜주는 학원도 등장했다. 공교육의 마지막 살점까지 삼키기 일보직전이다. 실력이 좋아 교육대를 졸업한 인재들이 가르칠 기회를 상실한 사회가 되었다. 답안만을 위한 교육은 사회적 흉기를 양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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