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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성포청년회' 창립 100주년이 되는 다음달 8월!
김범진/ 향리학회 회원
2018년 08월 06일 (월) 11:12:37 영광신문 press@ygnews.co.kr
   

전남 법성포에서는 지난 음력 정월 보름에 50세 이상 노인들이 모여 지역사회사업을 돕기 위해 노인회를 창립하였는데, 그 동기는 '지역 청년들의 무능'에서 비롯되었다 고 한다.지금부터 94년 전인 1924316일자 동아일보에 게재되어 있는 기사다.

일제강점기부터 '법성포청년회'는 이렇게 어르신들의 일깨움으로 담금질되면서 지역사회를 선도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법성면, 법성포 청년회 하계 방역 발대식"

한 열흘이나 됐을까? 필자가 늘 상 즐겨 찾던 독바우 게이트볼경기장 앞에 도로를 가로질러 '법성포청년회'에서 현수막을 걸어 놓았다.

법성포 초입으로 자동차 통행량이 많은 곳이니 광고 효과는 그만인 곳이다.

법성게이트볼 경기장 앞, 도로에 '법성포청년회'에서 걸어 놓은 현수막

광고 문안에 눈길이 갔다. 법성면에 쉼표(,)를 찍고 법성포 (띠고) 청년회라고 썼으니 이 광고 문안은 "법성면청년회와 법성포청년회, 두 단체가 여름철(하계-夏季) 방역 발대식을 한다."는 뜻이다. 법성에 청년회가 둘이라니...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치면 될 일을 되짚으며, '법성포청년회'의 지난 일들을 '법성문화진흥원' 소장 사료를 참고하여 되돌아보았다.

 

영광군지 인물 편에 수록되어 있지 않은

'법성포청년회'의 큰 어르신 남궁현 선생

'법성포청년회'는 지금부터 100년 전인 19188월에 창립되어 진내리 232번지에 터를 잡고 '바른 행동, 믿음, 의리'를 앞세우고 태동하였다.

'덤벼라 축구팀'을 결성하여 우리고장사람들은 물론 영광군민의 인기를 한 몸에 받으며 축구 중흥에 앞장섰고, 목포에서 여선생을 초빙하여 글을 모르는 여성들의 눈을 뜨게 하였다. , '예배당'이라하였던 '법성교회''야학교'를 개설하고 배움의 기회가 없는 이들을 일깨웠다. 질령꾼, 실령꾼, 가대기꾼이라 하였던 선창가 노무자들을 대상으로 '노동야학교를 운영하며 교화에 힘썼다. , '청년회관'에 신문열람소를 개소하고, 문예부를 개설하는 한편 악극단을 조직하여 우리고장은 물론 인근 고창, 장성, 심지어 멀리 위도까지 순회공연을 하면서 문화 창달에 매진하며 우리고장 근대화를 선도하였다.

1927년에 이르러서는 비밀재판, 고문, 불법구금, 악법 철폐, 의무교육제 확립, 학교 수업료 면제, 학용품 무상지급, 이혼 자유권 시행, 18세 이하 6시간 노동제 실시, 최저임금법 제정, 20세 이하 남녀 야간근로 금지, 허례의식과 미신타파 등등, 놀랍게도 지금, 이슈화 되고 있는 사회 현안들을 이미 100년 전에 '법성포청년회'영광청년동맹'의 한축이 되어 주창하였다.

1932년에 이르러 일제는 영광군내의 모든 사회단체를 강제해산 조치하였다. 그러나 '법성포청년회'는 이에 굴하지 않고 1935년에 법성포 거류 일본인 청년들과 교류를 표면에 내세우고 '법성포체육회'를 창립하여 수영대회를 개최하는 한편 '경성약전'을 졸업하고 귀향한 영광의 이을호 선생이 소개한 도수체조 보급에 앞장섰다.

1937년에 이르러 일제 경찰은 '영광체육단사건'을 날조하기에 이른다. 결국 이 사건으로 법성출신 서른 한 분이 구속되고, 지루한 재판 끝에 조운(당시 나이 39, 영광), 나원각(" 34, 법성), 김철현(" 26, 법성), 홍종식(" 25, 법성) 선생이 실형을, 남궁현("37, 법성) 선생이 금고형을 받고 형기(10개월) 초과(18개월 복역)로 석방되었다. , '영광체육단 사건'은 입건된 300여 명을 구속 수사하여 조사하고 재판해 보니 주모자 5명 가운데 4명이 법성포사람들이었고, '법성포청년회'가 주도하였다는 판결이었다. 그러나 영광군의 역사는 그리 기록되어 있지 않다. 특히 지금의 '법성포초등학교' 1회 졸업생으로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향리로 돌아와 '법성포청년회'를 이끌었던 남궁현 선생은 일제에 항거하며 영광군내에서 가장 옥고를 많이 치른 항일투사다. 서른 여덟의 짧은 삶가운데 1919'3.1운동'부터 시작하여 1937년까지, 18년을, 가장 왕성했던 선생의 젊은 청춘을 일제에 항거하며 무려 7년 여 년 동안, 형무소를 제집 드나들 듯 하셨다. 그러나 영광군의 정사인 영광군지의 인물 편에 서술되어 있는 인사들의 축에는 끼지도 못했다. 참고로 남궁현 선생은 정부에서 우리나라 훈장서열 2위인 건국훈장을 추서하신 분이며, 20014월에 국가보훈처에서 탄생100주년을 맞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한 분이다.

"나는 명예로운 법성포 청년으로써...''

1937년 이후 '법성포청년회'는 강제 해산되었고 회원들은 일제의 '중일전쟁''태평양전쟁'에 강제 징용되어 피를 흘러야 했다. 이 당시 일제에 강제 징용된 법성출신 청년들은 현재까지 밝혀진 인원수가 359명에 이른다.

8.15 광복이후, 정국의 풍향에 따라 좌우로 나뉜 우리고장 청년들은 동족상잔의 6.25 전쟁터에서 총부리를 서로 겨눠야했다. 휴전이 되자 '법성포청년회''대한반공청년단'의 일원이 되어 자유당 전위대 역할을 한 아픈 역사를 남겼고 4.19혁명 이후부터 구심점을 잃어 이렇다 할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1983년에 이르러 우리고장의 청년활동은 '법성포청년와우회'가 결성되고, '법성청년신의회'가 창립되어 각각 활동하다가 1999년에 이르러서야 '법성포청년회'로 통합되어 오랜 역사와 선현들의 전통을 이어받아 부활하였다. 그러나 영광군지에 수록되어 있는 '법성포청년회'의 연혁은 일천하다.

다음 달 8월이면 '법성포청년회' 창립지 100주년이 된다.

"나는 명예로운 법성포 청년으로써 지역의 발전된 미래가 곧 나와 내 가족의 미래임을 인지하고 내가 태어난 이 땅에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며 다음과 같이 다짐한다. [후략]... 라는 '법성포청년회'의 다짐 문이 새삼 돋보인다.

20186월 말 현재, 법성면에서 공지하고 있는 사회단체가 모두 26개인데, 그 뿌리가 가장 오래인 단체가 '법성포청년회'고 그 다음이 영광군지에 등재도 되어 있지 않은 94년 된 '법성포노인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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