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사진가 수필가

세상이 온통 뜨겁다. 식물은 마르고 저수지의 수면은 이미 바닥을 보이고 있다. 덩달아 고추 값은 2만원을 넘어서고 있다고 한다. 1994년의 지독했던 불더위와 비교하고 111년만의 기록을 말하지만 기억은 희미하고 현실은 가혹하다. 대부분 여름휴가를 다녀왔겠지만 포기한 사람들도 많았다. 휴가를 다녀온다는 의미를 피서라고 정의한다면 사실과 괴리가 생긴다. 휴가는 효율성 없는 무더위 속 근무를 벗어나 가족 혹은 지인들과 어울려 어딘가 다녀오는 것이고 피서는 해석대로 더위를 피하는 것이다. 올 여름처럼 기록적인 열대야가 이어지고 최고 기록이 새로 써지는 경우라면 휴가가 피서라는 공식은 이미 의미가 없게 된다. 남북극을 다녀오지 않는 이상 집 나가면서 벌써 고생이다. 지인들에게 물었더니 진정한 피서는 집에서 시원한 에어컨 아래서 반바지 차림으로 책이나 읽는 것이라는 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런데 피서는 야외 휴가라는 공식이 언제부턴가 우리 뇌리에 고정관념으로 깊게 자리하고 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정말 대단하다. 셋만 모이면 벌어지는 것이 난상토론이요 우김질이다. 모든 분야에서 모르는 것이 없다. 그런데 정작 지식의 원천이 되는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드물다. 오히려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들은 이런 자리에서 조용히 입을 닫아야 하는 기이한 현상도 발생한다. 책을 읽지 않는 민족이 바로 현재의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모르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2018 책의 해는 가을 찬바람이라도 불어야 미동을 할 모양이다.

자료를 뒤지다 보니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7년 국민독서 실태조사가 있었다. 통계는 17개 시도의 성인 6천 명과 초중고 학생 33백 명을 대상으로 했다. 결과 성인은 연간 8.3, 학생 28.6권이었다. 독서 시간은 성인이 평일 23, 주말 27분이고 청소년은 평일 49, 주말 68분이다. 연간 책 구입량은 성인 4, 청소년 4.7권이다. 구입비가 4~5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봐선 인문서는 아닐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그나마 독서량이 지속적인 감소세에 있다는 것이다. 참고서 등을 제외한 일반 도서를 대상으로 한 통계인데 학생들이 28권을 읽는다는 사실에 솔직히 놀랐다. 시험의, 시험에 의한, 시험을 위한 일과로 정신이 없는 청소년들이 보름에 한 권 이상의 책을 읽는다는 통계가 도저히 마음에 와 닿지가 않는다.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한 조사이니 틀림없겠지만 이들이 무슨 종류의 책을 읽고 있는지가 사실은 더 중요하다. 체계 없는 독서는 오히려 독이 된다는 것을 모두가 안다. 하지만 정작 어른들은 책을 읽지 않으니 지도가 힘들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양서지 잡서가 아니다. 그나마 공공도서관을 이용하면 형편없는 잡서는 대하지 않겠지만 도서관 이용 빈도 역시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공공도서관 측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지만 실속은 없다. 독서는 순전히 자율이기 때문에 프로그램은 핵심을 겉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18 책의 해라는 글을 보면서 불볕더위 속으로 들어가는 휴가가 아닌 책과 같이 하는 피서를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특히 요즘 도서관은 시설이 좋아 독서와 피서를 공유하기에 최적이다. 책은 밥이다. 밥을 취미로 먹는 사람은 없다. 도서관을 찾으면 좋은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반찬까지 구비가 되어 있다. 삶의 질은 책이다. 실제 책을 좋아했던 아이들이 인생을 실패한 사례를 찾기 힘들다. 책은 물질적 만족이 아닌 정신의 평화를 선물한다. 부모들이 스스로 책 읽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주며 시험보다 중요한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 이유다.

더워도 너무 덥다. 비까지 없으니 동식물과 사람이 함께 죽어 나간다.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아 방에서 책을 잡고 뒹굴다가 문득 독서 피서가 생각났다. 선선해서 놀기 좋은 날 야외 휴가는 즐기고 불볕더위는 실내에서 독서로 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 아니겠는가. 책 읽는 습관은 어려서부터 갖춰져야 한다. 만일 자녀들의 풍요로운 삶을 원한다면 손에 책을 쥐어주고 같이 읽길 바란다. 특히 군립과 공공도서관의 독서 지도사들은 여름과 겨울 방학을 이용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올바른 독서 관을 심어주어야 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무슨 책을 어떻게 읽게 할 것인가는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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