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불통 철학자(5)-노벨상을 거절한 사르트르

아무리 욕심이 없다 한들, 현재 지구인이 받을 수 있는 가장 영예롭고도 큰 상, 노벨상을 거절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주지하다시피, 노벨상은 스웨덴의 화학자 알프레드 노벨의 유산을 기금으로 하여 1901년에 제정되었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고 이를 기업화하여 거부(巨富)가 된 알프레드 노벨은 18951127일 유언장을 남겨, ‘인류 복지에 가장 구체적으로 공헌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도록그의 유산 약 3150만 크로네(현재 가치로 약 17천만 달러-한화 약 1870억 원)를 스웨덴의 왕립 과학아카데미에 기부하였다.

이 유산을 기금으로 하여 노벨재단이 설립되었고, 기금에서 나오는 이자를 해마다 상금에 충당하는 방식으로 1901년부터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경제학, 문학, 평화의 6개 부문에서 인류문명의 발달에 공헌한 사람이나 단체를 선정하여 수여하고 있다. 상은 금메달, 상장, 상금으로 구성되는데, 상금은 이자율의 변동, 수상 해당자가 없었을 때 기금의 증가 등으로 매년 그 금액이 조금씩 다르다. , 한 부문의 수상자가 2명 이상일 경우에는 해당 부문의 상금을 나누어 지급한다. 한국인 수상자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유일한데, 그는 2000한국과 동아시아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그리고 특히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노력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런데 누구나 바라마지 않는 바로 그 상을 거절한 철학자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이자 작가이고 실존주의 사상의 대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사르트르(1905~1980)이다. 사르트르는 철학과 문학뿐만 아니라 예술과 정치, 사회활동 등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가장 왕성한 지성의 힘을 발휘한, 불세출(不世出-뛰어난 인물)의 거장이었다. 특히 1964년 노벨 문학상의 수상을 거부한 것은 그의 명성을 드높였다. 이 일의 자초지종은 다음과 같다.

1964년에 사르트르는 자서전적 소설을 썼고, 이로 인하여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 최상의 명예와 그에 수반되는 5만 달러의 상금을 거부하였다. ‘노벨상이 서구 작가들에게 치우침으로써, 그 공정성을 상실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라이벌인 카뮈보다 늦게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된 데 불만을 품고 수상을 거부하였다는 설도 있다. 주지하다시피,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카뮈는이방인,페스트등의 작품을 남겼으며, 195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참고로, 지금까지 노벨상을 거부한 수상자는 모두 6명이라고 한다. 1938년 독일의 쿤(화학상), 1939년 독일의 부테난트(화학상), 1939년 독일의 도마크(생리학 의학상), 1958닥터 지바고의 작가인 소련의 파스테르나크(문학상), 1964년 프랑스의 사르트르(문학상), 1973년 베트남의 레둑토(평화상)가 바로 그들이다. 이 가운데 3명의 독일인은 당시 히틀러의 방해로 상을 받지 못했던 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상장과 메달을 받았다. 그러나 소련 정부의 방해로 제때에 상을 받지 못한 파스테르나크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끝내 상을 받지 못했다.(1989년 그의 아들이 대리 수상) 베트남 평화협상에 대한 공로로 키신저와 함께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레둑토는 자신의 모국(베트남)에서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상을 거부하였다. 어떻든 사르트르가 노벨문학상을 거절한 데에는 그의 소신과 철학 외에 특이한 성장 배경과 그로 인해 형성된 독특한 기질도 한 몫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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