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신문은 법성문화진흥원(원장 성시환)에서 제공한 사료를 근거로 과거 법성의 오늘을 1월부터 12월까지 월별로 나눠 연재한다. 원문의 음력은 모두 양력으로 환산된 날짜다. <편집자 주>

 

1

-굴비 콜(A/S) 센터 1544-0092 를 운영함. (2009년 성석남 면장 재임기)

-버스요금이 1,100에서 1,200원으로 인상됨. (2013년 오삼섭 면장 재임기)

2

-태풍으로 안마도 근해에서 어선 52척이 조난당함. (1936년 일제강점기 김현욱 면장 재임기)

3

-서리가 내려 농사를 망침. (1845년 헌종 11년 이협구 첨사 재임기)

-'경계다리'라고 부르는 발막리 '법음교(法音橋)'보수공사를 함.(1932년 일제강점기 최상곤 면장 재임기)

4

-대덕리 지적측량원도 제작이 완료됨. (1915년 일제강점기 고재열 군수 재임기)

-온수피해보상을 요구하며 어민들이 한빛원전 정문과 후문에서 시위함.(1995년 이관신 면장 재임기)

-법성포초등학교 100주년 기념관이 개관됨.(2003년 임종식 교장 재임기)

5

-신명철(1910. 11~1949.11)(광복 후 법성 초대 면장 역임) 선생이 '전남노동협의회'사건으로 법성포주재소에 구금됨. (1932孔濯 군수 재임기)

7

-조군 하수대(河壽代)"법성창 조운선의 식량을 근래의 예에 따라 지불하여 달라." 고 임금이 행차하는 길목에서 꽹과리를 치며 하문을 기다림.(1785년 정조 9)

-동부와 서부, 두 단체가 통합하여 '법성포노동회'(회장 고경진)가 창립됨. (1924년 일제강점기 박종관 면장 재임기)

-미 군정경찰이 치안을 담당함.(1945)

-1회 법성포수산물축제가 4일간 일정으로 뉴타운에서 열림. (2015년 박영철 면장 재임기)

8

-지아닐 주막에서 치정관계로 다투다 싸움이 일어나 3사람이 칼에 맞아 중상을 입음.(1930년 일제강점기 남궁비 면장 재임기)

9

-경상도에서 복역 중인 남편을 "83세 고령인 시어머니가 곧 사망할 것같으니 석방하여 달라."고 청원하여 남편이 석방됨. (1797년 정조 21년 이동헌 첨사 재임기)

10

-'법성포서국민학교'(진량초등학교)가 개교함. (1945년 이지열 교장 재임기)

-우박과 눈이 내림.(1519년 중종 14)

11

-원전 온배수대책에 분노한 어민들이 서울 한전 본사 앞에서 시위함. (1999년 박상채 면장 재임기)

-법성소방출장소에 119 특수구급차를 배치함.(2005년 김경안 서장 재임기)

12

-법성포초등학교(법성공보) 학생 27명이 동아일보 본사를 견학함.(1929林正憲 교장 재임기)

13

-3회 재경 법성청년체육대회가 서울 봉천동 신복초교에서 열림.(1991년 정용환 회장 재임기)

15

-시조부흥을 목적으로 '추인회(秋蚓會)'가 창립됨. (1925년 일제강점기 박종관 면장 재임기)

-복용동 경로당이 준공됨. (1997년 이창주 면장 재임기)

-영광군내에서 가장 비싼 휘발류 가격은 법성 B, 홍농 D 주유소의 리터당 1,325원으로 조사됨. (2002년 한동석 면장 재임기)

17

-각 리에 개발위원회를 둠. (1972년 김공성 면장 재임기)

-법성포 내에서 만 원 권 위조지폐가 발견됨.(2004년 윤동길 서장 재임기)

18

-신명철 선생이 광주학생사건으로 재판에 회부돼 징역 3년형을 받음.(1930년 일제강점기 남궁비 면장 재임기)

19

-법성포를 출발하여 광주로 가던 호남여객이 삼학에서 공비 기습을 받음.(1949년 이봉하 서장 재임기)

-덕흥리에서 정신착란증을 앓고 있는 아들이 자고 있는 아버지 머리를 돌로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이 일어남.(1994년 오원철 서장 재임기)

-7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숲쟁이공원이 어울림 상을 받음. (2006년 이정규 면장 재임기)

20

-성재동 미르낙농체험마을이 개장함.(2010년 김강혁 면장 재임기)

21

-포내 앞 바다가 핏빛 같은 물거품이 일고 마을에 비린내가 진동함. (1684년 숙종 10)

23

-법성포진이 왜구에 함락됨.(1597년 선조 30)

-법성포우체국이 법성리 6883번지로 신축 이전함.(1966년 김학필 국장 재임기)

-전화가 완전 자동화 됨. (1988년 김태동 면장 재임기)

-수협 위판 장 앞에서 수륙제를 지냄.(2008년 조병남 조합장 재임기)

24

-법성포라이온즈클럽이 창립됨.(1994년 김연규 회장 재임기)

26

-굴비특품사업단 냉동 창고에서 불이 남. (2006년 윤성중 단장 재임기)

-독바우 굴비 조형물을 '영광굴비타워'로 명명함.(2011년 김제상 면장 재임기)

27

-미공군 전투기가 언목 마을에 추락함.(1970년 김공성 면장 재임기)

28

-칠산어장의 어세수취권이 격포진에서 법성진으로 이관됨. (1885년 고종 22년 최득수 첨사 재임기)

30

-석장리 경로당이 준공됨.(2008년 성석남 면장 재임기)

일자 미상 :

-법성진 관아가 철거되어 지도군 향교와 객사를 짓기 위해 지도로 이송됨.(1897년 고종 34년 신태관 군수 재임기)

-정읍무장 버스 노선이 법성포까지 연장 운행됨.(1922년 일제강점기 장대호 면장 재임기)

-법성포항을 신항으로 지정하여 총독부에서 관장함.(1924년 일제강점기 장대호 면장 재임기)

-농촌지도소 법성지소가 개소되어 법성과 홍농을 관장함.(1963년 김영철 면장 재임기)

-원불교 첫 집회를 진내리 '법성포노인회'에서 함.(1969년 김영철 면장 재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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