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사진가 수필가

이미 여러 국가에서 시행중인 연명의료결정법이 이제 우리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사전적 의미는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자기의 결정이나 가족의 동의로 연명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 정식 명칭은 호스피스 완화 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으로 20161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후 호스피스 분야는 201784, 연명의료 분야는 201824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는 내용이다. 말기암 환자에 국한 되어 있던 호스피스 완화의료 대상자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만성간경화말기 환자까지 확대 되었다.

긴 부가설명이 필요한 이유는 이 법의 중요성 때문이다. 이웃 일본에서도 의사가 주축이 되어 단체를 만들고 사회운동으로 활발하게 번지고 있지만 사실 우리에겐 생소하고 알려지지 않은 법이다. 인간다운 삶과 죽음을 기반으로 하는 이 운동은 이제 행복하게 죽을 수 있는 권리와 기조를 같이해야할 것이다. 요즘 사법권의 권위가 바닥을 치고 있다. 그만큼 인권과 무릎을 마주하고 있는 사법이기에 인간이 인간을 판단하고 결정까지 한다는 게 한편으론 무서운 일이다. 연료의료결정법이 지하로 내려가 햇빛을 보지 못했던 것도 사법의 판결과 깊은 관련이 있다. 자발 호흡이 어려운 환자로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생명을 유지하는 사람도 퇴원이 불가능한 것이 우리 법이었다. 의식이 없고 호흡기를 제거하면 바로 사망할 환자도 퇴원을 시키면 담당 의사는 살인방조죄로 처벌을 받았다. 실제 우리 판례다. 정확히 우리는 죽을 권리가 없다. 결국 회생 가능이 없는 환자도 병원에서는 기구를 동원해 연명치료를 계속했다. 경제적 부담은 차치하고라도 죽지 못하고 마지막 고문을 받고 있는 환자의 입장은 철저히 무시 되었다. 의료계도 연명의료결정법을 환영했지만 문제는 일부 종교 단체였다. 생명의 존엄성을 해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러한 생명의 존엄은 신의 뜻이 아니다. 신은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만들었다. 그래서 인간은 자연스럽게 태어나고 자연스럽게 죽어야 할 권리가 있다. 인공으로 생명을 지연시키는 행위는 신의 뜻에 거스르는 행동이다. 늙거나 회생 불능의 병이 들면 자연스럽게 죽어야 하는 것이 신의 뜻이다.

안락사와 연명의료결정법 이야기가 나오면 일독을 권하는 책이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려면 의사를 멀리하라.’는 책이다. 평생을 환자와 함께 했고 임종을 앞둔 노인을 돌보는 의사로 살고 있는 나카무라 진이치(中村仁一)가 썼다. 그는 19964월부터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는 모임을 만들어 주관하고 있다. 그는 행복한 임종 : 의사와 엮이지 않고 죽는 법이라는 책도 썼다. 내용은 제목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는다. 잘나가는 시립병원의 원장직과 이사장직을 내놓고 노인요양원으로 스스로 전락(?)한 그의 지론은 명료하다. “인간은 생물이다.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과정을 결코 피하지 못한다. 최첨단 의료나 재생의료기 역시 생로병사 안에서만 허용된 잔재주일 뿐이다. 노년기를 보다 편안하게 보내려면 의료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고 노화에 순응하며 동행해야 한다. 노인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마지막 역할은 가능한 한 자연스럽게 죽음 혹은 죽는 방식을 보여주는 일이다.” 이른바 자연사 예찬론이다.

이제 관계법이 마련되었지만 우리 모두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선조들은 가장 잘 살았다는 것은 가장 잘 죽는 것이다.’고 말했다. 생명의 존엄성 운운하며 죽음을 억지로 붙들어 두는 것은 고통이다. 재생이 불가능함을 뻔히 알면서도 소위 자식 된 도리를 지킨다는 명분은 마지막 가는 길을 비참과 고통으로 마무리하게 된다. 억지 생명 연장이 남은 식구들에겐 도리(道理)일지 모르지만 누구를 위한 생명의 연장인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진다. 내려놓음의 가치는 재물과 욕심에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생명의 존엄으로 감추어진 죽음의 무게를 내려놓는다면 삶이 훨씬 신선하고 가벼워질 것이다. 즉 죽음에 대한 생각을 바꾸면 삶의 방식도 바뀐다. 역으로 삶의 방식이 가벼워지면 죽음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달라진다. 이제 우리도 의사표시가 불가능 할 때를 대비해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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