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세의 달인(5)-하이데거(1)

현대의 모든 철학이 직접, 간접적으로 이 책의 영향을 받았다는 평가를 받는존재와 시간, 그 저자가 출세의 달인이었다니? 사실 이 표현은 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순수하고 진지한 철학자였을 것으로 여겨지는 하이데거가 독일 나치의 협력자였다면, 독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1889-1976)에 의해존재와 시간이 세상에 나왔을 때, 그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하이데거는 살아 있을 때, 이미 가장 위대한 사상가라는 찬사를 세계 철학계로부터 받게 된다. 그는 스승인 후설의 뒤를 이어 프라이부르크 대학 교수가 되었고, 1933년에는 43세의 나이로 동 대학의 총장에 추대되었다. 그러면 여기에서 이때의 상황을 재구성해보도록 하자.

19333. 히틀러가 이끄는 국가사회주의당, 일명 나치(Nazi)가 총선거에서 무려 288석을 얻어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바로 이것이 나치 만행(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유태인슬라브족, 집시, 동성애자, 장애인, 정치범 등 약 11백만 명의 민간인과 전쟁포로를 학살한 사건임)의 씨앗이 될 줄이야. 결국 그 여파는 대학에까지 뻗쳐왔으니. 45일자로 취임한 폰 묄렌도르프 총장은 반()유대주의 내용의 현수막을 교내에 게양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러자 나치의 영향 아래 있던 교육부에서는 그 즉시 총장을 파면조치하고 만다. 통보를 받은 묄렌도르프는 곧바로 대학 동료이자 저명한 철학교수인 하이데거를 찾아가 차기 총장이 되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치당의 간부가 총장에 임명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부탁을 받아들이기로 한 하이데거는 421, 대학 평의회의 만장일치에 의해 신임총장에 선출된다. 하이데거는 독일대학의 자기주장이라는 제목의 총장취임 연설에서, 학생들에게 ‘3대 봉사’, 즉 지식추구 외에 노동과 군사훈련에도 동참할 것을 강력히 호소하였다. 곧이어 나치 간부인 프라이부르크 시장과 당원들이 찾아와 입당을 권유하자, ‘당직을 맡지 않고, 당을 위해 활동하지도 않는다.’는 조건으로 입당을 결행한다. 이리하여 193351, 20세기 최고의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 나치 당원이 된 것이다.

이러한 배경으로 보아, 내용이야 어떻든 형식적으로나마 하이데거가 나치에 협력했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렇다면 과연 그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아내가 히틀러의 저서 나의 투쟁을 읽도록 권유한 것이 주효했을까? 물론 그런 설이 있긴 하다. 그렇다고 하여 하이데거가 골수 나치인 것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나치에 저항한 영웅도 아니었다. 예를 들어, 이런 일이 있었다.존재와 시간의 초판에는 스승 후설(유대인)에게 바치는 헌사(獻辭-축하하거나 찬양하는 뜻으로 바치는 글)가 들어 있었다. 그런데 이 헌사가 출판사에 의해 삭제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하이데거는 출판사의 그런 행위를 묵인하고 말았던 바, 이것은 그의 나약함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로 지적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나치에 저항한 흔적도 눈에 띈다. 가령 하이데거는 반()유대주의 현수막을 내걸거나 유대인 저자들의 책을 도서관에서 퇴출시키려는 행위는 금지시켰다. 나치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그의 태도는 요지부동이었고, 이로써 양측의 갈등은 점차 첨예화되기 시작한다. 결국 그는 불과 10개월 만인 19342, 자진하여 총장직에서 물러나고 만다.-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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