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진/ 광신대학교 복지상담융합학부, 사회복지학박사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돈 낭비가 뭘까. 미국 포춘(Fortune)지는 1위에 '현금자동인출기 수수료', 3등에 '고급 커피 마신다고 커피숍 가는 것'을 꼽았다. 그 다음은 담배, 홈쇼핑 충동구매 등의 순. 자 그럼 2등은 뭘까? 바로 복권을 사서 긁는 것이다. 미국 내 복권판매액이 700억 달러이다. 재미삼아 사지만 나중에 복권에 쏟은 돈을 계산해 꽤 큰 돈 임을 알거라는 충고다. 로또 복권이 2002122일 첫 발행된 이후 국민 1인당 평균 73만원 어치를 샀다고 한다. 로또 구매 열기는 2003년 최고에 이른 뒤 한 때 주춤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 방으로 위기 탈출을 노리는 사람들이 다시 로또로 몰려들었다. 1인당 복권 구입액은 201062,635, 지난해엔 71,659원으로 확대됐다.

복권의 역사를 보면, 동양에서는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위해 복권을 팔았다고 전해진다. 기원전 3세기의 일이다. 로마 때도 경품 뽑기가 있었는데 복권의 원시적 모습으로 보기도 한다. 번호가 적힌 현대식 복권은 네덜란드, 이탈리아를 거쳐 영국 미국으로 자리를 잡았다. 영국은 엘리자베스 여왕 이전 까지는 복권이 금기였다. 복권의 기본이념은 제비를 뽑아서 결정하자는 것이고, 이것은 곧 신의 뜻에 맡긴다는 것인데 신의 뜻을 돈놀이에 쓸 수 없다는 종교적 해석이 깔려 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여왕은 국고확충을 위해 1569년 복권을 허용했다. 자본주의를 번성시키고 새로운 국민국가를 형성하려니 돈이 필요했던 것이다. 영국은 미국 식민지 건설을 위해 복권 발행을 본격화했다가 비리와 사기범죄가 잇따라 19세기 초 한 때 미국·영국에서는 발행을 중단했고 1960년대 미국이, 1990년대에 영국이 발행을 재개했다. 당시 미국의 복권은 사회기반시설 확충에 쓰여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컬럼비아 등 명문대를 만드는 데도 기여했다. 즉석복권은 스위스에서 시작됐고 긁어대기는 1974년 미국이 유행시킨 방식이다. 일상생활에 복권을 가장 깊숙이 뿌리내린 나라는 일본이다. 우리나라는 194714회 런던올림픽 참가경비를 위해 복권을 처음으로 발행했다. 1969년 정부의 주택복권이 시작됐고 그 다음이 올림픽 복권이다.

복권의 문제는 곧 자본주의의 구조와 잇닿아 있다. 첫 번째가 양극화이다. 가난한 사람이 복권을 더 많이 사지만 당첨금액을 놓고 보면 더 적게 가져간다는 것이 통설. 영국의 테오스라는 연구단체가 1,000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복권 구입 회수와 당첨내역을 조사한 결과(2009.7.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 인터넷판) 노동자와 무직자 등 저소득계층의 67%가 한 달에 한번 이상 복권을 구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무 관리직이나 전문직은 47%로 저소득계층이 복권을 더 열심히 산다. 저소득 계층은 즉석 복권-스크래치 복권 위주로 구입하고, 전문기술직들은 번호를 적는 기입식 로또를 선호해 당첨금이 차이가 난다. 마을별로 구입액과 당첨액을 조사하니 가난한 마을 사람들은 살림에 비해 복권에 쏟아 붓는 액수는 컸으나 당첨금 회수 비율은 하위권으로 나타났다. 복권은 국가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쓸 재정을 마련하고자 세금을 대신해 마련한 재정확충 방안이다. 그러니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 수익이 많이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그 돈 자체가 가난한 사람들의 호주머니에서 더 쥐어짜여 나오는 돈이라면 그 의미는 무엇일까? 소득이 올바로 재분배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재분배되는 소득역진성을 갖고 있는 셈이다. 정부의 복권수익률은 40%가 넘는다. 저소득층을 위해 쓰기도 하고 공공사업도 하지만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몫이 저소득층을 위해 쓰여야 한다. 미국의 제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은 이것을 지적하며 "복권은 고통 없는 세금이고 아주 이상적인 재정 수단" 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사회에 가난한 사람이 넘치면 사회에서 어느 정도 이상 혜택을 입은 부유층이 세금으로 그 불균형을 떠안아야 하나 이것을 복권으로 바꿔 저소득층, 중산층에게 대박을 사라며 슬그머니 떠맡기는 건 조세정의에도 어긋나는 행위이다.

복권의 다음 문제는 불평등의 정당화이다. 사회가 불평등하고 정의롭지 못하면 국민은 정치적으로 각성하고 힘을 모아 정치와 정책을 바꿔야 한다. 사회 정의를 향한 국민의 투쟁이 필요하다면 들고 일어서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이다. 선거가 치러지면 나서서 투표를 하고 정치인들을 물갈이해야 한다.

그러나 국민의 정치의식은 '한 방에 인생역전'이라는 복권의 마사지에 희석되고 만다. 땀 흘리고, 물건을 만들고, 먹을거리를 길러내고, 정당한 보수를 받아 경제에 합류하는 것이 생활의 가치이다. 그러나 복권열풍은 일상생활과 생업의 숭고한 가치를 일확천금의 환상으로 흔들어 버린다. 번개에 맞아 죽을 뻔하다가 겨우 살아 병원을 나서다가 다시 번개에 맞아 죽을 확률과 비슷한 수백만 분의 1 확률에 사람들이 매달리면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갈까? 정부, 복권관련 제조업체, 복권판매소, 광고회사, 방송사 등이 수혜자다. 복권을 사기 전에 분명히 되새겨보자. 사회의 정당한 부의 재분배가 중요하고, 양극화가 해소되는 쪽으로 정책이 움직여야 하고, 복지제도가 더 많이 마련돼 빈부격차를 줄여야 한다. 그리고 복권 수익은 지금보다 몇 배 더 저소득층을 위해 쓰여야하며 이 복권이 우리의 정치의식을 무디게 할 수도 있음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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