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자녀(2)

아무리 악독한 인간일지라도 자녀에게는 선으로 대하고, 아무리 잔인한 독재자라도 자식들에게만큼은 관대하게 행동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자녀들에 대해 독하게 처신했던 철학자들이 있다. 교육사상가로 이름이 높은 루소(1712~1778)가 이 부분의 첫 번째 주인공.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끊임없이 모성애를 동경하던 루소는 프랑스 파리의 하숙집에서 세탁부로 일하는 한 순박한 처녀와 23년간의 동거생활 끝에 마침내 결혼을 한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는 다섯 명의 아이들이 차례로 태어나는데, 루소는 이들을 모두 고아원에 보내버린다. 그 이유는 자식들이 너무 소란스러운 데다, 양육비가 많이 들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위대한 교육사상가로서 도저히 해서는 안 될 행동이라고 비난받아 마땅해 보인다.

어머니의 이른 죽음으로 인해, 루소는 아버지와 고모의 손에 의해 양육되었다. 그러던 중 예비역 프랑스 대위와 싸움을 한 아버지가 처벌을 피해 제네바를 떠나게 되었고, 어린 루소는 외삼촌에게 맡겨졌다가 다시 어느 목사의 가정으로 보내진다. 하지만 어느 날, 목사의 여동생이 아끼던 빗이 부러진 채 발견되자 그 가족들은 루소를 범인으로 몰아갔다. 다시 스위스의 제네바로 돌아온 루소는 돈을 몽땅 털어 책을 빌려보곤 했는데, 조각가인 집 주인은 책만 보면 빼앗아 불태워버리곤 했다. 한편 아버지는 53세의 나이로 재혼을 한다. 14살의 루소는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커다란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 아버지로부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자기 자신의 기구한 인생행로는 루소가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 원천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자신의 아이들에 대한 루소의 처신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루소가 다섯 명의 아이들을 모두 고아원에 맡겨버린 일은 물론 충격적인 사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당시 파리에서 공립고아원에 아이를 맡기는 것은 일종의 관습이었다. 신생아(新生兒)3분의 1 아이들이 이에 해당하였고, 가령 달랑베르(프랑스 계몽기를 대표하는 백과전서파 철학자)와 같은 인물도 사생아로 버려진 아이였다. 더욱이 루소는 당시의 관습에 정면으로 도전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당시 귀족들의 경우 아들은 콜레주(원래는 신학생들의 학교기숙사였으나, 현재는 7년제 공립중등학교), 딸은 수녀원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았고, 자격미달의 가정교사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이 보통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당시 유명인사에 속했던 루소가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만한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루소가에밀을 펴냈을 때, 프랑스의 어머니들은 이 책을 아이들 교육의바이블(성경)로 삼았고, 상류계급의 부인들마저 유모(乳母) 대신 자신들이 직접 아이에게 젖을 먹이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처럼 영향력 있는 저자가 자녀를 고아원에 맡긴 일은 큰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훗날 루소는 이에 대한 죄책감과 변명을 곳곳에 남기고 있다. 에밀에 묘사된 그의 심정을 들어보도록 하자.

가난한 일도, 체면도 자식을 키우고 직접 교육시키는 일로부터 그를 면제시켜 줄 수는 없다. 독자들이여, 그 점에 대해서는 나를 믿어도 좋다. 누구든 인간으로서의 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토록 신성한 의무를 저버리는 자에게 예언하건대, 그는 오랫동안 자신의 잘못에 대해 통한의 눈물을 쏟게 될 것이며, 결코 그 무엇으로도 위로 받지 못하리라.”

저주에 가까운 이 글은 실제로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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