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자녀(5)

어버이가 돌아가시면 하늘이 무너진다하고, 자식이 먼저 가면 땅이 꺼진다고 한다. 부모는 땅에 묻지만,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통곡소리는 창자를 끊는 듯 참담하기만 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다 키워놓고 잃는다는 것은 평생 가슴에 묻어야 하는 아픔이다.

다산 정약용의 큰딸은 태어난 지 4일 만에 죽었고, 둘째 딸과 3, 4, 5, 6남은 모두 천연두(마마, 손님으로도 불리는 악성전염병)로 서너 살 안에 사망했다. 특히 정약용은 갓 세 돌이 지난 넷째 아들 농아가 죽었다는 소식을 귀양지에서 듣고, 구구절절 애끓는 아비의 마음을 묘지명(죽은 이의 살아생전 일을 기록하여 무덤에 넣어준 글)으로 남겼다. “네가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가 겨우 세 살인데, 그중에서 나와 헤어져 산 것이 2년이나 된다...너의 이름을 ()이라고 지은 것은 집안에 화()가 닥쳤을 때, 너만은 농사를 지으며 살게 하려 한 것뿐이다. 이것이 죽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었다. 나는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나은데 살아 있고, 너는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나은데 죽었으니, 이것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귀양에서 돌아오면 네 병이 나을 것이라 말했다는 말을 네 어미에게서 들었다만, 너의 소원을 이루어주지 못했으니 정말 슬픈 일이다. 네 어미의 편지에, ‘애가 강진(유배지)에서 사람이 올 때마다 소라껍질을 찾다가 받지 못하면 풀이 꺾이곤 하였는데, 그 애가 죽어갈 무렵에 소라껍질이 도착했습니다.’ 하였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너의 외모는 빼어난데, 코 왼쪽에 조그마한 검은 사마귀가 있으며, 웃을 때에는 양쪽 송곳니가 드러난다. 아아, 나는 오로지 네 모습만이 생각나서, 거짓 없이 너에게 말하노라.” 정약용 자신의 순탄치 않은 인생사에 대한 회한, 자식의 곁을 지켜주지 못한 데 대한 애절한 마음이 묻어나는 내용이다.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화가인 이하곤(1677~1724)은 좌의정 이경억의 손자로서, 7품직에 제수되었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대신 고향인 충북 진천에 내려가 학문과 서화에 힘썼는데, 특히 책을 매우 사랑하였다. 가령 어떤 사람이 책을 파는 것을 보면 옷을 벗어주고라도 책을 사들였는데, 이렇게 하여 모은 책이 1만 권을 헤아렸다고 한다. 성격이 곧아 아첨하기 싫어하고, 여행을 좋아하여 전국 방방곡곡을 두루 여행하였으며, 불교에도 관심을 두어 각 사찰과 암자를 찾아다녔다. 그런데 이하곤은 여섯 살 난 딸을 마마로 잃고, 이렇게 울부짖었다. “물가에 가도 네가 떠오르고, 솔바람(소나무 사이스쳐 는 바람) 소리를 들어도 네가 떠오르고, 달밤에 작은 배를 보아도 네가 떠오르니이 아픔 어디에 끝이 있을까?”

도시의 흉년,휘청거리는 오후와 같은 작품을 남긴 여류소설가 박완서(1931-2011)는 남편을 잃은 지 석 달 만에 외아들을 떠나보냈다. 명문대 졸업반으로 남들이 부러워하던 아이였다그녀는 청동기처럼 단단하고, 앞날이 촉망되던 젊은 의사 아들을 잃고, 신에게 한 말씀만 해보라며 따지고 있다. “내 아들아, 이 세상에 네가 없다니 그게 정말이냐창창한 나이에 죽임을 당하는 건 가장 잔인한 최악의 벌이거늘, 그 애가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런 벌을 받는단 말인가하느님, 사랑 깊은 아이로 점지한 내 아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 더도 덜도 말고 딱 한 말씀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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