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불리기에 급급해 하지 말고 모든 투자는 내 회사에 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정·학벌 한계 딛고 성공, e-모빌리티 엑스포 조직위원 활동 등 고향 사랑실천

무일푼으로 사업을 시작해 현재는 2개의 자회사까지 경영하고 있는 봉종복 ()애니원F&C 대표는 커피 프랜차이즈 사업부터 공연장 대관사업까지 이끌고 있는 문화마케팅 사업의 팔방미인이다.

봉 대표는 본인 회사 중 모회사 격인 애니원F&C의 성공을 기반으로 ()1883코리아, ()명보 아트홀 등의 자회사를 세워 연이은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그는 지금의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시장과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1972년 전라남도 영광(대마면)에서 태어난 봉종복 대표는 비교적 평범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그가 19살이 되던 해, 갑작스런 부친의 사망으로 그에게는 고난의 시간이 찾아왔다. 고등학교 졸업 후 그는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인해 원치 않았지만 숙식이 무료로 지원된다는 이유로 목포해양전문학교에 입학한다.

자퇴를 했지만 학업에 대한 그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그는 룸살롱웨이터, 전단지 배포 아르바이트, 호객꾼(일명 삐끼), 배달 등을 하며 2년 간 돈을 모은 후 1년의 독학 끝에 동신대학교 관광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광양제철소에서의 회사 경험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 채 바꿔 놓았다.

회사로부터 업무 능력을 인정받은 봉 대표는 회장 비서직, 홍보직 등을 경험하며 넓은 세상을 몸소 체험했고 또 다른 세상 사람들의 생활을 엿보았다.

그는 새로운 인생을 살 것을 결심하고 5년간 회사생활하며 모은 5000만원을 들고 2의 인생을 시작했다.

이후 30살의 나이에 고시원에 들어가 1년간 편입 공부를 했고 281의 경쟁률을 뚫고 아주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봉 대표는 우수한 성적을 보였지만 4학년 2학기가 되자 회사생활로 모은 돈을 다 소비해 마지막 학기 등록을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같은 이유로 그는 친구가 경영하는 회사에 취직해 일을 돕기로 결심했다. 그 곳에서 봉 대표는 평생의 사업파트너인 김대원씨를 만났다.

이후 매장계약을 약속했던 김대원씨는 약속의 이행을 요구하며 지속적으로 봉 대표를 따라다녔다. 그렇게 맺은 인연으로 둘은 결국 동업을 시작하게 됐다.

봉종복 대표와 김대원 씨는 월 15만원짜리 월세방에 사무실을 차리고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동선을 최대한 줄인 복지카페란 아이템을 들고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매장확보에 나섰다.

복지카페란 회사나 학교내에 위치한 작은 바(BAR)형식의 음료 전문점으로 불필요한 매장확장 및 경쟁을 줄이는 대신 낮은 가격과 좋은 품질의 음료를 공급하는 곳이다.

보통 학교나 큰 기업의 사옥 내에 위치한 이 곳은 일부 인원만 이용함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한 비용을 줄여 수익을 창출해내는 구조다.

처음 그들은 매장위치 확보에 주력했다. 매장위치 확보 후 매장주를 모집해 선 계약을 체결했고 그 자금으로 1호 가맹점을 냈다. 같은 방식으로 사업확장을 해 나갔고 매년 꾸준한 매출상승이 이어졌다.

첫 사업의 성공을 거둔 봉 대표는 2009년에 유럽 시럽 시장 점유율 1위 브랜드인 프랑스의 ‘1883루틴의 한국 총판을 사들여 ()1883코리아를 창립했다.

봉 대표는 우연한 기회에 공연 문화사업을 접하게 됐다. 새로운 문화시장 개척에 나선 것이다. 그는 과거의 영광이 이미 바래버린 명보극장1~3층을 임차해 공연장 대관사업에 뛰어들었다. 지금의 명보아트홀은 그렇게 시작됐다.

처음 명보아트홀을 만들었을 때는 1년에 약 10억원 이상의 적자를 봤다. 이 후 새로운 판로 개척에 나섰고 넌버벌 퍼포먼스 공연(대사가 없는 액션퍼포먼스 공연)으로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의 단체관람을 성사시켰다.

그는 앞으로 창업을 할 예비창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은 자산 불리기에 급급해 하지 말고 모든 투자는 내 회사에 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예비창업자들에게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한편 봉 대표는 영광군의 야심작인 ‘2019 영광 e-모빌리티 엑스포조직위원회의 위원으로도 활동하는 등 고향 사랑에도 몸소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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