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성인의 제자들(공자➁)

다음 해에는 공문십철(孔門十哲)의 한 사람으로 특히 언어에 뛰어났던 재아(宰我)가 제나라에서 죽임을 당했고, 그 다음해에는 제자인 자로(子路)의 사망소식이 전해졌다. 자로는 공자보다 아홉 살 아래였지만, 제자 중에서는 가장 나이가 많으면서도 중심적인 인물이었다. 본디 무뢰한이었는데, 공자의 훈계로 입문하여 곧고 순진한 자세로 헌신적으로 공자를 섬겼다. 그런 그가 위()나라에서 벼슬을 할 때, 대부 괴외의 난이 일어났다. 이때 공자는 노나라에서 소식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자고(子羔)는 돌아오겠지만, 자로는 죽을 것이다.”

이 말은 우직하지만 타협할 줄 모르는 제자의 성격을 잘 아는 스승의 통찰력에서 나온, 일종의 예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설마 했던 스승의 예측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자고는 난을 피해 살아 돌아왔지만, 자로는 상대방을 겁박(劫迫-으르고 협박함)하다 도리어 붙잡혀 전사하고 만 것이다. 위나라 사신이 와서 자로의 사망소식을 알린 다음, 이어지는 말이 공자의 심장을 정지시켰다. “자로를 죽여 젓갈을 담갔습니다.”

자신을 가장 믿고 따르던 제자가 전쟁의 희생양이 된 것도 어딘데, 무참히 살해되어 그 시체가 항아리에 젓 담겨져 보내지다니. 이 처참한 장면 앞에서 공자는 마치 양팔을 잘린 듯, 몸부림쳤다. “하늘은 내가 빨리 죽기를 재촉하는구나! 하늘은 내가 빨리 죽기를 재촉하는구나!” 동생 같은 제자를 잃은 늙은 스승의 입에서, 신음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다른 모든 젓갈도 엎어버리라! 내 차마 어찌 이런 것을 먹을 수 있겠느냐?” 젓갈만 봐도 자로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얼마 후, 때는 화창한 봄이 오기 직전이었다. 이 날도 자공(공자의 제자로, 돈 관리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음)은 아침 일찍이 공자에게 문안드리러 갔다. 공자는 지팡이를 들고, 문 앞에서 산책하고 있었다. 그는 탄식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태산이 무너지는구나. 대들보도 부러지는구나. 철인(哲人)마저 시들어버리는구나!”하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자공이 급히 부축하여 안으로 들어가 침대에 눕혔으나, 공자는 그 날부터 의식을 잃고 말았다. 결국 7일 만에 여러 제자들의 비통 속에 세상을 떠났으니, 이때 그의 나의는 일흔 세 살이었다

그렇다면 공자의 남다른 제자 사랑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공자는 자기의 집을 서당 삼아, 사방에서 몰려드는 제자들을 가르쳤다. 젊었을 때부터 시작한 이 교육활동은 결국 수십 년 동안 무려 3천 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그의 서당을 거쳐 가게 하였고, 그의 명성을 멀리 퍼져나가게 했다. 그에게는 안연, 안회, 자로, 자장과 같은 뛰어난 제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공자는 현실 정치에서와는 달리, 교육과 학문에서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그렇다면 과연 위대한 성인, 공자는 누구에게서 배웠을까? 이와 관련하여, 위나라 대부 공손자가 공자의 제자 자공에게 물은 일이 있었다. “당신네 선생 공자께서는 어디서, 누구에게 배우셨는가?” 이에 대해 자공은 문왕(文王-중국 고대 주나라의 기초를 닦은 임금. 주변의 적국을 진압하고, 백성들에게는 덕치를 베풀었음)과 무왕(武王-아버지 문왕의 뒤를 이어, 중국 주나라를 건국함. 중국 봉건제도를 창설함)의 도가 아직 땅에 떨어지지 않고 사람들 사이에 남아 있는 바에야, 어찌 현자(賢者)가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겠습니까? 우리 선생님께서는 어디든, 가서 배우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따라서 어디서 누구에게 배웠다는 식의 일정한 스승은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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