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사진가 수필가

중앙과 지방을 불문하고 모든 문화정책은 정치와 정확하게 연결 되어 있다. 정책 없는 문화는 없으며 정권의 중심이 방향을 어디로 잡느냐에 따라 르네상스와 암흑기는 결정 된다. 직전 정권에서 시행되었던 문화연예계의 블랙리스트는 많은 예술인들을 절망에 빠지게 했고 창작 의욕을 꺾어 놓기에 충분했다. 봉준호 영화감독 역시 그 명단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봉 감독이 기생충이라는 영화로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영광의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자 이 문제는 다시 세간에 회자 되었다. 일찍이 박근혜 정권 당시 블랙리스트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던 감독은 이창동과 박찬욱 감독이었다. 영화계를 대표하는 명인들의 날개를 묶었던 셈이다. 지방도시 역시 리더의 성향에 따라 문화사업의 성패는 갈린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우선인지 정신적 프라이드의 고양이 우선인지에 따라 지역의 성향은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잘 다듬어진 도로로 대표되는, 골목문화의 전적인 희생으로 만들어진 시내 정비 사업은 새로운 문화 양상을 만들었고 이제 개발의 손길은 물무산을 거쳐 성산으로 번지고 있다. 다음은 태청산과 장암산이 목표가 될 것임을 직감하지만 이를 걱정하는 군민은 없다. 우선 놀기 좋고 즐기기 편하니 좋을 뿐이다. 우리가 선진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개발이 보존의 바탕에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조금씩 치러지는 문화사업도 방향이 틀려있기는 마찬가지다. 지역의 전문가들도 모르는 사이에 치러지는 행사가 있고 방법마저 틀려 있다면 심각하다.

최근 봉준호 감독의 쾌거는 모든 국민을 들뜨게 했고 우리 영화산업에 자긍심을 갖게 했다. 하지만 물밑에서 생성되는 어두운 문화의 그림자는 탄탄한 영화산업을 이어가기에 만만치 않은 장해물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특히 일부 야권 정치인들의 몰상식과 몰염치는 영화인을 벗어나 모든 국민의 공분을 사기에 부족하지 않다. 나경원 한국당 대표는 수상을 축하한다는 영혼 없는 멘트 뒤에, 명예 황금종려상을 받은 알랭 드롱의 영화 내용의 거짓말을 스스로 진실로 믿는 톰 리플리역할에서 나온 리플리 증후군을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블랙리스트로 묶었던 감독이 100년 영화사에 남을 큰 상을 수상했는데 이를 이용해 현 정부를 공격하는 것이라면 정상인이기를 스스로 거부한 행위로 밖에는 생각할 방도가 없다. 자신 스스로가 리플리 증후군에 심각하게 빠져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실제 그의 발언은 거짓이 많고 심각하게 왜곡된 내용이 많다. 자신의 발언을 스스로 진실로 믿고 있으니 언제나 떳떳하고 당당하다. 그리고 자신의 정권에서 죽이려 했던 감독의 영광된 수상까지 현 정부의 폄훼 수단으로 돌려 사용하는 파렴치함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어느 중견 여성감독의 파티장에 상복을 입고 나타나 곡을 하는 형태라는 비판이 조금도 과하지 않다.

이들이 재벌과 결탁한 부작용은 영화계에서도 심각하게 나타난다. 국내 영화의 보호를 위한 스크린 쿼터제는 일단 성공했지만 문제는 대기업의 스크린 독점이다. 여기서 만들어지는 것이 천만 관객이다. 국내 개봉관의 대부분을 장악하며 내걸린 영화는 일일 누적관객의 기록을 깨고 국민들은 이 기록에 다시 열광한다. 실제 천만 관객을 접두어로 달고 있는 영화가 얼마나 작품성이 우수한 영화인지 스스로 판단해 보자. ‘기생충이란 좋은 영화가 이번 칸 영화제의 성과 없이 국내에 개봉 되었다면 몇 만 관객이나 동원했을지 의문이다. 천만 관객이라는 타이틀은 개봉관을 장악한 대기업이 만들고, 작품성 보다는 철저한 대중성을 노려야 가능하다. 실제 잔잔한 감동을 주는 잘 만들어진 영화는 대중성이 없어 뜨지 못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부산영화제의 폐단도 마찬가지다. 영화제에서 독립성과 표현의 자유가 제약 받는다면 의미를 잃는다. 그야말로 발전의 제약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의 생각은 중요한 것이다. 특히 국가의 리더는 문화를 이해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봉준호 감독은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대해 블랙리스트가 존재했던 시간은 한국 예술인들을 깊은 트라우마에 잠기게 한 악몽 같았던 몇 년이었다고 말했다. 말단 지방자치도 마찬가지다. 문화예술의 무관심은 오히려 블랙리스트보다 가혹하다. 블랙리스트는 그나마 관심의 대상이라도 되지만 무관심은 그냥 없는 것이다. 정치는 단체장의 기록으로 남아 역사가 된다. 후대에 어떻게 남느냐는 본인들의 몫이고 판단은 백성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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