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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군 청소년을 위한 바른 이야기 55
국형진/ 영광군청소년상담센터소장
2019년 07월 08일 (월) 10:35:59 영광신문 press@ygnews.co.kr
   

용서, 미안함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 대한 깨달음 <1>

필자는 중학교 시절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골목길에서 나오는 차와 사고가 난적이 있다.

차 휀다(엔진실 옆부분) 부분을 들이받고 보닛위를 넘어서 반대쪽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얼마나 아팠던지,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아찔하다. 그런데 그 사건이 기억에 잊혀지지 않는 이유는 아저씨의 태도였다. 차에서 내렸던 아저씨는 다짜고짜 고함을 지르면서 자전거를 그렇게 빨리 타면 어떻게 하냐며 마구 나무라셨다. 자전거는 박살이 나고, 몸은 아스팔트에 쓸려 온통 까졌는데, 아저씨는 시종일관 나를 나무라시더니 그냥 차를 타고 가버리셨다.

차가 가버리고, 나선형의 모양으로 변해버린 자전거 앞타이어를 보면서 혼자서 엉엉 울면서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자전거를 끌고 갔었다.

자전거가 부서져서 속상했고, 혼나서 억울했다. 몸이 아프니 그 서운함을 더욱 컸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후로 자전거 타면서 속도 내는 것을 무서워했던 것 같다.

그 일이 있고, 한 이십년 정도 지났을까? 30대 중반쯤 되어서 마음 급한 출근길에 골목길에서 자전거를 타고 갑자기 튀어 나온 아이를 자동차로 치인 일이 생겼다. 마치 데자뷰처럼. 자전거가 부서지고 아이가 바닥에 넘어져 나뒹구는 모습을 보고 너무 놀란 나머지 내리자 마자 아이에게 다쳤는지 물어보고, 바로 119에 전화를 해서 아이를 병원으로 옮겼다. 다행이 많이 다치지는 않았지만 찰과상과 타박상으로 전치 2주 진단을 받고 입원을 시켰다.

인사 사고가 나서 보험금이 할증이 되었지만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한 행동에 대해 법적으로 책임져야 할 문제를 보험이라는 과정을 통해 비용으로 전환하여 책임을 묻는 것이기 때문에 그건 당연히 내가 져야할 책임의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병원 복도에서 아이가 치료를 하는 동안 아이의 부모가 병원에 도착했고, 부주의하게 운전한다며 부모가 매우 거친 태도를 보였다.

그 순간 마치 20년전 데자뷰를 보는 것 같은 몽환적인 상태가 되었다. 마치 그날 자동차에서 내려 화를 내는 아저씨의 얼굴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 아이가 다쳐서 그저 미안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 집에 누워서 20년을 두고 입장이 바뀌어 비슷하게 발생한 두 문제를 고민했다. 그때 아저씨의 마음이 오늘 나의 마음과 같았을텐데 그날 그 아저씨는 얼마나 당황스러우셨을까? 얼마나 놀라셨을까? 그래서 그날 자신의 불편한 마음을 나에게 표현하신 것 같다. 정제되지 않은 감정의 날것을 보여주면서 말이다. 오늘 다친 아이의 부모가 내게 했던 행동처럼 말이다.

그래서 아저씨와 오늘 다친 아이 부모의 그 화냈던 마음을 이해하려고 했다. 아저씨와 그 부모의 표현이 너무 거칠었지만, 놀란 마음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기에,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너무 무례하고, 상스러운 말도 있었지만 용서하기로 했다. 용서 한다는 것이 그 아저씨, 그리고 그 부모와는 상관없이 내가 정하는 문제이다. 아저씨의 상황을 이해하고 내가 문제 삼지 않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저씨와 마찬가지로 다쳐서 길에 넘어져있는 아이 얼굴에서도 내 모습이 보였다. 자동차에 부딪힌 아이의 경험을 이미 해보았기 때문에 아이에게 왜 골목에서 빠르게 달렸는지, 왜 자전거를 부주의 하게 탔는지 물어 볼 필요가 없었다. 지금의 문제는 아이가 다쳤다는 것이 본질이었기 때문에 아이의 구조에 우선하여 행동하였고, 병원에 함께 가던 아이에게 수차례 사과를 했고 아이 또한 미안하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물어 보지도 않았는데, 앞으로 자전거를 조심히 타야겠다고, 아저씨 차 부서져서 미안하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용서를 받았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이런 일이 많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속상하게 하는 사람, 피해를 주는 사람이 있을수 있다. 하지만 문명 사회에서 법치 국가를 이루고 사는 우리들에게 위법한 각자의 행동은 법적으로 책임을 물게 되어있다.

그래서 법적으로 처벌받는 문제는 당연히 모두가 받아들이는 공공연한 기준이다. 하지만 마음속의 기준은 다른 것 같다. 나를 힘들게 한 저 사람을 법적으로 처벌받게 하는 것과 별개로 용서하지 못하고, 내가 나를 힘들게 한 그 사람에게 뭔가 더 보복과 복수를 해서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정한 법적 테두리를 무시한 미숙한 생각이다. 만약 법이 잘못되었다면 법을 바꿀일이지 우리 당사자가 우리 피해를 복수할만한 권한이나 행위를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오히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보복하는 행위는 원인행위보다 더 큰 처벌을 받을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용서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잘못된 것은 법의 잣대로, 우리의 마음은 용서라는 약으로 치료해서 더 이상 마음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시 청소년들중 자신이 법위에 서서 뭔가 결정하고 집행하려는 친구가 있다면 그 생각은 참 어리석고 미숙하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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