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진/ 광신대학교 복지상담융합학부 교수

부다(Buddha)가 싯다르타 왕자였을 때, 그는 궁궐 밖을 산책하다가 병들고 주름투성이의 초라한 한 남자를 보게 되었다. 처음으로 노인이라는 존재를 알게 된 부다는 사람이 늙으면 누구나 노인이 된다는 사실을 통해 놀이, 즐거움의 덧없음을 깨닫게 되었고, 결국 모든 인간의 내면에 미래의 노인이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 안에 이미 미래의 노인이 살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들로 하여금 변화에 대한 두 가지 입장을 필요로 하게 한다. 하나는 노인을 보는 우리의 시각의 변화이고, 다른 하나는 주변상황의 변화에 대한 노인들의 시각의 변화이다.

인간은 누구나 노인이 되면서 젊었을 때 그들이 가졌던 자질과 결점들을 고스란히 가지고 간다. 바로 이러한 점들 때문에 사회는 노인을 부정하고 있다. 젊은이들과 똑같은 욕망과 감정, 욕구 등을 표명하는 노인은 사람들의 빈축을 사게 되며, 노인들간의 사랑과 질투는 추하거나 우스개꺼리가 되고, 그들의 성행위는 혐오스럽고 주책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젊은이들의 사랑과 질투, 성 등 그들의 감정과 욕구는 당연한 것이며 아름다운 것인 반면에 노인들의 감정과 욕구는 추하고 더러운 것으로 낙인되어 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노인들은 모든 미덕의 본보기가 되어야 함을 강요당하고 있다. 사람들이 노인들에게 요구하는 이미지는 경험이 풍부하고 박식하며 존경할 만한 인간이다. 노인들이 그런 이미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때 그들은 가차없이 노인을 형편없는 밑바닥 존재로 전락시키고 마는 것이다.

이처럼 아주 특별한 존재로서 노인을 보는 우리들의 특별한 시각 때문에 노인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방해받게 되며, 결국 노인과 사회간의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특별한 존재가 아닌 평범한 하나의 인간으로 노인을 보는 우리들의 시각의 변화이다.

한편, 노인들은 새로운 것, 선택한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며, 그들의 열등감은 망설임, 의심으로 나타난다. 그들에게 있어서 변화에 따른 새로운 선택보다는 습관을 따르는 것이 훨씬 쉽기 때문에 사람들은 늙어가면서 예전보다 더욱 엄격하게 그들의 습관을 지켜나간다. 사물들은 항상 제 위치에 있어야 하고, 식사와 운동은 꼭 정해진 시간에 해야 한다. 이처럼 대수롭지 않은 혼란이 노인들을 자극시키는 것은 바로 습관이 노인들에게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이러한 경향은 노인들로 하여금 의미 없는 괴벽을 지닌 고집불통으로 만들기도 한다. 매일 가는 노인정의 자기자리에 누가 앉아 있다거나 정해진 시간에 꼭 해왔던 것을 하지 못 할 때 화를 내는 행위들은 결국, 그들로 하여금 생활에의 적응을 힘들게 만든다.

이처럼 노인들이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은 변화를 통해 새로운 출구를 찾기보다는 과거와 단절될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두려움 때문이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불신 속에서 남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고 간섭을 받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외부세계와의 의사소통의 단절이 발생하게 되고 만다.

결국 이러한 노인의 독특한 특성 때문에 노인들은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소외될 수밖에 없다. 일상적인 삶 속에서 보여지는 노인들의 수동적이고 보수적인 경향은 쉽게 변화되지 않는다. 때문에 이를 위한 보다 구체적인 방안들이 요구되는데 이것은 곧 교육을 통해서 가능해질 수 있다. 노인들에게 가족관계, 인간관계, 사회와의 관계 등 노후의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가르쳐주고, 삶의 의미를 찾아줌으로써 노인들 스스로 그들의 생활을 변화시킬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이루어져왔던 산발적인 노인교육기관의 운영와 오락위주의 프로그램으로부터 새로운 도약이 필요하다. ‘노인의 해덕분에 모처럼 얻은 사회의 관심이 순간의 유행으로 끝나지 않도록 정책입안자들이나 관련 교육 담당자들의 사려깊은 행동들이 요구되며, 노인교육에 대한 사회의 관심과 올바른 이해가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는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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