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성인의 제자들(석가모니③)

석가모니의 세 번째 제자 마하가섭은 가섭 또는 대가섭이라고도 불린다. 인도의 왕사성에서 큰 부자였던 브라만(=바라문. 인도 카스트제도에서 가장 높은 성직자 계급)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린 나이로 가비리라는 바라문의 딸과 결혼했다. 그러나 12세에 부모를 잃고 세속적인 욕망의 허무함을 깨달아 아내와 함께 출가했는데, 그 후 석가모니를 만나 가르침을 받고 제자가 되었다.

8일 만에 바른 지혜의 경지를 깨쳐 자기 옷을 벗어 석가에게 바친 후, 부처가 주는 마을 밖의 쓰레기더미에서 주워온 헌옷의 천으로 만든 분소의(糞掃衣-세속의 사람이 버린 헌 천을 주워, 빨아서 지은 옷. 이 천은 똥을 닦는 헝겊과 같으므로 분소의라 불림)를 입고 아라한과(모든 번뇌를 끊고, 다시는 생사의 세계에 윤회하지 않는 아라한, 즉 소승 불교의 궁극에 이른 네 종류의 수행자 가운데 첫 번째 지위)를 얻었다고 한다.

욕심이 적고 스스로 족한 줄을 알아 항상 엄격한 계율로 두타(頭陀-번뇌의 티끌을 없애고, 의식주를 탐내거나 집착하지 않으며, 맑고 깨끗하게 불교의 도를 수행하는 것)를 행하고, 교단의 우두머리로서 존경을 받았으며, 석가모니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다. 영취산(왕사성 동북쪽에 있는 산으로, 석가모니가 법화경과 무량수경을 설법하였다는 곳. 영산 혹은 취산이라고도 불림)에서 스승이 꽃을 꺾어 보였을 때, 오직 마하가섭만이 그 뜻을 이심전심으로 이해하고 미소 지었다는 염화시중의 미소가 유명한 이야기로 전해진다. 석가는 모든 무상(無上)의 정법(正法-올바른 불교의 교리)을 가섭에게 부탁하며, 자신이 죽은 뒤 모든 수행자의 의지처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석가모니가 열반(죽음에 듦)할 무렵, 가섭은 다른 곳 즉 바사성에 머물며 대중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한편, 석가가 열반에 들자 제자들이 모여 다비 의식을 집행하고자 하였다. 석가의 몸을 관에서 꺼내 향수를 바르고 비단과 면으로 감싼 다음 다시 관에 모신 후, 기름을 가득 부었다. 그리고 그 아래의 장작더미에 불을 붙였다. 하지만 불은 계속 꺼지기만 했다. 사람들이 까닭을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제석천왕(사천왕과 주위의 32천왕을 통솔하는 존재)이 말하기를 석가께서 제자 가섭을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이시다.”라고 했다. 한편, 바사성에서 중생을 가르치고 있던 가섭은 한 고행주의자가 하늘 꽃을 줍는 것을 보고, 뭔가 집히는 바가 있어 급히 달려왔다. 가섭이 도착하여 석가를 뵙고자 간절히 세 번 청하자, 석가는 잠시 두 발을 보여주었다. 이에 가섭은 대중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우리 스승의 보배로운 관은 삼계(三界-미혹한 중생이 윤회하는 세 가지 세계)의 불로 태울 수 없다.” 가섭의 말이 끝나자 석가의 가슴에서 삼매(三昧-집중하는 정신력)의 불이 소리를 내며 일어나, 관 밖으로 퍼져 나왔다. 이렇게 하여 7일간의 다비가 끝나자 성스러운 사리(舍利-참된 불도 수행의 결과로 생긴다는, 구슬 모양의 유골)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나왔다. 이 사리들을 여덟 나라의 국왕들이 똑같이 나누어,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 탑을 세워 공양하였다.

한편 다비의식을 끝낸 가섭은 500명의 아라한(소승의 수행자)들을 모아 스스로 그 우두머리가 되어, 슬픔에 빠지거나 마음이 흔들리는 제자들을 통솔하여 교단의 분열을 막았다. 또한 다른 제자 아란과 우바리로 하여금 경()과 율()을 낭독하도록 하여, 1회 불교 결집(結集-스승인 석가의 유훈을 모아 편집하는 일)을 이끌어냈다. 이에 특히 불교의 선종에서는 그를 제1조로 높이 받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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