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과 농업인이 힘을 모으는 농업인 행복시대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동심동덕(同心同德)의 자세로 농업·농촌과 함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는 농협들이 늘어가고 있다. 특히 청년 농업인과 다문화가족, 귀농·귀촌인이 보다 쉽게 영농활동을 영위하고 농촌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영광신문은 농협중앙회 김병원 회장이 제시하는 이야기들을 순차적으로 게재한다. <편집자 주>

 

고난을 극복하게 해주는 지혜로운 역설의 힘

아무리 슬퍼도 늘 즐거운 얼굴을 한다.’ 어떤 사람의 좌우명이다.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평범한 다짐 같지만, 이 좌우명의 주인이 빈센트 반 고흐라면 좀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누구보다 불행하게 살다 간 예술가의 이 아이러니한 좌우명은 그래서 오히려 더 간절하게 다가온다. 고흐는 정신병원에 갇혀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는 와중에도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행복과 불행은 둘 다 인생에 꼭 필요한 가치라고 말했다. 도대체 언제쯤 행복해질까?’ 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고흐의 좌우명은 묵직한 역설의 위안으로 들린다.

역설과 반전은 영화나 소설, 드라마에서 흥미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요소로 작용한다. 어쩌면 우리 삶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비극적인 삶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작품을 남긴 고흐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엔 악조건을 딛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간 사람들의 수많은 이야기가 존재한다. 주어진 현실에 굴복하지 않을 때 역설은 희망이 된다.

런던의 어느 길모퉁이에서 구두를 닦으며 살아가는 한 소년이 있었다. 빚 때문에 아버지가 감옥에 갇히자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구두닦이로 나선 것이다. 하지만 이 소년은 늘 노래를 부르면서 즐겁게 구두를 닦았다. 구두 닦는 일이 뭐가 즐겁냐는 손님들의 질문에 소년은 이렇게 답변했다. “저는 지금 구두를 닦는 게 아니라 희망을 닦고 있으니까요.”

이 소년은 자라서 영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가 된다. 소년의 이름은 찰스 디킨스, 누구나 한 번쯤은 읽어봤을 <크리스마스 캐럴>의 저자다. 가난과 역경이라는 척박한 삶에 희망의 씨앗을 심는 소년 디킨스의 여유에서 우리는 희망의 역설을 만나게 된다.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가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성공의 비결을 묻는 기자들에게 가난하고, 배우지 못했으며, 몸이 허약했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가난했기 때문에 신문팔이, 구두닦이 등을 하며 세상사는 지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만나는 사람들을 모두 스승으로 여길 수 있었습니다. 몸이 허약했기 때문에 평생 운동을 하며 건강관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가난 탓, 못 배운 탓, 허약한 탓가난 덕분에, 못 배운 덕분에, 허약한 덕분에로 바꾼 데서부터 그는 이미 보통 사람의 삶과는 다른 궤적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결핍을 풍요로, 저주를 축복으로 반전시킨 그의 삶은 가히 역설의 축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고난과 역경을 대하는 자세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회피하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어려움을 정면으로 부딪쳐 극복해 내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 특히 무언가 보상이 주어지는 일보다는 아무런 대가 없이 의미 있거나 가치 있는 일을 하다가 어려움을 맞이할 때, 사람들은 회의감에 빠져들고 지속할 힘도 더 쉽게 잃곤 한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할 때면 포기하기가 한결 수월하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의 사업 중에서도 수익을 추구하는 부문에서는 손에 잡히는 수익과 향상된 수치가 눈에 보이기 때문에 나름의 목표의식과 조직 기여감이 확실한 편이다. 반면 가치를 추구하는 일일 때는 열심히 노력하는데도 속도가 더디거나 효과가 잘 드러나지 않아 쉽게 지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추진 과정에서 방향성에 대한 의구심이 수시로 들기도 한다. 가치를 추구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인 셈이다.

이런 어려움에 처해 불안해하거나 불만족스러운 일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지혜로운 역설의 힘이다. 이들에게는 가치에 대한 확신을 지속적으로 일깨워주고, 함께 가고 있는 길에 대한 방향성을 안내해 주어야 한다. 정형화되고 무미건조한 삶보다는 가치를 추구하는 삶, 수많은 난관이 있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해결하는 삶을 포기하지 않을 때 비로소 역설의 힘이 작용한다.

과거 정주영 회장은 직원들이 난관에 부딪혀 어렵다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어려움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지 걸려서 넘어지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어떤 일에도 어려움은 있기 마련이다. 행복한 사람은 어려움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그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다. 행복 역시 어려움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렸다는 뜻이다. 풍랑이 높은 바다에서 배가 전복되지 않게 하려면 파도를 직시해야 한다. 역경의 바다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그 역경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역설이 주는 교훈이다.

 

목적 없는 목표는 허울에 불과하다

공자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제나라의 명제상 안영은 늘 근검절약을 실천하여 백성들의 높은 신망을 받았다. 안영은 제나라 경공이 공자를 등용하려고 할 때 적극적으로 막아선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때 그가 내세운 논리가 선질후문(先質後文)이었다. 바탕이 장식보다 앞선다는 뜻이다. 공자가 좋은 말은 많이 하지만 그의 말이 정작 나라를 경영하는 데에는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되다는 것이었다. 요샛말로 말하면 나라가 어려운데 무슨 공자님 말씀이냐정도가 된다.

그에 대한 답으로 공자는 문질빈빈(文質彬彬)을 내세웠다. 겉모습의 꾸밈과 내면의 바탕이 빛나는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의미다. 교언영색(巧言令色)을 소인들이나 하는 행동이라며 꾸짖던 공자가 안영과 언쟁을 했다는 것이 다소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자의 깊은 뜻에 공감하게 된다.

나라를 어떻게 경영해야 하는가를 두고, 근검절약이 몸에 밴 안영은 빚을 줄이는 긴축재정이 중요하다는 입장이었고 공자는 긴축재정만이 답이라는 편견을 버려야한다고 했다. 공자는 국민의 살림살이가 어렵다면 재정을 확대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즉 국가의 재무상태표 보다 중요한 것이 국민의 삶이라 여겼기에, 공자의 눈에는 안영이 튼튼한 곳간을 자랑하기 위해 국민의 삶을 도외시하는 것처럼 비쳤다.

이런 공자의 경영관은 제자와 나눈 대화에서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제자 자공이 국가 경영의 핵심이 무엇인지 묻자, 공자는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 군대를 충분하게 하고, 백성의 믿음을 얻는 일이다라고 답했다.

전쟁이 일상인 현실에서 자공은 공자의 대답이 한가한 소리라고 생각됐는지 다시 질문했다. “어쩔 수 없이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먼저 포기해야 합니까?” 그러자 공자는 군대를 포기해야 한다고 답했다. 자공은 나머지 둘 가운데 한 가지를 더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이냐고 재차 묻자, 공자는 식량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백성의 믿음이 없는 나라는 그 자체가 존재하지 못한다.”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자신의 삶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나라는 오래갈 수 없다는 얘기다. 외적인 경제지표가 제아무리 화려하다 해도 결국 문제는 국민 개개인의 삶인 것이다.

협동조합도 이와 마찬가지다. 조합원들의 삶을 바라보지 않는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에게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영리기업들과 경쟁하면서 협동조합도 재무제표의 수익성만이 최고라는 생각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특히 IMF 금융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수익이 경영의 최고 가치가 됐고 조합원들의 삶은 서서히 외면당했다. 외형은 크게 성장했지만, 협동조합의 목적인 조합원들의 경제 · 사회 · 문화적 지위는 향상되지 못했다. 목표에만 매몰돼 목적을 잃어버린 것이다. 모두가 수익 추구라는 방향으로 향하면서 사람들의 생각도 그대로 굳어지고 말았다. 조직의 목적과 목표를 다시 조합원들에게로 향하게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일본 국적항공사 JAL이 파산한 것은 2010년의 일이다. 부채총액만 한화로 20조원에 달했다. 누가 봐도 회생불능이었다. 이때 JAL을 살리라는 특명을 받고 교세라 창립자인 이나모리 가즈오가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13개월 만에 기적을 만들어냈다.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던 회사를 흑자로 돌려놓은 것이다. 나아가 20123월에는 역대 최고 흑자를 기록하며 28개월 만에 주식시장에 재상장하는 기적도 이뤄냈다.

많은 이들이 그를 경영의 신이라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알리바바의 마윈,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 등이 가즈오 회장의 경영철학을 연구하고 배우려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가 성공한 것은 정부의 지원이 있어서도 아니고 운이 좋아서도 아니었다. 직원들에게 일하는 이유를 스스로 찾고 받아들이게 한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었다.

“JAL 직원들은 아이들에게나 가르쳐야 할 이야기를 왜 우리에게 하느냐고 생각했을 것이다. 대부분 직원의 얼굴에 그렇게 쓰여 있었기에 나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들이 듣고 있지 않다는 걸 알아차렸다. 하지만 이 내용을 머릿속에 심어 넣지 못하면 회사는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설령 듣지 않더라도 그들을 설득하는 작업을 끈질기게 계속했다.” 가즈오 회장의 회고담처럼 아무리 혁신적인 경영 기법을 도입한다고 해도 왜 이것을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목적이 없으면 목표는 허울에 불과하다.

목표와 목적은 분명 다르다. 이 둘을 혼동하면 가고자 하는 방향이 달라진다. 목적은 우리가 얻고 싶은 것의 본질이고, 목표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다. 목표만 있는 사람은 그 목표를 이루는 데 급급하지만, 목적이 있는 사람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어떤 목표를 세워야 할지 제대로 안다. 어떤 상황에서도 협동조합의 목적을 빛나게 하는 일은 설령 길을 잃더라도 쉽게 돌아올 수 있는 길을 만드는 일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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