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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은 지성이다
곽일순/ 사진가 수필가
2019년 08월 12일 (월) 10:56:38 영광신문 press@ygnews.co.kr
   

일본과의 갑작스런 경제전쟁으로 나라 안팎이 시끄럽다. 특히 정가는 친일파 논란으로 뜨겁다. 우리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치고 나온 일본의 행위로 인해 불거진 경제전쟁의 창끝이 내부 분열로 겨누어진 모습이 기이하다 못해 엽기적이다. 상식적인 판단은 일본과의 다툼에선 여야를 불문하고 뭉쳐야 함이 맞지만 현실은 달랐다. 달라도 많이 달랐다. 거리낌 없이 우리 정부가 아닌 일본의 편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했고 이를 지지하는 단체까지 등장했다. 일부 종교직까지 가세했다. 일본이 일방적으로 걸어온 싸움에 항거하는 정부를 사정없이 욕하고 의도를 왜곡했다. 그리고 일본에 사과를 요구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힘들다.

그래서 많은 국민이 다시 촛불을 들고 모였다. 일본 대사관을 기점으로 시작한 시위는 마지막엔 조선일보로 향했다. 언론을 규탄하는 일이 흔하지는 않지만 현실이 되었다. 참을 수 없는 분노의 이유를 국민은 알고 있지만 언론 본인만 모르고 있다. 아니 모른 척 하고 있다. 당일 유수 언론 대다수는 조선일보 규탄을 다루지 않았다. 하지만 촛불시민이 들고 있는 피켓에는 이들의 분노가 나타나 있었다. 21세기에 무슨 친일파 논란이냐고 하지만 실제 국익을 흔들고 일본을 돕는 친일파가 TV화면을 장식하고 있으니 문제다. 일본의 편에 서서 우리 정부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요즘 세상에 친일파 운운하는 것은 시대적 착오라고 오히려 말한다. 총만 들지 않은 경제 전쟁이 붙었는데 적군의 편을 들면 친일파가 맞다. 문제는 이들의 의식구조다. 배운 게 없으니 아는 게 없고 아는 게 없으니 판단력이 없다. 중요한 것은 알려는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오직 자신에 대한 맹신이 전부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이 사실이고 진리다. 누구의 말도 옳지 않다. 지식의 편견과 협소증이 만든 오만이다.

평소에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의 특성은 폭이 넓다는 것이다. 생각과 이해가 넓고 앎이 풍부하니 판단은 정확하다. 주관에 치우치지 않고 한발 물러난 직관은 여유가 있다. 인간의 지성은 대체로 독서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아집과 편견 그리고 오만을 바닥에 깔고 사는 부류의 공통점은 무지이다. 당연히 인문서와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지식의 창고는 텅 비어 있는데 스스로는 지성인으로 착각을 하고 있으니 왜곡된 사실에 바로 오염이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이 판단의 오류다. 개인적인 사항이라면 별 문제 없겠지만 국익이 걸린 사안에선 큰 장애가 되기도 한다. 한국 정부가 일본에 사과하라는 발언은 일본 극우단체들의 절대적인 지지 속에서 폭풍 퍼 나르기가 계속 되었고 결국 아베의 지지율 상승으로까지 이어졌다. 우리 국민 그것도 어머니를 내건 단체가 트로이의 목마였던 셈이다. 무지의 표본이다. 이들은 아직도 일제강점기의 공포정치를 정신적으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때리는 상대에게 저항이 아니라 오히려 잘못을 빌고 용서를 구하라는 요구를 하는 것이다. 더욱이 1965년 한일협정으로 모든 정산은 끝났으니 더 이상 거론하지 말자는 발언은 그대로 아베 정부의 대변이다. 반국가적 발언과 주장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현실에서 현기증을 느끼는 사람이 나 혼자뿐일까.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가장 큰 요소는 바로 이성과 지식이다. 지식은 냉철한 이성을 만들고 이성은 인성을 만든다. 그래서 개인의 발현인 개성의 시작은 지식이다. 지식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다. 아무런 노력 없이 지성을 바랄 수 없고 지성 없는 판단은 흐리기 마련이다.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옳고 상대는 그르다는 강한 신념에서 정의를 찾지만 그들의 정의는 많이 왜곡되어 있으니 문제다. 옳은 판단은 지식을 요한다. 특히 지식의 합일체를 필요로 한다. 소경이 코끼리의 형상을 파악하려면 모든 부위를 만져봐야 한다. 그리고 경험의 합일체를 도출하면 코끼리의 형상이 나온다. 여기서 모든 부위를 만져보는 행위는 공부다. 무지에서 눈을 뜨는 공부는 바로 독서이고 방대한 독서는 판단의 모태인 지성을 만든다. 일본을 은인으로 모셔야 한다는 일부 성직자의 극망언은 지식의 편협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신만의 지식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내일을 모르는 하루살이요 4계를 모르는 매미고 밖을 모르는 정저지와(井底之蛙). 옳은 판단은 지성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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