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과 농업인이 힘을 모으는 농업인 행복시대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동심동덕(同心同德)의 자세로 농업·농촌과 함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는 농협들이 늘어가고 있다. 특히 청년 농업인과 다문화가족, 귀농·귀촌인이 보다 쉽게 영농활동을 영위하고 농촌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영광신문은 농협중앙회 김병원 회장이 제시하는 이야기들을 순차적으로 게재한다. <편집자 주>

 

민족의 생명이 깃든 종자

2차 세계대전이 절정으로 치닫던 무렵, 강력해진 독일이 레닌그라드를 침공했다. 당시 러시아 바빌로프식물산업연구소에서 식물 종자를 연구하던 12명의 과학자는 독일군을 피해 차가운 지하실에 숨어 있었다.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은 종자와 씨감자를 지켜내기 위해서였다.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으로 12명중 9명이 죽어 나가는 상황에서도 씨앗에는 절대 손을 대지 않았다. 아무것도 먹지 못해 손발조차 움직이기 힘들었지만 종자만큼은 끝내 지켜냈다. 생존자 중 1명은 훗날 종자를 먹지 않고 버틴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상상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 종자에는 내 삶의 이유, 우리 민족의 생명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켈리 티머먼이 <식탁위의 세상>에서 소개한 내용이다.

인류는 수천 년 전부터 종자에 의존하여 농업을 이어왔다. 대를 이어 흘린 땀과 노력의 결정체인 종자는 한 개인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인류 공동의 자원이었다. 우리 선조들 역시 가을수확기가 되면 가장 좋은 종자를 골라 창고에 저장해 두었다가 이듬해 봄이 되면 그 종자로 한 해 농사를 준비했다. 농부아사 침궐종자(農夫餓死 抌厥種字)란 말에 그 애절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농부는 굶어 죽더라도 이듬해 뿌릴 씨앗을 남겨 머리에 베고 죽는다는 뜻이다. 그만큼 씨앗을 목숨처럼 지켜온 농업인들 덕분에 우리의 삶과 역사가 이어져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돈으로 씨앗을 사고파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종자를 공급하는 주체가 농업인에서 종사 기업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목숨처럼 지키고 보존하며 소중히 대물림 해왔던 종자가 어느새 이윤 추구를 위한 상품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한국의 매운맛을 상징하는 청양고추만 해도 그렇다. 청양고추는 원래 국내 고추와 태국산 고추를 교배하여 개발한 품종이다. 하지만 이 청양고추를 먹을 때마다 외국 기업에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국내 종자 회사가 몬산토 등 다국적 기업에 팔렸고, 그때 청양고추 종자의 소유권도 함께 넘어가고 말았다.

콩은 또 어떤가. 예로부터 만주와 한반도가 주 원산지였던 콩은 18세기에 서양에 전파됐다. 콩의 가치를 알아차린 미국은 일찌감치 한국 등 동아시아 지역으로 동양농업 탐험 원정대를 파견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원정대가 수집해 간 콩은 무려 4,471점에 달했고, 그중 3,379점이 우리나라 콩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그토록 다양한 콩이 재배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물론, 그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인지도 우리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미국은 그렇게 수집한 종자를 깊이 연구하여 우수한 품종으로 발전시켜 오늘날 세계 1위 콩 수출국이 됐다. 그리고 콩 종자의 원조국이나 다름 없던 우리나라의 식용 콩 자급률은 25%수준에 불과하며, 이제는 거꾸로 미국에서 수입해야만 하는 형편이 되었다.

우리가 먹는 농산물 식재료의 국산 종자 비율은 얼마나 될까? 놀랍게도 농산물의 절반가량이 수입 종자로 재배된다. IT제품과 도서, 음악 등에만 특허권이나 지적권이 있는 게 아니다. 종자의 작물 생산, 판매할 때도 종자 소유권을 가진 기업에 특허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국제식물품종보호동맹 조약에 따라 종자에 대한 특허권이 전 작물로 확대 적용됐기 때문이다. 이제 외국의 거대 농업 기업들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획득한 특허를 가지고 종자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정부 자료 등에 따르면 다국적 기업에 지불하는 농작업 로열티가 한 해 평균 15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예전 같으면 우리 농업인들이 거뒀어야 할 수익이 거대자본을 앞세운 종자 기업으로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한 알의 씨앗이 세계를 바꾼다는 말은 이제 눈앞의 현실이 됐다. 파프리카 작은 씨앗 1그램이 12만원 호가한다. 금 한 돈의 무게인 3.75그램으로 환산하면 무려 45만원에 이른다. 금 한 돈의 시세가 18만원 정도이니 금보다도 2.5배나 비싸다는 얘기다. 어느새 종자가 금보다 귀한 시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종자보다 금을 더 가치 있게 여긴다. 이와 반대로 선진국들은 농업의 반도체라 불리는 종자 산업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인식하고 종자와 관련된 각종 문제를 적극적으로 대비하고 있다. 인구의 증가, 기후변화 등으로 식량에 대한 중요성이 커졌고 이를 선점하기 위한 종자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하루빨리 이 흐름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지금 식탁에 오르는 흔한 농산물들을 비싼 로열티 때문에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그러므로 종자 문제는 농업계뿐만 아니라 정부와 재계, 국민 모두가 함께 대응해 나가야만 한다. 죽음 앞에서도 씨앗만은 지켜냈던 선조들의 마음을 기억하자.

 

우직한 바보의 삶은 탁월함으로 인도하고 세상을 바꾼다

딸 바보는 바보가 아니다. 딸을 너무 사랑하는, 그래서 딸을 위해서라면 바보처럼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아버지 또는 어머니일 뿐이다. 이처럼 무언가에 미쳤거나 몰입하는 사람을 요즘 세상에선 바보라고 부른다. 책을 좋아해서 닥치는 대로 모으고 읽고 나누면 책 바보가 되는 식이다.

예전과는 달리 요즘은 바보라는 말이 전혀 기분 나쁘지 않다. 우직하고 한결같다는 의미로 쓰이기 때문이다. 바보라는 어감이 따뜻하게 다가오는 까닭은 그만큼 영악하고 이해타산에 밝은 사람들로 넘쳐나는 시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는 그것을 자본주의 폐해라고도 하고, 누구는 공동체 개념을 상실한 탓이라고 한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역사적으로 세상을 바꿔온 이들은 대부분 영악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바보들이 세상을 바꿨고, 바보들 덕분에 많은 이들이 삶의 위안과 희망을 얻었다.

김수환 추기경은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바보로 꼽힌다. 그의 평생을 제대로 응축해서 표현하는 데 바보만큼 딱 맞아 떨어지는 단어를 찾기 어렵다. 김수환 추기경은 손수 그린 자화상 아래에 바보야라고 썼다. 자신을 바보라 부르며 늘 겸손했다. “오늘이 삶의 마지막 순간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러면 항상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바보처럼 그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았다. 선종하는 마지막 순간에도 각막을 기증하며 바보로서의 삶을 완성했다. 삶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의 가르침대로 오늘이 삶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해보면 하루가 새롭게 와 닿곤 한다. 10년이 지났지만 김 추기경께서 남기신 여러 메시지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크고 긴 울림으로 남아 있다.

바보는 꾀를 부리지 못한다. 그래서 쉼 없이 시도하는 삶을 산다. 201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일본의 나카무라 슈지가 그렇다. 그는 세계 최고의 석학도, 글로벌 기업의 연구원도 아니었다. 시골에서 태어나 지방에 있는 도쿠시마대학을 나와 중소기업에서 일하던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신념을 이루기 위해 홀로 연구에 매진했다. 연구 환경은 열악했고 그의 연구를 반기는 사람도 없었지만, 4년간 무려 500번에 달하는 실험을 반복했다. 그리고 1993, 마침내 청색 LED를 개발했다. 세계적인 기업과 연구소가 27년간 도전했지만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니 아주 단순한 일들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성공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보들이 원래 그렇다. 영리하고 꾀 많은 사람이라면 손사래를 칠 만한 일들을 그들은 몇 년이고 묵묵히 반복한다. 그렇게 티끌과도 같은 일들이 쌓이고 쌓여 성공이라는 태산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바보의 일생은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대변된다. 모차르트는 음악의 천재인 동시에 음악밖에 모르는 바보였다. 비록 짧은 생을 살았지만 그가 평생 창작한 곡을 악보에 베끼는 데에만 30년이 걸릴 정도로 방대한 양의 작품을 남겼다. 빈센트 반 고흐는 10년 동안 무려 1,000점의 그림을 그렸고, 아인슈타인 역시 특수상대론 이론을 세운 뒤 일반상대성 이론을 정립하기까지 10년 동안 거의 밤잠을 자지 않고 연구에 몰두했다고 한다. 조선중기의 시인 백곡 김득신은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책을 읽는 데 모든 노력을 쏟았다. 최소 1만 번 이상 읽은 책이 30권이나 되고, 사기<백이전>은 무려 113,000번을 읽었다고 한다. 천재는 타고난다고 하지만 바보스러울 만큼 열정적인 노력 없이는 무엇도 이룰 수 없다.

바보의 삶은 우직한 삶이다. 수필가 윤오영의 <방망이 깎던 노인>에 등장하는 노인이 그렇다. 외출했던 주인공이 마침 방망이 깎는 노인을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방망이 값이 너무 비싸다며 흥정을 벌여보지만 노인은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다. 결국 흥정을 포기하고 잘 깎아달라고만 하자, 노인은 그제야 천천히 방망이를 깎기 시작한다. 차 시간에 쫓기는 주인공이 대충 깎아달라고 해도 노인은 아랑곳없이 방망이를 깎고 또 깎는다. 결국 차를 놓친 주인공은 화를 내며 방망이를 들고 늦게 귀가한다. 그런데 방망이를 건네받은 부인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고 손에 딱 맞는 최고의 방망이라고 감탄한다. 그제야 주인공은 자신의 경박함을 뉘우친다. 노인은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어도 자기 일을 우직하게 해나가는 장인이었던 것이다.

은장도를 만들건 도자기를 굽건 나전을 입히건 문화재급 장인들의 손은 작품을 위해 수천 번을 움직인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물건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쉽게 포기하지 않고 타협하지도 않는 우직함이 그들의 힘이다.

바보가 추구하는 가치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이해타산에 밝고 영악한 요즘 사람들이 보기에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바보들에게는 우보천리(牛步千里)’이며 우공이산(愚公移山)이다. 바보 같지만 소처럼 앞만 보고 뚜벅뚜벅 걷다 보면 언젠가는 뜻하는 바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훌륭한 업적을 이룬 사람들은 이처럼 한 우물을 팠다. 밑 빠진 독인 줄 알면서도 계속 물을 갖다 부었다. 그것이 뜻밖에 세상에 이로운 결과들을 만들어냈다. 밑 빠진 독을 타고 흘러내린 물이 나무의 뿌리를 적셔 거목으로 키우고 숲을 이루게 한 것이다.

조직이든 일이든 달라지려면 먼저 습관이 바뀌어야 한다. 무수한 많은 시간 동안 묵묵히 전진하는 노력이 쌓이고 쌓여서 임계점을 넘어섰을 때 하나의 목표가 달성되는 것이다. 마법처럼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난득호도(難得糊塗), 즉 바보처럼 사는 게 더 어렵다.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바보처럼 묵묵히 가는 것 역시 결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길을 가야 한다. 김수환 추기경은 나의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무려 70년이 걸렸다라고 하셨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는 결국 바보가 되어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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