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과 농업인이 힘을 모으는 농업인 행복시대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동심동덕(同心同德)의 자세로 농업·농촌과 함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는 농협들이 늘어가고 있다. 특히 청년 농업인과 다문화가족, 귀농·귀촌인이 보다 쉽게 영농활동을 영위하고 농촌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영광신문은 농협중앙회 김병원 회장이 제시하는 이야기들을 순차적으로 게재한다. <편집자 주.>

 

익숙함과 관행을 버려야 한다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시각적 맹목성이라고도 하는 이 현상은 주의력이 작은 부분에만 제한되는 것을 뜻한다. 냉장고를 열었을 때 우유가 있는데도 보지 못한다거나 공을 주고받는 학생들 사이에 고릴라가 한참 동안 머물다 지나갔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실험 결과가 대표적인 예로 이야기 된다.

200129일 미국의 핵잠수함 그린빌호 사고는 무주의 맹시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다. 당시 그린빌호에는 함장과 승무원을 비롯하여 국회의원, 대기업 임원들, 유명 방송인들이 타고 있었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에게 그린빌호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함장이 함정에 상승명령을 내리자 그린빌호는 부력 탱크에 들어 있던 물을 고압으로 쏟아내며 수면으로 급부상했다. 그 순간 엄청난 굉음이 울리며 잠수함이 크게 흔들렸다. 급속도로 떠오르던 잠수함 바로 위에 있던 일본 어선과 충돌한 것이다. 최첨단 음파탐지기를 갖춘 잠수함이 어떻게 60미터에 달하는 큰 배를 발견하지 못했을까? 잠수함의 성능을 보여주는 데에만 급급한 나머지 바로 위에 떠 있는 배를 보지 못한 것이다.

사람들이 무주의 맹시에 빠지는 이유는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보며 길을 걷다가 행인과 부딪히는 것, 기상 캐스터를 쳐다보느라 정작 일기예보 내용은 전혀 듣지 못하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처한 조건 · 배경 · 환경에 익숙해지면, 그것이 습관으로 굳어져 자신만의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게 된다. 이런 습관은 주위의 충고에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무의식의 고정관념이 된다. 그래서 기원전 5세기경에 등장한 고대 그리스 연극공연에서는 아테네인들에게 세상을 자신의 눈, 1인칭의 눈으로 보지 말고 옆에 앉아 있는 남편의 눈 또는 아내의 눈, 자신의 눈으로 보라고 했다. 그뿐 아니라 가장 비극적인 인간, 원수 또는 적군과 같은 제3자적 관점에서 세상을 보라고 촉구했다. 내가 가진 색안경을 벗지 못하면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일찍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할 때, 눈앞의 대상은 실제 객관적인 대상과는 별 상관이 없다. 그 대상을 오래전부터 보고 관찰해 왔다면 이미 그 대상에 관한 이미지가 구축돼 있고, 그 이미지에 대상을 끼워 넣을 뿐이다. 즉 눈앞에 대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 머릿속에 저장된 이미지를 통해 보는 것이다. 만일 이전에 본적이 없거나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이상한 것으로 치부하며 이해하려는 노력을 쉽게 포기해버릴 수도 있다.

1917, 프랑스의 화가 마르셀 뒤샹이 <>을 공개했을 때 예술계가 발칵 뒤집혔다. ‘R. MUTT. 1917’이라는 사인만 표시해놓은 남성용 변기를 작품이라고 버젓이 발표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시각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것이 어째서 20세기 위대한 예술품의 반열에 올랐을까?

마르셀 뒤샹은 다다이즘의 선구자로 꼽힌다. 다다이즘이란 무의미의 암시라는 뜻으로, 풀어서 말하면 어떤 선택에 따른 새로운 가치 부여라고 할 수 있다. 다다이즘에 따르면 특정 영역에서 의미가 없던 것도 어떤 선택에 따라 의미가 부여되고 가치가 창출되는 셈이다. 그의 작품<>은 이미 만들어진 현실의 평범한 아이템을 기반으로 하지만, 새로운 선택에 따라 불멸의 예술품이 됐다. “예술품이란 색을 칠하거나 구성할 수도 있지만, 단지 선택만으로도 가능하다라는 그의 말은 주변에서 늘 마주치는 일상적인 것들도 달리 보고 새롭게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재창조 할 수 있음을 뜻한다.

조선 최고의 화가로 많은 사람이 단원 김홍도를 꼽는다. 김홍도는 겸재 정선을 뛰어넘겠다는 야심 찬 도전정신을 창조적 에너지로 삼은 인물이다. 그를 조선 최고의 화가로 인정하는 이유는 기존 중국의 화풍이나 겸재를 비롯한 대가들과 다른 화풍을 창조해냈기 때문이다. 천재적인 재능을 기본으로 하되 과거의 패턴에서 벗어나려는, 그리고 달리 보려는 시도가 있었기에 창조적인 작품들을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인간이 가진 능력 중 하나는 상징성을 이해한다는 점이다. 원숭이는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킬 때 손끝만 보지만, 인간은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볼 수 있다. 이 선천적 능력의 차이로 인간은 창조적이고 혁신적이며 통찰력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예컨대 누군가는 힘들게 걸레질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고마움과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누군가는 힘들게 허리를 숙이지 않고 서서 청소할 수 있는 청소기를 고안해낸다. 대부분의 사람은 창조와 통찰이 천재들의 전유물이라 여기지만, 애초에 사물을 보는 방법이나 생각하는 방법이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 달리 보고 생각하는 것, 이것이 통찰력의 출발점이다.

익숙함에서 비롯되는 무주의 맹시를 주의해야 한다. 특히 주변 상황이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급격히 바뀌고 있음에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변화 맹시를 더욱 주의해야 한다. 농업 환경, 금융 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데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반복되는 관행과 집착을 버리고 모든 일을 새로운 시각에서 다시 살펴봐야 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면 눈뜬장님이 된다. 때로는 거인의 어깨, 하다못해 그저 타인의 어깨에라도 올라서서 세상을 새롭게 봐야 한다.

 

진정한 경쟁은 협력에서 나온다

최근 4차 산업혁명의 열풍과 함께 플랫폼이라는 단어가 빈번히 쓰이고 있다. 이제는 플랫폼에 들어가느냐 마느냐, 들어간다면 어떤 플랫폼이냐가 기업과 구성원의 생존을 결정하는 세상이 됐다. ‘개미 떼가 용도 잡는다라는 속담도 있듯이, 인간은 협업을 해야 한다. 플랫폼 또한 협업을 기반으로 한다. 이제 더는 혼자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며 그래서도 안 된다.

과거 포드자동차는 분업에 기초한 컨베이어 시스템으로 전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마치 기계의 부품처럼 자기 몫의 일을 처리하는 컨베이어에 실어 보내던 산업화 시대에는 나누는 것만 잘하면 일이 쉽게 됐다. 그러나 이제는 개인이든 기업이든 분업을 넘어 협업을 통해서만 더 큰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다.

이런 협력과 상생의 논리를 담은 경제 용어가 바로 사슴사냥 게임이다. 사냥꾼 2명이 서로 협력하기로 하고 사슴 한 마리를 몰아 포위망을 점점 좁혀간다. 그런데 때마침 한 사냥꾼 앞으로 토끼 한 마리가 지나간다. 이를 본 사냥꾼은 사슴을 잡지 못해도 저 토끼 한 마리면 충분히 배를 채울 수 있다고 여긴다. 결국 그는 사슴 포위망을 이탈해 토끼를 쫓아가고, 그 틈을 타서 사슴은 도망쳐 버린다.

사슴사냥 게임은 18세기 계몽주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가 <인간의 불평등 기원론>에서 처음 소개했다. 서로 협력해야만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음에도 자기 이익만 챙기려다 공동의 이익을 놓쳐버리는 개인의 이기적 성향을 꼬집는 개념이다. 협력과 상생의 중요성은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어서 알고 있지만, 막상 눈앞에 작은 이익이 닥치면 누구도 쉽게 외면하지 못한다. 대립이 아닌 협력을 통해서만 서로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데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우리는 눈앞의 토끼에 현혹되어 사슴을 놓치곤 한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면 담임선생님이 꼴찌와 1등인 반장을 짝꿍으로 맺어준다. 예전에는 학습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1등이 60등을 지도하고, 2등이 59등을 이끌도록 자리를 배치하는 일이 흔했다. 그런데 과연 이런 방식이 학생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됐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1등과 60등은 학교에 온 이유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는 오히려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을 함께 모으는 것이 나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와 함께 앉게 하거나 성격이 비슷하고 관심 분야가 같은 친구들을 모아 여럿이 함께하는 과제를 준다면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192710,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솔베이 학술회의가 열렸다. 이 학술회의에는 아인슈타인, 마리 퀴리, 보어, 슈뢰딩거 등과 같은 거물을 포함하여 전 세계 최고의 물리학자 29명이 참석했다. 그중에는 노벨상 수상자가 17명이 되는데, 놀라운 것은 17명 중 대다수가 이 학술회의 이후에 노벨상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이들이 노벨상을 받았기 때문에 초청받은 것이 아니라 이 학술회의 덕분에 노벨상을 받았다는 얘기다. 경쟁과 협력의 조화였다. 과학자들의 개인적인 연구업적들이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협력적인 작용을 함으로써 인류 과학사가 눈부신 발전을 이룬 것이다.

경쟁이 효율적인 체제인 것은 분명하지만 진정한 경쟁은 협력을 전제로 한다. 특히 요즘은 혼자서는 도저히 무언가를 이루어낼 수 없는 시대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노벨상 과학 분야에서도 2인 공동수상이 보편화되고 있다. 이제 협력이 전제되지 않는 경쟁은 그 효과가 지극히 개인적인 분야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세계적인 컨설팅 기업인 부즈 앨런 앤드 해밀턴(Booz Allen & Hamilton)의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전 세계적인 기업 간 제휴가 매년 25퍼센트씩 증가했다. 바야흐로 경쟁의 시대이면서 초협력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나도 살고 너도 사는 방법으로 협력이라는 가치가 제안되고 있다.

90미터가 넘게 자라는 거대한 삼나무는 겪어온 지난 세월을 말해주듯 줄기 곳곳에 두툼한 상처를 지닌 채 다른 나무들을 굽어본다. 삼나무의 놀라운 생존력과 인내력은 바로 군락을 이루는 데서 비롯된다고 한다. 혼자 서 있는 삼나무는 쉽게 쓰러지지만, 뿌리가 서로 얽힌 삼나무들은 모진 폭풍도 거뜬히 견뎌낸다. 얽히고설켜 서로 먼저 뿌리를 내리려고 경쟁하면서 동시에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주기 때문이다.

사람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이 복잡한 사회에서 누군가와 연결되지 않는 일은 거의 없다. 서로 무언가를 해내려고 하는 의지가 서로를 지탱해주는 얽힘이 되어줄 것이다. 모진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게 하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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