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성인의 제자들(석가모니⑦)

석가모니의 마지막이자 열 번째 제자는 아난이다. 석가모니의 사촌동생이기도 한 그는 대중들의 천거에 의하여 시자(侍者-설법자를 친히 모시는 사람)로 임명되었다. 그때부터 석가모니를 가까이 모시면서 가장 많은 설법을 들었기 때문에 다문제일(多聞第一)로도 불린다. 그런 그가 왜 마지막 제자가 되었을까?

석가모니가 열반한 직후, 그의 마지막을 지킨 제자는 아난이었다. 당시 수제자 마하가섭은 안거(安居-외출을 삼가하고 수행에만 전념하는 일)를 위해 다른 지역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스승의 열반 사실을 알아차리고 3일 밤낮을 쉬지 않고 걸어 다비식(불교에서의 화장 장례의식)이 거행되기 직전 도착하였다. 가섭은 아난에게 스승을 마지막으로 뵙게 해 달라청하였다. 그러나 아난은 이미 식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관을 열 수 없다.”며 거절했다. 두 번째, 세 번째 청까지 모두 거절당한 가섭은 관 주위를 돌면서, “스승이 남긴 뜻을 잘 이어가겠노라!”고 맹세하였다. 그때, 관 밖으로 스승의 두 발이 나타났다. 가섭은 두 발을 향해 예배를 올렸다. 그러자 다비식 내내 불이 붙지 않았던 관이 저절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가섭이야말로 진정한 후계자라며, 존경의 마음을 바쳤다.

교단의 총책임자가 된 가섭은 500명의 장로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아난을 쫒아내고 말았다. 아난은 그때부터 벼랑 끝, 천 길 낭떠러지 위에 까치발로 선 채, 7일 밤낮 잠을 자지 않고 정진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음에 도달했다. 가섭은 이러한 아난에게 결집(부처의 가르침을 정리하고 편찬하기 위해 여는 집회)에 참석해도 좋다는 허락을 내린다. 이리하여 아난은 500 아라한(불교도들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그 후 아난은 불경의 편찬 작업에 참가하여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아난이 기억을 더듬어가며 이렇게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께서는……이라는 말을 시작으로 암송하기 시작하면, 여러 비구들은 그것이 맞는지를 확인하였다. 그리하여 맞으면 통과시키고, 잘못이 있으면 고친 후 모두 함께 외움으로써 불교의 경전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특별히 아난은 석가의 이모 마하파사파제 고타미가 출가를 청했을 때, 스승에게 세 번씩이나 간청하여 그녀의 출가 허락을 받아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일로 마하파사파제는 최초의 비구니(여자 승려)가 되었다. 특히 아난은 용모가 매우 뛰어났는데, 이것이 많은 부녀자들로부터 유혹을 받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가 성의 바깥쪽으로 걸식(음식을 얻어먹는 일)을 나갔을 때 일이다. 일곱 집을 도는 칠과식(七過食)을 하던 도중, 매염굴 옆을 지나게 됐다. 그곳에는 마등가라고 하는, 남자를 유혹하는 기술이 매우 뛰어난 여인이 하나 있었다. 아난의 외모에 반한 마등가는 아난에게 자신의 주술을 걸어 자기 방으로 유인한 다음 희롱하려 했다. 이를 눈치 챈 석가모니가 신주(神呪)를 외우고, 문수보살(최고의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에게 아난을 구해올 것을 명령했다. 문수보살은 마등가의 주술을 부수고, 아난과 마등가를 부처님 앞에 데리고 왔다. 스승을 뵌 아난은 절을 올리고, 슬피 울기 시작했다. 법문(부처님의 가르침)을 많이 듣기만 했을 뿐, 내공(內工-안으로 쌓인 실력)을 갖추지 못한 게 한스러웠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난을 위해 석가모니는 힘주어 설법하였고, 허물을 깨달은 아난은 굳건한 믿음으로 정진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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