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사진가 수필가

요즘 대다수의 관심이 정치권으로 쏠리면서 국민의 정서는 극심한 가뭄이 들었다. 황량한 들판에서 미움과 측은지심 혹은 내편과 네 편으로 나뉘어 진실게임을 벌이고 있는 모양새다. 여기서 양산되는 부작용은 정치 환멸이다. 뉴스도 싫고 조국도 싫다. 검찰개혁도 나와는 직접 연관이 없다. 그냥 귀를 막고 싶은 심정이다. 민주주의의 최대 위기가 무관심이라면 우리는 지금 위기를 겪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좀 더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관심이 우리와 후세를 살리는 길이다. 혼잡한 정치판을 외면하는 것, 바로 그것이 종국에는 우리를 겨누는 화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수 겸 배우인 연예인이 또 극단적인 행동을 했다. 정황상 얼굴 없는 살인자에게 당했다. 소위 악플러들의 소행이 직간접적 원인으로 떠올랐다. 인격살인이다. 악성 댓글은 악성 댓글을 낳고 확인되지 않은 댓글은 다시 언론에서 퍼 날랐다. 선후좌우 선악 진실 거짓을 가리지 않고 포식하는 소셜 미디어의 위력이다. 이 그물에 걸리면 누구도 살아남지 못한다. 심지어 자살한 당사자의 개인 미디어에 올라온 위로 글에도 악플이 달렸다. “너도 가고 싶냐?”라는 댓글을 보면서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 걸까. 사회적 정의의 잣대가 무너지고 있다. 축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십 건 이상을 거짓 소식에 접하며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머릿속은 혼란할 수밖에 없다. 이젠 무엇이 거짓인지 혹은 진실인지 구분이 어렵게 되었다. 특히 연배가 지긋한 층은 더욱 심각하다. 신문과 방송 등 미디어 매체를 신처럼 믿어왔던 세대가 접하는 현실은 너무 가혹하다. 매일 쏟아져 들어오는 뉴스와 경고 혹은 협박을 이해하기에는 머리와 몸이 따라가지 못하니 그냥 믿는다. 문자로 들어오는 숫자만 눌러도 내 계좌의 돈이 빠져 나간다는 경고성 문자나 혹은 걸려오는 특정 번호의 전화만 받아도 내 계좌에서 돈이 모두 빠져 나간다는 등의 조금 웃기는 경고 문자도 그대로 믿어야 하는 세대의 고뇌는 크다. 진위의 구분은 판단을 기조로 하지만 판단은 시대를 아우르는 지식에서 도출된다. 시대에 뒤지지 않는 지식 기반을 갖고 있어야만 현재를 판단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악성 댓글과 악성 뉴스 그리고 거짓 소식 등은 모두 한 통속이다. 소셜 미디어의 역작용에서 유발 되는 사회악이다. 결론이 없는 의구심과 의혹이 문자나 영상으로 뿌려지면 거의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사회에선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자리매김을 한다. 얼굴 없는 인격 사냥꾼으로 둔갑을 하는 것이다. 무섭지만 현실이다. 이렇게 젊고 예쁜 그리고 전도가 양양한 인재가 사라졌다. 얼굴을 내밀면 선량한 인간이지만 미디어의 문자 뒤에 숨은 모습은 악마인 사람들, 바로 악플러들의 본모습이다.

요동치는 정가를 보면서 거짓 미디어에 속아 휘둘리는 계층이 꼭 연배가 지긋한 세대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람의 뇌는 단순하다고 한다. 속이는 게 쉽다는 뜻이기도 하다. 200만 건이 넘는 일방적 뉴스폭격은 우리 생각을 세뇌하기에 충분했다. 여기서도 악플의 위력은 대단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악플은 인격을 죽이고 사회의 정의를 왜곡시켰다. 모두 사실 판단의 오류에서 나온 결과지만 대다수는 오류의 원인은 찾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내가 판단을 하고 결정을 하면 그것이 정의가 되고 진실이 되기 때문이다. 객관적 시각은 내 결정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오만에서 기인한 편견의 확정이다.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가장 쉽지만 행하지 않는 것이 바로 객관적 시각이다. 한 걸음만 물러서서 보면 보이는 진실을 보지 못함은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만 취하는 인간의 특성때문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원인은 공부의 부족이다. 자신을 버려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사회적 진리요 정의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노력에 주관은 적이다. 주관은 협소함의 대명사 정저지와(井底之蛙). “편협한 선비에게 도를 일러줘도 알지 못함은 자신의 지식에 얽매어 있기 때문이라는 장자의 글귀 또한 필요하다. 혼돈의 미디어 세상을 이해하고 따라갈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자신의 의지에 달렸다. 악성 댓글을 무력화시키는 데에는 절대적인 시대의 이해가 필요하다. 휘둘리는 사람이 있는 한 악플은 영원할 것이다. 비처럼 쏟아지는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진위를 구분하는 방법은 편협을 벗어나 객관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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