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희/ 여민동락공동체 살림꾼

한국사회에서 교육은 '뜨거운 감자'. 교육은 계급 격차와 불평등의 구조화, 학벌 중심의 서열화 등 사회적 모순이 집약된 분야이다. 또한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타고 바벨탑 꼭대기에 오르려는 인간의 왜곡된 욕망이 만들어 낸 끝없는 블랙홀이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감을 잡기 힘들 정도로 엉켜버린 실타래와 같은 대한민국 교육에 과연 '희망'은 있는 것일까.

4차 산업혁명으로 통칭되는 미래 사회는 표준화, 획일화, 입시위주 경쟁을 특징으로 하는 교육 패러다임의 변화를 요구한다. 2007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 유종일입니다'에 출현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한국이 과거 산업시대의 교육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은 크나큰 장애물이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감옥에 돈을 쏟아붓는 격"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지금과는 다른 교육이라야 다른 미래를 열 수 있다'는 자성어린 성찰이 '마을'을 호출했다. 전국적으로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은 공교육 문제를 더 이상 학교만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현실의 반증이다. '삶과 배움의 불일치'라는 교육의 근본적 한계는 마을을 배움터로 삼아 마을과 관계를 맺으면서 학습하고 성장한다면 극복할 수 있다. 마을교육공동체는 정책과 제도의 산물이 아니라 교육 현장에서부터 촉발된 새로운 교육 운동이자 풀뿌리 운동이다.

마을교육공동체 운동은 각기 다른 현실과 처지에 놓인 다양한 현장들에서 다양한 교육 현안들을 마을 내 소통과 연대, 협동의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교육협동조합, 마을학교,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활동, 농산어촌 작은학교살리기 운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더 많은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묘량면의 묘량중앙초등학교는 10년 전, 폐교 직전까지 몰렸다가 기사회생했다. 효율성을 앞세운 농산어촌 통폐합 방침에 반대하고 시골 마을의 작은 학교를 살리기 위해 학부모들과 지역주민들이 힘을 모은 덕분이다. 농촌 시골마을에 학교마저 사라진다면 결국 마을공동체마저 소멸하고 말 것이라는 절박한 인식이 자발적인 실천으로 이어진 것이다. 결국 통폐합 방침은 철회되었고 현재 이 학교는 학부모와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마을교육공동체의 거점이자, 지역사회의 백년대계를 좌우할 마을공동체의 심장이 되었다. 학부모와 지역주민들은 작은학교살리기를 넘어 지역사회 전체를 배움터로 변모시켜 마을이 아이를 함께 키우는 문화와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5년째 운영하고 있는 '깨움 마을학교'는 마을을 거점으로 다양한 교육활동의 기회를 확대하고 학교와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데다 갈수록 고령화, 과소화 되고 있는 마을의 현실에서 마을교육공동체 운동은 어려움의 연속이다. 지속적인 인구유출과 신규 인구유입이 없는 상태가 지속된다면 마을의 존폐를 걱정해야 할 시점이 곧 도래할 것이다. 마을의 흥망성쇄는 정확하게 마을교육공동체 운동의 흥망성쇄와 일치할 것이다. 마을이 살면 교육도 살 것이요, 마을이 죽으면 마을교육공동체도 사라진다.

마을교육공동체를 구성하려면 마을이 아이들의 배움터가 되어야 한다. 마을의 교육자원과 인프라를 발굴해야 한다. 마을교육공동체는 마을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 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학습과 성장의 결과가 다시 지역으로 환원되는 선순환적 구조의 지역공동체를 지향한다. 마을에서 자라나며 배운 아이들이 그 마을의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고 정주할 때 마을공동체와 교육공동체는 상생하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해 나갈 수 있다. 삶의 총체성 측면에서 본다면 '교육'은 삶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다. 마을 안에서 인간다운 삶의 질을 향상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제, 노동, 교육, 문화, 의료, 복지 등의 측면에서 복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마을교육공동체는 교육운동으로 시작했지만 그 귀결점은 교육과 지역의 상생을 도모하는 지역사회 운동이 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일반자치와 교육자치의 협력만으로는 안 된다. 지역의 교육력을 강화하고 지역발전의 선순환적 토대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주민자치'가 결합해야 한다. 마을교육공동체 운동은 인구절벽과 지방소멸의 위기를 넘어서 마을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마을공동체 운동은 마치 결승선이 없는 마라톤과 비슷한 것 같다. 열심히 꽤 많이 달려왔다고 생각했는데 결승선은 다시 저만치 멀어져 있다. '끝이 없다'는 것은 그 운동 자체가 곧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삶을 공동체적 방식으로 재구성하는데는 한계도 결승점도 없다. 풀뿌리 운동의 숙명이다. 쉽게 지치지 말고 길게 보면서 가야 한다. 요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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