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성인의 제자들(소크라테스②)

소크라테스의 세 번째 제자는 메가라학파의 창시자인 에우클레이데스(기원전 450-380)이다. 그의 경우, 아테네 법에 따르면 잡혀서 사형을 받아야 하는 적국(敵國-메가라 지방) 출신이었다. 하지만 아테네에 몰래 들어와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되었고, 스승의 임종(臨終)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그는 덕은 지()이다라고 한 스승의 명제로부터 지식을 중시하고 그것을 선과 동일시하는, 주지주의(主知主義)를 고집하였다. 그는 스승이 죽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사람들이 그를 수학자 유클리드와 혼동한다는 사실이다. 수학자 유클리드와 관련된 유명한 에피소드가 몇 개 있다. 첫째,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이집트의 통치자)가 유클리드에게 기하학을 보다 쉽게 배우는 지름길은 없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유클리드는 폐하, 기하학에는 폐하만을 위한 왕도(王道)는 없사옵니다.”라고 답하였다고 한다. 여기에서 배움에는 왕도(지름길)가 없다.”라는 유명한 말이 나왔다.

두 번째 에피소드. 어느 날, 유클리드의 강연 도중에 한 제자가 교수, 수학은 너무 지루합니다. 도대체 그걸 배워서 어디다가 써먹을 수 있죠?”라고 물었다. 이에 유클리드는 하인을 불러 여봐라, 배운 것으로 반드시 이득을 얻으려고만 하는 저 친구에게, 동전 세 닢만 주고 강의실 밖으로 쫓아내라.”라고 말했다는 것. 오늘날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생각된다.

소크라테스의 네 번째 제자는 파이돈이다. 그는 엘리스(그리스 남부의 도시국가)에서 태어났는데, 엘리스와 스파르타 사이의 전쟁으로 포로가 되었다. 그 후 아테네로 팔려간 그는 그곳에서, 소년애(少年愛-성인 남성과 사춘기 소년 사이의 연애 관계)를 파는 매춘소의 노예 남창(男娼-사내끼리의 성행위자)이 되었다. 어떻든 그 미모에 대해서는 나름 평판이 있었던가 보다. 결국 소크라테스의 주선으로케베스(소크라테스의 탈옥을 위한 돈도 마련한 사람)가 그의 몸값을 지불함으로써 그는 자유인이 된다. 소크라테스는 기꺼이 그를 극진히 사랑하는 제자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파이돈은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지도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가 엘리스 학파를 창설하였다.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간 지점에서 파이돈은 피타고라스학파의 마지막 인물인 에케크라테스를 만난다. 주지하다시피, 피타고라스는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단체를 만들어 수() 이론을 토대로 한 철학사상을 발전시켰다. 복종과 서약, 스승의 권위를 중시한 피타고라스 교단은 철학 공동체이자 폐쇄적이고 신비주의적 색채가 짙은 종교 집단이었다. 이들은 철학, 수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들을 배웠을 뿐 아니라 전생(前生)과 윤회(輪廻-삶과 죽음이 그쳐지지 아니하고 계속 도는 일)를 믿었다. 또한 콩을 먹지 말 것’(콩이 우주의 모양을 하고 있어서), ‘동물의 살생금지’(인간의 영혼이 다른 생물로 태어난다는 믿음), ‘떨어뜨린 물건 줍지 않기’, ‘불빛 곁에서 거울 보지 않기등 독특한 규율을 지켰다. 이 학파에 속했던 에케크라테스는 소크라테스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그래서 파이돈이 에케크라테스에게 스승의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결국 플라톤대화편속에 등장하는 <파이돈>은 영혼불멸설을 다르고 있는 바, 파이돈이 에케크라테스로부터 영향을 받은 때문으로 보인다. 이 책의 끝 부분에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신 후 숨을 거두기까지의 광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저작권자 © 영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