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사진가 수필가

요즘 벌어지는 정국의 사태는 현대사를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멀게는 임시정부 시절에서 가깝게는 현 정부까지다. 알다시피 임시정부도 순탄치는 않았었다. 이승만과 김구 선생의 대치 점에서 시작한 반목의 역사는 깊은 진영 간의 골을 만들었고 정확히 국가를 양등분하는 안타까움을 초래했다. 바로 진영논리다. 며칠 전 유명 철학자가 유명 일간지 기고문에서 다뤘던 주제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이러한 이상 현상을 조선시대 동서인 당파 싸움에 비유를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현 정부의 아귀 같은 다툼을 동인 서인 간의 주체성을 상실한 다툼으로 본 것이다. 물론 그때나 현재나 여당의 정책을 딴지걸이 하는 야당의 행태는 다르지 않다. 하지만 사회적 정의까지 그런 논리로 푼다면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다. 진영 간의 이권만을 위한 맹목적 추종으로 보는 시각은 판단적 정의를 추구하는 부류에겐 크나큰 모욕이기 때문이다. 풀어서 말해보자. 임시정부 시절부터 불거진 이승만의 사욕은 밝혀진 사실이다. 결과 임시정부 대통령에서 탄핵을 당했다. 그리고 1948년 이전의 국가를 부정하는 무리들이 주장하는 건국절논리는 스스로 자신들의 역사를 부정하는 행위지만 이승만을 등에 업고 자신들을 애국자라 칭하고 있다. 이승만은 국민들에 의해 축출되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은 국부로 대우하고 있다. 자세히 분석하지 않아도 이들이 바로 종속적 진영 논리에서 맹목의 추종세력이다. 지극히 종교적이라는 점이 특색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진영만이 이들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다. 박정희 정권에서도 그 세력은 더욱 큰 힘으로 유지되었고 반대 세력은 대중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바로 사회적 정의다. 맹목과 이성을 같은 테두리에 가두고 내리는 평가는 인정이 힘들다. 조선시대와 현재가 큰 의미의 정치에선 별반 다르지 않음을 인정하지만 그래도 현 대치국면을 조선의 동인 서인으로 봐서는 너무 자존심이 상한다. 그는 율곡이 만년에 올린 상소문을 예로 든다. 소위 진시폐소(陳時弊疏/목숨을 걸고 올리는 상소). 정부와 관리의 잘못으로 나라가 위기에 빠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으니 현재와 다르지 않다. 당시에도 다툼을 일삼는 양 진영의 대치로 나라가 위험과 도탄에 빠지고 있었음은 사실이고 상소문을 올린 불과 10년 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으니 그의 상소는 시의적절하다. 그래서 당시 붕당과 현재의 사상 논리를 같이 본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인정이 힘들다. 동원령과 종교의 힘으로 모인 비이성적 모임과 자발적인 판단과 이성으로 시국에 참가한 모임을 같이 취급함은 맞지 않을뿐더러 모욕적이기도 하다.

불과 몇 년 전에 거론되었던 나이에 따른 사회관이 순식간에 유명무실해졌다. 맹목적 추종집단과 이성적 저항집단이라는 단순논리로 바뀐 것이다. 원인은 사고(思考)의 차이다. 분석 없는 지식은 무지와 다름 아니다. 이들에겐 추종이 미덕이다. 의식 있는 시민을 어떻게 이들과 동격의 진영논리로 푼단 말인가. 유명 정치인들이 국민을 향해 날리는 연설은 거의 유사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이 향한 곳은 모두 경제와 국민의 행복이다. 정치인들이 할 말이 이거 말고 뭐가 있겠는가. 그래서 같은 부류라고 한다. 기가 막힌 논증법이다. 물론 현재 대한민국이 진영의 극한 대립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두 진영을 같이 평가함은 너무 무례하다. 단순한 종속성으로 보는 시각이다. 어느 부류에 속해 있거나 어느 정치인을 추종하는 단체에 속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진영에 들어가 다툼을 불사한다는 논리다. 결국 이성적 판단과 지성은 없다. 종속성이 모든 시민의 이성을 지배해야 한다. 공수처 설치 혹은 검찰의 과한 수사가 왜 종속적인 것인지 이해가 힘들다. 자유 시민은 사상의 자유를 바탕으로 선택의 권리를 갖는다. 종속적인 단체의 맹목 추종을 민주적 판단에 따른 다수 시민의 선택권과 비빔밥을 만들면 곤란하다. 시민의 선택은 지극히 이성적인 판단에서 나온다. 판단 없는 종속성은 영혼을 버린 껍데기에 불과하다. 판단은 지혜에서 나오고 지혜는 책에서 출발한다. 유시민 작가의 요즘 행보가 뜨겁다. 그의 항의는 이성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정의의 발로이지 결코 어느 부류를 지지하는 추종은 아니다. 무섭긴 하지만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선택은 진영논리 혹은 종속성과는 거리가 멀다. 다만 이러한 그의 선택을 바라보는 상대의 시각이 진영에 속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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