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사진가 수필가

지난주에 수은 강항 선생의 추향제와 국제 학술세미나가 열렸다. 벌써 수은 관련 세미나만 해도 여러 번이다. 수십 년을 제 자리 걸음이다. 오히려 일본의 관심이 깊다. 이번 추향제 역시 일본의 강항선생연구회 무라까미 쓰네오 회장과 일행이 참석했다. 부끄러운 마음이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강항 선생이 영광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세미나는 간간히 열리고 선생과 간양록, 강감회요, 목판 등의 중요함이 거론되지만 거기까지다. 이웃 영암에서 왕인 박사가 대우를 받고 있는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알다시피 왕인은 우리 역사서에 나오지 않는 인물이다. 단지 일본의 사서인 고사기일본서기에 몇 줄 기록이 보일 뿐이다. 영암의 상대포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이야기 역시 구전으로 전해질 뿐 기록은 없다. 그가 일본에 전한 학문은 천자문과 논어였다고 한다. 일본 사서에 등장하는 인물이니 그의 업적은 사실일 것이고 그의 업적을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강항 선생과의 현재 위상이 많이 달라서 거론해 보는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요즘 강항 선생을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한사람에게 들었으면 개인 생각으로 치부하겠지만 토씨까지 비슷한 폄하발언을 몇 사람에게 듣고 보니 생각이 깊어졌다. 왜란이 터지자 식솔들을 데리고 도망을 가다 포로로 잡힌 인물이고 벼슬도 낮았다는 이야기다. 대응하고 싶지 않은 내용이지만 1차 사료인 기록을 보지 않은 주장이다. 그의 피랍은 분호조청(分戶曹廳)으로 양향(糧餉/군사의 양식)을 독운(督運)하다가 우적피로(遇賊被擄/적을 만나 사로잡힘)’으로 적혀있다. 부실이었던 이 씨가 같이 잡혔다가 단식 자진했다는 내용은 사실이다. 간양록을 보면 부실과의 사이에서 난 아이가 물에 빠져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슬퍼하던 모습이 나오기도 한다. 그의 왜란 관련 행적은 의곡과 군기(軍器) 등을 모아 고경명 의병소로 보냈다는 기록과 어염을 팔아 백미 백석을 모아 종제 락()으로 하여금 의병장 고경명, 김천일, 최경장의 의병소로 보냈다는 기록이 보인다. 군량선에 부실과 아이를 태우고 출발했던 행위를 인지상정으로 이해하지 않는다면 그의 부모로서의 자격 역시 논란이 되어야 맞다. 중요한 것은 선생의 의병활동과 포로로 끌려가서의 행적이다. 왕인 박사가 천자문을 전했다면 선생은 조선 최고의 학문인 성리학을 전파했다. 일본의 학문을 집대성시켜준 것이다. 420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지만 일본에선 지금도 고마움을 표하는 방문을 끊지 않고 있음은 선생의 위대함이다.

선생을 폄하하기 위해선 일단 간양록을 일독하길 권한다. 적중에서 목숨을 걸고 기록한 적중봉소의 절절함을 읽어보지도 않고 평가함은 예의가 아니고 옳은 행동이 아니다. 노 철학자 한분이 성리학을 현실과 동떨어진 옛 학문으로 평가하는 사람은 성리학을 한 줄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다.”고 했다. 읽지 않고 내리는 평가는 의미가 없음은 물론 도덕적이지도 않음을 꼬집은 것이다. 선생은 적중견문록을 통해 일본의 관제까지 자세히 적었다. ‘왜국백관도(倭國百官圖)’가 그것이다. 물론 일본의 지리와 풍물도 기록했는데 왜국팔도육십육주도(倭國八道六十六州圖)’이다. 선생의 기록은 외에도 많이 남아 전한다. 특히 강감회요와 목판 등은 중요 유물로 전하지만 마땅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 세미나에서 일본의 사토 대표는 매년 1회 추모제, 강항 라디오 방송, NPO 법인 설립, 강항 주제 연극공연, 강항 콘서트, 강항 기념관 설립 등의 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강 씨 문중이나 영광군에서 하는 사업이 아니라 일본인들이 하겠다는 사업이다. 주객이 바뀌었다. 특히 중요 유물들을 국가지정 문화재로 밀어올리기 위해선 우리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선생의 기록과 유물이 넘쳐나고 구국의 행위는 일찌감치 MBC 신봉승 작가에게 발췌되어 대하사극까지 만들어졌다. 주제곡을 국민가수 조용필이 불렀다는 사실만으로도 무게감은 충분한데 왜 살리지 못하는 것일까. 혹은 살리지 않는 것일까. 내산서원을 정비해서 강항 선생을 영광의 대표 인물로 내세운다면 최고의 문화상품이 될 것임에 틀림이 없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상사화축제와 시기를 맞춰 강항 문화제를 연계시킨다면 전국 최고의 문화상품이 될 것이라는 주장은 그냥 소수의견으로 남아 관심의 테두리 밖에서 빈 쌀독 긁어대는 소리 취급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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