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사진가 수필가

한 해의 마지막에 습관처럼 돌아보는 것이 자신의 행적이지만 올해 기해년은 유난히 씁쓸하다. 계획만 있고 실천은 없었던 한 해였다. 선거법과 공수처 그리고 검찰개혁 문제로 정가는 시끄러웠고 남북관계는 아쉬운 한숨만 남겼다. 집안일은 집안에서 풀어야 함이 맞지만 막대한 영향력을 구사하는 이웃의 관여는 매듭을 훨씬 견고하게 만들어버렸다. 당사자들의 손을 떠나 이웃들의 판결에 맡겨야 하는 형제의 화합은 어렵기만 하다.

최근 북 카페 사이트를 들렀다가 살아계실 때부터 전설이었던 법정 스님의 법문 일부를 대할 기회가 있었다. 인연을 쉽게 설명한 글이었는데 올 한해를 보내면서 스스로의 사람관계를 돌아보게 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인과 연을 쌓고 있는 것일까. 법정 스님은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말라고 경고한다. 진정한 인연과 스쳐가는 인연은 구분이 필요하다. 만일 스쳐가는 인연이라면 무심코 지나쳐버려야 한다. 헤픈 인연은 쓸만한 인연을 만나지 못하고 그로 인해 자신의 삶이 침해되는 고통을 받아야 한다. 옷깃을 스치는 인연까지 맺으려 함은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일이다. 평생을 살면서 수많은 사람과 접촉을 하지만 결국 인간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옆에 남는 인연은 몇 사람에 불과하다. 나이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뜻과 소통이 친구의 가장 큰 덕목이다. 이런 친구 몇이면 삶은 풍부하다. 소위 진실한 인연이다. 그래서 법정 스님은 진실은 진실한 사람에게만 투자하라고 했다. 너무 당연하다. 사람을 가리지 못하고 아무에게나 주는 진실은 위험하다. 상통의 진심은 아름답지만 일방적 소통은 자신에게 배신의 고통 혹은 삶의 아픔으로 변해 벌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인에게 가장 큰 병의 원인은 스트레스다. 스트레스는 대부분 사람에게 받는다. 이를 악연이라 한다. 반면 이러한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것도 사람이다. 호연(好緣)이다. 이 두 가지는 진실에서 나온다. 지인을 대함에 자신의 욕심을 위한 여건이 우선이면 스트레스를 주는 악연이고 여건에 우선하는 인간적 소통이 있으면 좋은 인연이다. 인연은 삶에 즐거움과 도움이 되어야지 아픔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가장 존중되어야할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도 대가적 금전이 오가면 사제의 인연이 아니라 거래가 된다. 돌아서면 끝이다. 다산과 제자 황상의 관계처럼 조건 없는 소통은 후세까지 전해져 가연으로 남는다. 대가로 맺어진 지식의 전달은 지식 장사지 결코 좋은 인연은 아니다. 진실한 인연은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 조건도 없어야 한다. 조건이 붙은 인연은 상처라는 벌로 돌아온다. 진실을 모르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은 벌이기도 하다. 진실은 진실한 사람에게만 주는 것이다. 그래서 주역은 이러한 현상을 대인을 만나는 일이라 했다. 아무에게나 진실을 투자하는 것은 소인을 만나는 것이니 위험하다고 한다. 그래서 대인은 진실이고 소인은 진실이 없는 사람이며 대인은 사리사욕 없이 도의 길을 걷는다고 법정스님은 말한다.

일 년을 마무리하며 인연을 한번쯤 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떠오르는 얼굴이 있을 것이다. 좋은 감정으로 혹은 좋지 않은 감정으로 생각의 정리는 되겠지만 행동의 정리는 쉽지 않다. 바로 사회적 연결고리 때문이다. 하지만 길지 않은 생을 생각한다면 모두를 수용하고 포용하며 살기에는 힘이 든다. 관계는 끊이지 않고 날마다 새롭게 만들어지지만 좋은 인연은 많지 않다. 그만큼 현실은 진실로부터 각박하다. 원인은 욕심이다. 사람은 그릇이고 욕심은 비워지지 않는다. 그릇이 큰 사람은 많이 담을 수 있지만 내용이 문제다. 그릇이 작은 사람이 그마저 욕심까지 비우지 않으면 소인배라 한다. 그릇이 큰 사람도 욕심을 덜어내야 진실이 자리한다. 도덕경에서는 그릇의 비움을 무용(無用)이라 한다. 비워야 비로소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그릇을 비우지 않는 사람과의 인연은 맺지 않음이 좋다. 욕심을 뚫고 들어갈 진실의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마음을 주면 마음이 돌아오고 돈을 주면 돈만 돌아온다. 법정스님이 앞에서 설파한 진실이 없기 때문이다. 인연이란 곧 자신의 삶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바로 나다라는 말도 있다. 그래서 인연은 내 삶을 좌우한다. 만나서 즐거우면 호연이요 짜증나면 악연이다. 요즘 자신이 누구를 만나고 다니는지 돌아보면 자신이 보인다. 함부로 인연을 맺을 일은 아니다. 진실한 인연은 그만큼 귀하다. 경자년엔 좋은 인연을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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