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진/ 광신대학교 복지상담융합학부 교수, 사회복지학박사

자기가 참으로 사랑했던 첫사랑의 여인이 죽어버리자 그 실연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정계에서 상당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지만, 곧 추한 정치 게임에 말려들어 누명을 쓰게 됩니다. 결국 그는 자기 고향에서 추방당하여 방랑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랑도 정치도 모두 실패하고 고독한 방랑길에 들어선 그는 어느 날 밤하늘을 보고 누워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자기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여인인 베아뜨리체가 자기를 영원한 세계로 안내하는 꿈입니다. 그는 붓을 들어 작품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장편의 서사시가 그 유명한 신곡이고 그의 이름은 단테입니다. 절망과 분노의 한가운데서 신에 대한 소망을 불태우던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인류를 죄의식에서 해방시키고 영혼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게 하려는 의도를 드러내 보이고 있습니다. 곧 사랑과 정치의 실패가 없었다면 영원한 고전 신곡은 태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심리학자인 아브라함 매슬로우는 인간이 지닌 최고의 욕망은 자아실현의 꿈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자아실현의 꿈이 불가능해져서 자기가 참으로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다 사라져 버렸다고 느끼는 그 순간이야말로 인간이 느끼는 가장 큰 절망의 순간일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삶의 위기가 있습니다. 이 위기를 잘 극복하지 못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슬픈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삶의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꿈이 사라졌을 때, 그 꿈의 잿더미 위에 주저앉아 버리지 않고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금방 말씀드린 단테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병들고 썩은 자신의 영혼이 베아뜨리체의 구원자적인 사랑의 힘으로 치유 받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하나의 꿈이 사라질 때 너무 쉽게, 그리고 너무 빨리 인생의 모든 것을 체념해 버리고 되는대로 살아갑니다.

스위스에 헨리 듀넌트라는 유명한 은행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 전 세계를 석권하고 있던 프랑스의 나폴레옹 황제를 만나고자 하는 꿈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스위스의 은행장으로서 프랑스와 더불어 경제 협력의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습니다. 드디어 그는 조국 스위스의 경제 사절의 임무를 띠고 파리로 가서 나폴레옹 황제를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오랜 꿈이 막 실현될 순간에 이른 겁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가 파리에 도착할 때 즈음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나폴레옹 황제가 전쟁터로 출정한 직후에 파리에 도착한 것입니다. 나폴레옹을 만나고 싶다는 그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하지만 듀넌트는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전쟁터로 따라갔습니다. 그는 난생 처음으로 포탄이 날아다니는 전쟁터의 구경꾼이 되어, 한바탕의 전쟁이 끝나기까지 그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전쟁은 끝났습니다. 그는 피투성이가 되어 뒹굴고 있는 수많은 시체들을 바라보면서,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 생명의 허무성을 뼈저리게 깨닫게 됩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는 거기에 남아서 오랜 기간 의사를 도와 부상병들을 처리하고 시체들을 치우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결국 나폴레옹을 만나 경제적으로 새로운 부를 획득하겠다는 꿈은 깨지고 말았지만, 그는 전쟁터에서 고향으로 돌아오며 새로운 꿈을 꿉니다. 그것은 평화에 대한 꿈입니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한 가지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유명한 적십자사입니다. 그는 첫 번째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적십자기는 색상과 순서 배치만 다를 뿐 스위스 국기와 똑같은 것입니다. 조국 스위스와 그리고 전 세계에 평화를 심고 싶어 했던 그의 꿈은 마침내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하나의 꿈이 절망으로 끝났을 때, 거기에서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가졌던 이전의 꿈보다 더 위대한 꿈이었던 겁니다.

여러분의 꿈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전에 인간적 꿈의 좌절을 경험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혹은 지금 그런 상태에 빠져 있습니까? 그 좌절을 딛고 새로운 꿈을 꾸십시오. 이전의 꿈보다 더 위대한 꿈을 말입니다. 사회와 이웃을 통해 꿈의 좌절을 경험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혹은 지금 그런 상태에 빠져 있습니까? 그 좌절을 딛고 새로운 꿈을 꾸십시오. 바로 더불어 잘 사는 따뜻한 사회에 대한 꿈입니다.

인생은 만남에서 그 삶의 질과 방향이 결정됩니다. 한 위대한 인물이 탄생하는 데는 반드시 위대한 만남이 있기 마련입니다. 인생을 돌이켜보면 좋은 스승, 좋은 친구,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명백해지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잘 사는 따뜻한 사회는 나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함께 기뻐하는 나라입니다. 가난하고 소외되고 억압받는 사람이 주인 대접을 받는 나라입니다. 무엇보다 영혼이 자유함을 누리는 나라입니다. 단테나 듀넌트가 절망을 딛고 새로운 꿈을 통해 이루려 하였던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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