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사진가 수필가

경자년이다. 특별한 계획을 세울 정도의 사회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기에 마음을 다잡을 일도 없지만 괜히 그래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세시 풍경이다. 한 해의 마무리와 시작이지만 중앙 정가는 고요할 날이 없고 온갖 방해공작과 꼼수까지 곁들인 공격에도 선거법과 공수처설치법안은 통과 되었다. 약자 국민 입장에선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야권 고위층과 검찰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조국 국면 역시 결국 불구속 기소로 수사는 일단락되었다. 12개 혐의다. 모두 읽어보고 허망함을 느낀 게 나뿐일까. 정경심 기소와 별반 다르지 않다. 모든 언론에서 집중포화를 맞았던 혐의는 사라지고 심지어 아들 오픈 과제를 같이 풀었다는 이유로 한 개의 혐의가 추가 되었다. 학부모가 아이들 숙제를 돕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니 대한민국의 모든 학부모는 범죄자가 되었다. 청와대는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라는 말로 대신했다. 경자년에 검찰총장이 쥐띠임을 감안하면 의미가 있다.

문득 과거 읽었던 윤홍길의 완장이란 소설이 생각났다. 완장이 권력으로 인식되는 순간 완장은 찬 게 아니라 무겁게 지고가다 결국 나를 짓누르는 흉기가 된다는 이야기다. 작은 권력의 맛은 이성을 넘어 만용으로 흐른다. 자신에게 양어장 관리라는 완장을 채워준 사람까지 통제하려드는 주인공의 심리는 단순하다. 바로 권력의 맛이다. 우리는 스스로 조선인의 특성을 말하며 비하한다. 조그만 완장만 차면 눈빛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과거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이들에게 완장을 채워주고 불령선인과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들이는 도구로 썼다. 야설이지만 독립운동가 김원봉 선생과 친일의 개로 활동한 노덕술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소설 완장 역시 조그만 권력만 있으면 최선을 다해 갑질을 해대는 모습이 현실의 복사판이다. “요 완장 뒤에는 법이 있어!”라고 외치는 주인공 임종술의 말이 결코 공허하지만은 않다. 요즘 시골 동네에서도 비슷한 일은 벌어진다. 동네마다 마을 회관이 있고 관리인이 있는데 관리인의 비위가 틀리면 문을 잠가버리고 열어주지 않는 사태가 종종 일어나기도 한다. 회관의 관리를 맡은 자신에게 주어진 완장의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2019년의 기억에서 가장 특별했던 것은 가짜 뉴스다. 엄청난 분량의 가짜 뉴스가 지상과 지하의 모든 미디어를 장악했다. 특히 최고의 미디어 권력으로 자리매김한 각종 SNS와 유튜브 등은 개인 미디어라는 언론 완장을 차고 자리를 잡았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기사와 뉴스는 바로 돈이 되고 돈만큼의 권력이 생긴다. ‘독자가 소위 깡패다. 팩트에 기인한 뉴스보다 추측성 혹은 가짜 뉴스의 분량이 더 많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더욱이 대표 일간지에서 쏟아지는 추측성 기사와 소설 같은 기사들이 어느 개인 혹은 가족을 향했다면 더 큰 문제다. 기자라는 완장의 남용이다. 더욱 중요한 건 완장의 남용이 편파적이라면 방법이 없다. 서로의 이권을 위해 결탁한 권력의 완장은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기해년을 마무리하며 얻은 가장 큰 결실은 공수처설치법이다. 도저히 넘보지 못할 것만 같던 검찰의 권력 테두리를 아주 조금 파고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야당과 검찰 그리고 일부 언론은 독일의 게슈타포와 다름없다고 하지만 거짓말이다. 현재 대한민국 검찰은 약 2,300명이고 공수처 수사관은 단 25명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수사관 숫자까지 대비하면 100배 이상에 달하는 규모를 유지하는 검찰이 공수처를 거대권력으로 보는 것은 맞지 않다. 특히 서로 견제 기소권이 있으며 직무와 무관한 고위공직자의 범죄는 수사 대상이지도 않다. 그래서 임은정 검사는 공수처를 병아리라고 했다. 하지만 검찰은 절대적 완장의 영역으로 누군가 발을 들이는 자체가 싫은 것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요즘 그의 행보를 이해하긴 힘들다. 언론과 한국당의 주장을 배제하고 들여다본 조국 기소는 최고의 법률가 집단인 검찰이 행한 업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래서 개인적인 생각은 윤 총장을 엑스맨으로 본다. 그는 대통령에 대한 충정을 말했고 자신이 악역을 맡겠다고 분명히 밝혔다. 심지어 판사까지 공격하는 검찰의 행동은 분명 정상이 아니었고 법체계를 난장판으로 만들어 공수처 설치를 이끌어 내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여기에 검찰개혁의 필요성까지 국민에게 확실히 각인 시켰다. 그래서 윤 총장이 엑스맨을 자처했다는데 한 표 던진다. 조국 교수 부부의 기소장과 그동안 언론에서 융단 폭격했던 기사의 내용을 대조해 보면 얼마나 황당한 사건이었는지 판단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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