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농민들, 한 해 농사 정리하는 이야기 들어보니
“날 소농이라 할 수 있을까. 허허….”
전업농민들 중에선 좀체 스스로를 소농이라 말하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이제 막 귀농해서 농사를 알아가거나 아니면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농사를 줄이는 경우가 아니라면 규모를 차츰 늘려가기 마련이다. 넓게 중소가족농의 범위엔 들 수 있겠다 싶지만 농번기가 되면 가족들 손으로는 제 때 농사일을 마치기가 어렵다.
전업농들이 농사규모를 늘리는 건 그만큼 농업으로 살림을 유지하기 빠듯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중소농을 육성하겠다지만 조건을 다 맞추다보면 규모를 늘려야 한다. 중소농의 정체성을 갖고 농사를 지속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구랍 24일 영광군청 앞에는 통일트랙터 모금액 전달식을 겸한 기자회견을 하려 지역농민들이 모였다. 이들은 기자회견이 끝났다고 아쉽게 헤어질 순 없었기에 한 해 농사를 짚어보는 시간을 함께 가졌다.
영광지역 농민들의 관심사는 태풍 피해와 나락값이다. 지역농협은 40㎏당 6만2,000원으로 나락값을 정했다.
“영광군 예산으로 농협 RPC에 10억원을 지원했는데 나락값은 다른 지역하고 비슷하네.”
영광군 농업예산도 문제다. 예산규모는 둘째치고 불용되는 예산이 적잖기 때문이다.
“사업이 있으면 뭘 해. 지원하는 농민이 없는데.”
“중소농을 위한 사업은 없고 대농만 지원할 수 있으니까 그렇지.”
축산분야도 경종농업과 사정이 비슷하다. 중소농이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이번에 소 3두를 팔았는데 그 중 1두는 520만원에 팔았어. 그 1두에서만 300만원 적자를 본거야. 송아지를 300만원, 400만원에 사서 2년 넘게 키워 출하했는데 300만원 적자를 본다고 쳐봐. 다 손들게 되지.”
통계청 농림어업총조사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영광군 한우사육농가는 총 537가구다. 이 중에서 10두 미만 사육농가가 약 40%를 차지한다. 200두 이상 사육농가는 겨우 14가구다. 만약 한우가격이 폭락했다간 사육규모가 작은 한우농가부터 큰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대다수 축산농가가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의미다.
농민들은 기자회견 시간보다 더 길었던 티타임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무환 영광군농민회장은 “쌀농가를 기준으로 하면 적어도 3㏊(9,075평)는 지어야 먹고 살 수 있다. 밭이면 대농이라 할 수 있지만 논은 그렇지 않다”면서 “그 정도가 중소농이라 봐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제 농사를 짓는 중소농을 위한 직불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자리가 비단 영광지역에서만 있지는 않았을 터다. 각 지역마다 청와대나 농림축산식품부와의 거리는 다르겠지만 심정적 거리감은 그보다 더 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