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사진가 수필가

법성포와 터미널이 차가 막히는 것을 보니 명절인가 보다. 군사정권 시절 한 때는 설을 없애고 양력 신정만 인정하기도 했지만 고유의 명절을 없앨 수는 없다. 음력으로 새해 첫 날을 시작하는 날이니 명절의 의미보다는 시작의 뜻이 깊고 조신한 마음가짐이 필수다. 그래서 설날은 신일(愼日)이다. 행동을 삼간다는 의미다. 새 옷을 차려 입고 조상에게 예를 갖추는 날이기도 하다. 즐거운 명절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이수광이라는 선비가 저술한 여지승람에는 설이 달도일로 기록이 되어 있는데 칼로 마음을 에이듯 하다는 뜻이고 서러워서 설, 추워서 추석이라는 속담도 있다. 옛날에도 요즘과 별반 다르지 않았나 보다. 가진 자는 더욱 풍요롭고 가난한 자는 춥고 서러운 날이 명절이기 때문이다. 행동을 삼가고 일 년을 새롭게 시작하는 결심의 날과는 무관하게 선물로 인사를 하는 관례가 자리를 잡고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에게 혹은 없는 자가 풍요로운 자에게 올려 바치는 날이 되었다. 즐거운 명절은 따로 존재 한다.

요즘 시골은 나이만 풍요롭고 식구는 가난한 사람들로 가득 차있다. 일 년이면 두세 번 다녀가는 자식들을 기다리는 망자석(望子石)이 되어 얼마 남지 않은 삶을 곶감처럼 빼먹고 있는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자식들을 기다리는 희망이라도 있으니 이들은 나은 편이다. 노인들에게 명절이란 자식과의 해후의 날이다. 이따금 보는 손주들의 얼굴을 익히는 속도보다 빨리 사그라져가는 자신의 기억력을 탄식하며 일 년의 거의를 홀로 노인으로 살아간다. 명절이면 동네는 두 부류로 나뉜다. 손주까지 찾아와 오랜만에 사람 사는 것같은 집과 아무도 찾아올 사람 없는 무연고 노인이 사는 집이다. 무연고라는 말처럼 슬픈 것은 없다. 그래서 서러운 설이다. 이들에게 명절이란 마음을 칼로 에이는 듯이 슬픈 날이다.

주위의 대부분 서민들은 명절을 즐거워하지 않는다. 며느리는 시부모를 사위는 처부모를 찾는 게 부담으로 다가오고 직장에선 선물 인사가 부담이다. 특히 여성은 명절 후유증까지 겪는다. 막히는 귀향 귀경길에서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며 민족 대이동을 해야 하는 이유는 딱히 없다. 그냥 관습이요 민속이다. 명절에 부모를 찾지 않으면 괜스레 죄를 짓는 느낌일 수도 있다. 설날부터 정월 대보름까지 이어지는 휴식기는 이제 의미를 잃었다. 어린 시절 가졌던 설레임도 잃었고 부모님에게 올리던 세배도 가치를 잃었다. 떡국 한 그릇 끓여줄 사람 없는 노인에겐 잔인한 날일 뿐이다. 어버이 날 카네이션 한 촉 꽂아줄 연고가 없어 면이나 사회기관에서 단체로 채워주는 꽃이 오히려 슬프고 복지회관에서 얻어먹는 한 그릇 떡국이 가슴에 얹히는 무연고 노인들을 위로해줄 방법은 없다.

명절을 반기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설과 추석 명절은 상인들의 날이다. 선물 주고받기가 많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팔리는 상품은 줄지 않는다. 명절을 앞두고 한 달은 정신없이 바쁘다. 이 많은 선물들이 가는 곳은 기득권자들의 창고다. 일반 서민들에게 도착하는 선물은 거의 없다. 성탄절은 기독교 잔치고 불탄일은 불교의 잔치다. 성금은 신도가 바치는 것이지 목사나 신부 혹은 스님이 신도들에게 바치는 것은 아니다. 명절은 그래서 우울하다. 없애고 싶지만 마음뿐이다. 국민투표가 필요한 부분이다. 어버이날은 평상시 부모를 잘 모시지 못함의 증거고 범죄 없는 마을 선정은 대부분 동네는 범죄가 있다는 증거이며 바르게살기운동은 국민 다부분이 바르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운동이다. 또한 동네 어귀의 효열비는 대부분의 과부가 정조를 지키지 않았기에 지켜낸 여인을 특별히 기리기 위한 비석이다. 부모는 어버이날과 명절에만 모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평시에 자주 찾아뵙는 습관을 들임이 맞다. 명절에 의무적으로 찾는 부모는 친함이 덜하다. 특정 된 날의 특정 된 행동은 작은 것으로 큰 것을 잃게 된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범죄 없는 마을의 선정은 나머지 마을을 모두 범죄 마을로 만들었고 바르게살기운동은 대한민국을 바르게살기운동을 벌려야하는 나라로 만들었다. 특정된 날의 지정은 나머지 많은 날을 잃게 만든다는 뜻이다. 명절과 특정일이 없어지지 않을 거라면 거자일소(去者日疎)와 부자유친(父子有親) 혹은 조손유친(祖孫有親)을 생각해 보자. 사람은 자주 보지 못하면 마음까지 멀어진다. 그리고 명절에 홀로 지낼 노인들의 아픔도 마음에 담아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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