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순/ 사진가 수필가

요즘 사회는 한마디로 예의가 없다. 젊은이들이 버릇이 없다던 과거의 예와는 조금 결이 다르다. 젊은이의 문제가 아니라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까지 같은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판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안철수의 귀국 후 행보에서도 우리 고유의 예의는 찾아볼 수 없었고 극단적인 자기중심의 이기심만 보았다. 동지 혹은 같은 길을 가는 도반으로서의 배려는 조금도 없었다. 사람은 자라온 환경이 만든다고 했다. 그 점에선 약간 이해가 되지만 우리 민족이 안고 살아온 예의는 바탕을 이타심에 두고 있다. 그래서 그의 행동은 근본적으로 홍익(弘益)을 기반으로 하는 치국과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자신의 이름을 넣어서 신당을 창당한다는 말이 떠도는 상황에선 우주유아(宇宙唯我)’적인 자아관을 여실히 보여준다. 창당을 하고 깨고 다시 창당을 하면서 네 번째 당을 만들고 있다. 이정도면 거의 취미생활 수준이다.

우리 예의는 서양의 에티켓(etiquette)과는 약간 다르다. 뜻은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 마음가짐과 몸가짐이지만 가장 바탕에는 말씀의 예절이 있기 때문이다. 서양과는 달리 상대방에 대한 공경은 말씨에서 비롯된다. 깊은 배려와 마음가짐 그리고 몸가짐을 갖추어도 언어에서 예를 잃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장유유서가 아직 뿌리를 내리고 있는 현실에선 손윗사람에게 존댓말을 쓰지 않으면 예를 잃으며 배운 데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마땅히 지켜야할 기본 덕목인 셈이다. 지금은 아이들을 자신의 대리만족을 위한 시험 도구로 혹독한 훈련을 시키는 데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이지만 과거는 많이 달랐다. 댓돌에 신발이 흐트러져도 안 되고 밥상의 수저가 엎어져 있어도 훈계의 대상이 되었다. 몸가짐은 마음가짐에서 나온다는 믿음이 지배했던 당시 머릿속의 지식이 아닌 마음의 심재(心齋)가 훨씬 중요했다는 의미다. 그래서 배운 데는 부모님이 심어주는 마음이었다. 배움을 부모로부터 받지 못하면 지식이 아닌 행동이 뒤틀린다. 그래서 아버지 없이 홀로 자식을 키우는 어머니는 호로자식이라는 말을 피하기 위해 오히려 엄하게 키웠고 버릇없는 자식을 만들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다. 반면 권력과 부로 자식을 키운 결과는 예()의 상실이다. 특징은 배려가 없고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이다. 물론 덤으로 상대에 대한 예의는 없다. 자신들만의 진영을 사랑하고 노는 물을 따로 만든다. 일반 국민은 자신들과 격이 다르다는 선민의식을 기본으로 깔고 살아간다. 그래서 때론 서민을 개와 돼지로 보기도 한다. 진영논리는 자신의 진영을 벗어난 사람들에 대한 혐오로 바뀌고 자신들의 자리를 넘보기라도 하면 극심한 질투와 분노에 휩싸인다. 그렇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했고 현 정권도 비슷한 처지다. 정책의 옳고 그름은 따지지도 묻지도 않는다. 열등시민이 자신들이 앉아야할 자리를 차지하는 게 그냥 싫다.

순천 곡성의 사랑을 20년이나 받으며 승승장구 정치판을 누렸던 인물이 종로에서 출마를 한다고 한다. 이낙연 전 총리가 이곳에서 출마를 예고하면서 황교안 대표와의 대결을 원했던 곳이기도 하다. 바로 황 대표를 구원하기 위한 구원투수로 나선 모양새다. 현 정권의 실정을 정치일번지 종로에서 알리기 위해 나섰다는 말이 진심이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유를 막론하고 호남인에 대한 예의를 저버린 것은 사실이다. ()를 잃으면 예도 잃기 때문이다. 예를 찾지 못하는 것은 정치판만의 일은 물론 아니다. 우리 주위에서도 무례는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쉬운 예로 인사를 모른다. 사진을 하는 관계로 사진자료를 자주 부탁 받는다. 관공서에도 여러 번 자료를 주었지만 받으면 그만이다. 대가는 바라지 않고 주었지만 받았다는 문자 한통 받아본 적이 없다. 소소한 일상에서의 실례(失禮)는 배운 데와 직결된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자식의 예의 없음을 나무라기 전에 자신의 잘못된 교육을 부끄러워 했다. 사람은 환경이 만든다는 말이 맞다. 환경의 토대는 가정이고 가정의 가르침은 부모다. 모든 배운 데는 가정과 부모라는 환경에서 시작한다. 새로 만들어지는 정당 두 곳이 ‘00 신당이라고 한다. 새롭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갑자기 오는 새로움은 없다. 날마다 새로워져야 하고(日新又日新), 날마다 쌓아가야 하고(爲學日益), 날마다 비워내야(爲道日損) 하는 것이다. 정쟁질에 코를 박고 사는 부류는 그나마 여유가 없다. 특히 국가의 재난까지 정치로 이용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예를 상실한 것이다. 동방예의지국은 동방무례지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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