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택/ 시인

경제가 어렵다던 상황 속에서도 지나갔던 명절에는 다시 또 한 번 민족대이동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내려오고 올라갔던 모습이 우리 민족의 살아있는 미풍양속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게 했습니다. 저마다 양손에 가득가득 들고 나서는 모습들은 상자나 포장지 안에 무엇이 들어있든지 간에 그 쪽으로 잠시 눈길이 갑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색깔고운 포장지로 예쁘게 포장된 선물을 받아드는 순간의 기쁨은 어떤 것일까요. 포장된 포장지의 색깔보다도 받아드는 사람의 마음은 더 곱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주는 사람의 마음은 또한 어떨까요. 포장지 속에 감춰진 것이 비싼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주고받을 때의 마음은 상상할 수 없으리만큼 아름다울 것입니다.

지나간 설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선물꾸러미를 들고 도심을 오고가는 모습이나 고향을 찾는 모습을 볼 때 정말 정이 넘치는 것 같아 보고만 있어도 참 좋았습니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선물 꾸러미를 들고 어른들을 찾아뵙고 평소 은혜를 입었던 사람들을 찾아뵙는 모습에서 우리들은 훈훈함을 느끼는가 봅니다. 1~2만원정도의 부담 없는 선물인데도 굳이 주고받는 것까지 간섭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정도가 지나친 선물이나 떡값이 아니라 차 한 대 값의 선물과 금품이 오고가는 경우가 있어 정부 차원에서도 명절만 되면 규제하려고 나서는지 모릅니다.

정으로 주고받는 선물을 넘어서 이해관계에 얽혀서 부당한 일을 부탁하고 그것을 또 들어주는 대가로 차 한 대가 아니라 차떼기로 금품을 실어 나르는 기상천외한 사회현상을 보는 순간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하게 할까요?

선물이 선물을 벗어나서 이렇게 이해관계에 얽혀져 있다면 주고받는 마음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 뒷면에는 딴 마음이 있어 사회가 점점 나쁜 길로 빠져드는 것이 아닐까요. 주고받는 것은 우리의 미덕이었습니다. 찾아오는 손님에게서 선물을 받고 돌아서는 사람에게 정성을 다해서 주는 선물이란 정말 미덕이지요.

빈손으로 보내기가 쑥스러워서 자기 집에서 수확했던 과일이나 곡식 또는 손수 마련한 음식 등을 싸 주는 것이었지요. 여기에서 주고받는 것이란 이해관계가 아니라 색깔 고운 포장지와 같은 아름다운 우리들의 마음이었지요.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주기를 좋아했던 민족 이어서인지 떡 한 조각이라도 나눠먹는 미풍양속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좋은 풍속도가 지금은 빛이 바래져, 가진 자와 누리는 자에게는 그것을 벗어나 독식이라도 하는 양 받기만 하는 사람들이 많다니 받는 손과 주는 손이 따로 있는가 싶어 가슴이 아픕니다.

일전에 고향에서 만났던 지인 한 분이 이날 이때까지 주고만 살아서 받는 사람이 얄밉더라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웃사람집을 찾아가 초인종을 누르면 사모님은 응당 받는 것에 잘 길들여져 고맙습니다. 하면 끝나더란 것입니다. 쌓아둔 선물꾸러미들을 찾아가는 부하 직원들에게 덥석 하나 집어주면 안될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집으로 오는 길이 매년 허탈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습니다. 빈손으로 보내지 않았던 우리네 조상들의 그 따뜻한 미덕은 어디로 가고 받는 것에만 길들여져 가고 있을까요.

윗사람들, 아니 사모님들 제발 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허탈하게 하지 않도록 하면 안 될까요.

색깔 고운 포장지로 싸진 선물을 받아들고 흥겹게 돌아가는 부하 직원의 모습도 상상해보면 어떨까요.

요즘은 주고받는 선물도 온라인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지난날처럼 직접 선물을 들고 나서는 경우가 줄어졌지만 아직도 손수 방문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훈훈하지 않는가. 이마져 끊이지 않도록 서로서로 찾아가고 맞이하는 마음이 아름답게 이어지는 풍속을 지켜가야 하겠습니다. 택배를 통해서 아무 때나 성의 없이 팽개치고 가는 선물도 아니고 몸과 마음까지 함께 하는 모습이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도록 모두가 미풍양속을 이어나가자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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