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5명,2대-3명출마 민주당 벽을 넘지 못해

오는 6·13 지방선거에서 기초단체장인 영광군수를 선출한다,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실시하여 광역단체장인 전남도지사와 광역의원 및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즉 군수와 군의원을 함께 선출한다. 민주당 영광지구당이 지난달 20일 영광실내체육관에서 영광군수후보 선출 경선을 열어 김봉열 현 영광군수가 정흥수씨와 김연관씨를 누르고 당선되어 3선을 향한 교두보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경선에 참가한 정흥수씨가 불공정 경선을 주장하면서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고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어 사실상 경선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이번 영광군수 선거에는 민주당후보로 김봉열씨가 결정됨에 따라 이미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김규현 전영광군의장과 장 현 호남대 교수에다, 정흥수 전행정자치부 방제국장까지 4파전 이 확정적이다.

■ 기초단체장선거 역사

49년 7월 4일에 제정된 지방자치법에서 기초단체장을 의회에서 선출하는 간접선출제를 도입하였다. 이 기초단체가 당시에는 읍면 단위로 구성되어 읍면장을 읍면의회가 선출해야 하나 당시 정치상황의 어려움 때문에 지방의회 선거는 치르지 못하였다.

그 후 1956년 2월에 법을 개정하여 읍면장을 주민직선제로 개정하여 그 해 8월 8일에 제1대 기초단체장 선거를 실시 영광군내 12개 읍면장을 선출하였다.

그리고 1960년 12월 16일에 또다시 제2대 기초단체장 선거를 실시하였으나 61년 5·16으로 지방자치 임시조치법을 제정하면서 지방의회는 해산되고 기초단체장은 임명제로 바뀌면서 중앙정부 통치제제에 접어들었다.

이후 90년 지방자치제 부활을 결정, 기초단체를 종전의 읍면단위에서 군단위로 변경하고 91년 3월 26일에 지방의회 구성을 위한 선거를 치른 후, 4년 뒤인 95년 6월 27일에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실시하면서 기초단체장을 주민직선으로 선출하였다. 제1회지방선거는 국회의원 선거와 2년마다 격년제로 개최키 위하여 임기를 3년으로 제한하였다

■1대 기초단체장 선거

95년 6월 27일에 열린 기초단체장선거는 주민들의 손에 의해 군정의 책임자인 군수를 뽑는데 관심이 집중되었다. 당시 민주당 공천을 김봉열(영광축협장)씨가 따내자 이에 반발한 강명룡(전남도의원)씨가 출마를 강행하였고, 조영표(영광읍장)씨와 김기순(영광농협장)씨가 출마를 선언하고 영광군청공무원인 김천식씨가 입후보하면서 5명이 경쟁하였다.

이때 김봉열씨가 민주당 당사 건립에 따른 부지기부 문제로 구속되면서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졌으나 결과는 1만5886표를 얻은 김봉열씨의 옥중당선으로 마무리되었다.

개표결과 김봉열씨는 11개읍면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여 당시에 불어닥친 황색돌풍을 실감케 하였으나, 나머지 3후보가 얻은 2만3551표도 상당하였다.

■2대 기초단체장 선거

2대 선거는 98년 6월 4일에 열렸다. 지난 선거에서 황색태풍의 위력을 감지한 입지자들이 출마를 포기한 가운데, 국민회의영광지구당이 공천결정을 지구당대의원들의 투표에 의한 방식을 도입하였다. 그 결과 김봉열(영광군수)씨가 김연관(전남도의원)씨를 누르고 당선되어 영광군수후보로 선정되었으며, 경선에서 탈락한 김연관씨가 탈당을 선언 출마하고, 지난 선거에서 패배한 조영표씨가 또다시 입후보하여 3파전으로 선거를 치렀다.

지난 1대에 비해 약해지기는 했으나, 김대중 바람이 계속 불어오면서 국민회의의 압승으로 끝난 선거는 김봉열씨가 1대보다 1843표가 더많은 1만7729표를 득표하여 재선하였다.

그 당시 1대에서 9563표와 9120표를 얻은 김기순씨와 조영표씨가 손을 잡아 김군수가 불리할 것으로 예측하였으나, 결국 김연관씨의 출마로 김군수의 반대표가 나누어지는 현상 때문에 연속 당선되었다고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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