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함평 영광위원장/이낙연의원

북에 다녀왔다. 난생 처음이었다. 1980년대에 판문점 북측 지역에 드나들었고, 1990년대에 중국을 통해 백두산에 가본 것을 빼고는, 처음으로 북녘 땅을 밟았다. 산이나 강을 보고 온 게 아니다. 북의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의 삶의 현장을 얼마간 관찰했다. 익숙하면서도 낯설었고,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복잡한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했다.

8월25일. 개성공단 부지를 시찰하고 개성 시내를 둘러보았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회장 김영수)와 현대아산(사장 김윤규)이 각 분야의 중소기업협동조합 지도자 110여명을 위해 이 특별한 여행을 준비했다.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 9명도 동행했다. 일행은 220여명이었다.

오전 7시 40분. 우리는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를 출발했다. 버스 7대. 각 버스의 몸통에는 ‘개성공업지구 중소기업 방문단’이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틀 전부터 서울에 큰 비가 내렸다. 일기예보는 오늘도 비가 온다고 했다. 일행 중에는 우산을 가져온 분도 계셨다. 그러나 일기예보는 기분 좋게 빗나갔다.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살랑거렸으며 햇볕은 쨍쨍했다.

우리는 이내 서울을 벗어났다. 시원하게 뚫린 4차선 도로. 포장이 산뜻하고, 가로등도 세련됐다. 버스는 막힘없이 달렸다. 예정보다 10분 빨리 남측 출입사무소(CIQ)에 닿았다. 남북을 오가는 사람들을 위한 검문소다. 새로 지어진 데다, 별로 사용되지 않은 곳. 벽과 바닥이 깨끗했다. 아직도 페인트 냄새를 풍겼다. 조금 떨어진 왼쪽에 도라산 역사가 날렵하게 서 있다. 도라산역을 통해 경의선 철도가 북으로 뻗어 있다.

출입절차는 간단했다. 주최측이 사전준비를 완벽하게 해주신 덕분이지만, CIQ에서 우리가 한 일은 단순했다. 북한방문증(통일부에서 미리 발급받은 것)에 법무부 직원의 도장을 받고, 검색 문(공항에서 승객이 통과하는 문 같은 것)을 통과하는 것뿐. 220여명이 출입절차를 마치는데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분단 반세기. 우리가 넘을 생각조차 못했던 금단의 경계선. 그것을 이렇게 간단히 넘게 됐다. 천지개벽이다. 이런 천지개벽을 우리 세대가 이루어 냈다. 김대중대통령께서 고집스럽게 추진하신 남북화해협력정책의 결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빛나는 성취를 벌써 잊고 있다.

남측 CIQ를 통과하자 버스가 갑자기 서행했다. 시속 20km 정도. CIQ 도착도, 출입절차도 빨라서 시간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남북 군사분계선(MDL)을 오전 9시40분에 통과한다는 남북간의 합의를 지키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간 것이었다. CIQ부터 MDL까지 2km의 4차선은 포장이 한창이었다. 9월말까지는 포장을 끝낸다고 했다.

개성은 외부 사람들과의 접촉경험이 있는 편에 속한다고 한다. 조총련 자녀들이 간간이 수학여행을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민들이 손을 흔들거나 웃음을 보내는 일에 비교적 익숙하다는 것이다.

그래도 남자들은 반응이 거의 없다. 어쩌다 손을 흔들어도 얼굴이 무겁다. 무표정하다. 지쳐 있는 것 같다. 혁명에도 투쟁에도 이제 지쳐버린 것일까.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 ‘장군님만 계시면 우리는 이긴다’ ‘우리나라 사회주의 만세’… 체제를 칭송하고 혁명과 투쟁과 노동을 고취하는 붉은 색 격문은 많지만, 남자들의 얼굴에는 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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