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제언

젊은 부부가 네 살 짜리 꼬마와 함께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고 있었다. 세명 다 등에 가방을 지고 있었다.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며 무거운 발을 옮기는 부모 뒤에서 꼬마 녀석 역시 무거운 발을 옮기고 있었다. 이런 광경을 본 어떤 한 할머니가 젊은 부부를 향해 어린것의 등짐을 아버지 등짐에 보태지 않고 꼬마를 저렇게 고생시키느냐고 핀잔을 걸었다. 그러자 젊은 부부는 미소만 짓고서 여전히 꼬마의 등짐은 꼬마가 지고 가도록 하면서 꼬마의 아버지가 꼬마에게 말을 걸었다. "각자의 짐은 각자가 지고 가는 거야." 네 살 꼬마는 머리를 끄덕이며 뒤따라갔었다. 여러 해 전에 보았던 일이지만 내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자녀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녀가 제 인생을 책일 질 수 있도록 정신을 길러주는 일이다.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부모는 꼬마가 져야 할 짐을 대신해서 져주어 스스로 일을 처리하는 기회를 빼앗는다. 위에서 말한 젊은 부부는 꼬마를 진실로 사랑하는 까닭에 꼬마에게 제 등짐을 지게 하는 것이다. 부모의 맹목적인 사랑은 거름을 너무 많이 퍼부어 곡식을 웃자라게 하는 짓과 같아 자식을 버리기 쉽다.

참으로 사랑할 줄 아는 부모라면 자녀가 스스로 느끼고 스스로 생각하며 자신을 돌이켜 보는 습관을 터득하도록 자녀 옆에서 도우려고 노력한다. 검소하게 살도록 헤아리게 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도록 자녀를 주의하고, 양보하는 사람이 되도록 자녀를 살피고, 의젓하고 당당한 사람이 되도록 자녀의 길잡이 노릇을 할 줄 안다. 그래서 제 자식 사랑하기가 제일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젊은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 것과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다르다. 소중한 목숨을 물려주고 물려받는 사이가 부모와 자녀이므로 천륜(天倫)이라 하는 것이 아닌가. 천륜은 욕심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자식에게 욕심을 부려 부담을 주는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학대하는 셈이다. 너는 커서 장차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단서를 달지 말라 함이다.

부모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는 말이 있다. 부모가 자녀를 올바르게 사랑하며 그 자녀가 부모가 됐을 때 다시 올바르게 자녀를 사랑해 대대로 자효(慈孝)가 이어진다는 게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 자(慈)이고 자녀가 부모를 사랑하는 것이 효(孝)이다. 자녀가 정성을 다해 부모를 받들고 모시는 마음이 진실하다면 그 자녀의 부모가 정성을 다해 자녀 사랑을 바르게 한 보답인 셈이다. 바른 부모가 바른 자녀를 둔다. 부모와 자녀의 혈연이 자효(慈孝)로써 이어진다는 것은 결국 부모의 마음이 곧고 커야 함을 말한다. 그래서 후덕한 부모라야 자녀를 바르게 사랑한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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