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산나무와 마을숲을 향토 문화․ 관광자원으로…

박용국/ 영광신문 사외 논설위원, 통일부 교육위원

2011-09-02     영광신문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드나들다 보면 그때마다 ‘하이패스는 나무 한 그루’라는 메시지가 전광판에 나타난다. 하이패스카드를 쓰지 않고 통행료를 직불(直拂)하려면 잠시 엔진을 가동한 상태로 정차하게 되는데 그 짧은 시간에 배출되는 탄소량이 나무 한 그루가 흡수․정화할 수 있는 탄소량이 다 된다는 이야기이다. 즉 하이패스카드를 사용하면 정차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탄소 배출이 저감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하이패스카드 사용 홍보 표어(標語)이다. 그러나 거기에서는 또 나무가 갖는 환경정화 능력을 상기시키는 의미도 읽히고, 자동차 등 각종 문명이기(文明利器)의 혜택을 누리고 살자면 그만큼 환경 문제에 대해서도 유의해야 한다는 이야기로도 해석된다.

숨이 막힐 정도로 불볕이 내리쬐는 여름날, 마을의 정자나무 그늘에 들어서면 그 이상 시원할 수가 없다. 에어컨이나 선풍기 바람과는 또 다른 차원의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수 많은 나뭇잎들이 그 뜨거운 태양열을 차단해 주기 때문이다. 나뭇잎들이 태양광 에너지를 광합성(光合成) 에너지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만약 어느 과학자가 그 열차단효과와 광합성효과를 전력에너지 양으로 환산해 본다면 그 양은 과연 얼마나 될까? 모르면 몰라도 하이패스카드 하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막대한 전력량으로 환산될 것이다.

동․ 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에게는 나무나 숲에 대하여 경외심(敬畏心)을 갖는 문화(文化)가 전해져 온다. ‘나무나 숲에 정령(精靈)이 깃들어 있다’ 생각하고 보호․숭배해 온 것이다. 우리 땅에서도 그러한 수목문화(樹木文化) 유산은 어디서나 찾아진다. ‘마을을 수호하는 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고 매년 정월 대보름이면 줄다리기 줄을 감는 등 고사(告祀)의 대상이 되기도 한 당산나무가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옛 사람들이 당산나무를 보호하고 숭배해온 동기가 서두에서 이야기 한 환경정화 기능성이나 자원으로서의 유용성 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는 없다. 그냥 인습(因襲)으로, 감성(感性)으로 그래왔던 것이다. 다만 예부터 그래왔으니 그대로 따르고 그러는 과정에서 옛 사람들이 가졌을지도 모르는 지혜나 심미안 등을 새롭게 발견해 가는 것이다. 결코 전통문화를 비과학적인 미신이나 우상숭배라 단정하거나 배척하지 않는 것이다.

당산나무 수종으로는 느티나무, 팽나무, 감나무(柹木) 등이 주종을 이루고 소나무, 회화나무도 드물게 볼 수 있다. 당산나무는 마을에도 있지만 향교, 서원, 사우에도 있으며 개인집, 관청에도 있다. 우리의 역사 기록에는 벼슬을 받은 나무, 세금을 낸 나무도 나타난다. 우리 영광에 있는 수많은 당산나무 중에서도 법성포 숲쟁이의 느티나무 군락(수령 4백년 추정), 백수 홍곡리와 군남 용암리의 느티나무 군락(수령 4~5백년 추정), 군서 가사리의 회화나무(수령 3백년 추정), 향교의 은행나무(수령 6백년 추정), 묘량 매화촌 앞의 소나무 등은 각각 독특한 유래나 일화․설화를 보유하고 있고, 수령, 크기나 규모, 자태, 수종의 희귀성면에서도 단연 빼어남을 자랑한다.

당산나무는 ‘둥구나무’, ‘정자나무’와 같은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둥구(그네)를 매달아 두고 타는 등 그 밑에서 각종 민속놀이가 유희되었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일 것이고, 정자(亭子:건축물)가 아닌데도 그 밑에서 휴식이나 시․가(詩歌)등의 풍류 활동이 정자에서처럼 이루어진데서 비롯된 이름일 것이다. 1990년대 이후부터 ‘보호수 제도’를 마련하고 당산나무, 거목, 희귀목 등을 보호하게 된 것도 나무의 건강, 보호뿐만 아니라 거기에 깃들어 있는 문화적 가치를 유지․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본다.

추석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추석이 가까워지면 귀향객들이 들이닥치고 동구(洞口)의 당산나무는 그들을 맨 먼저 맞이할 것이며 그곳은 부모 형제들이 마중 나오거나 옛 친구, 친지들을 상봉하는 장소가 될 수도 있다. 금년 추석에는 마을별로 당산나무 밑에서 멍석 윷놀이라도 한판 거판하게 벌려 봄이 어떠할는지…아니면 ‘마을 콩쿨대회’나 ‘마을골목길 빼지 않고 돌아오기 경보대회’ 등 퓨전 향토문화라도 창조해 보는 것은 또 어떠할는지….

법성에서는 새로 조성한 인공섬에 출향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고향나무 심기’ 캠페인이 펼쳐진 사실이 있었다는데 역시 400년 전에 숲쟁이를 조성하고 오늘까지 지켜온 전통을 지닌 지역다운 발상이고 새로운 지역문화 창조이다. 먼 훗날 제2의 숲쟁이가 탄생될 것을 기대해 볼만 하다. 법성 진내리의 숲쟁이나 이웃고을 고창읍성 안의 소나무숲이 훌륭한 관광자원이고 이 고장의 뜻있는 청년들이 일찍이 8~90년대부터 조성한 불갑사 입구의 벚나무 가로수가 관광자원화 되어가는 사실도 상기해 볼 일이다. 근년에 군청에서 조성한 학정사거리와 꽃동네 소나무 숲이 몇 십 년이 지난 후 옛 ‘영광8경’에 나오는 관람산의 노송(老松)역할을 재현해 낼 수도 있음을 기대해 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