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을 떨쳐버리는 현명한 학부모
박자이 / 영광신문 편집위원, 통일부 교육위원
지금의 30대, 40대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던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동네 놀이터와 골목길에서는 ‘까르르’ 웃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녁 먹어야지’하며 아이들 손을 끌고 집으로 들어가는 엄마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하면 그날 하루가 또 저물어간다는 신호였다. 그때는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도 그리 많지 않았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받침 없는 한글 정도와 열 손가락 이내에서의 덧셈 정도만 익혀두면 충분했다. 입학 후에도 저학년 때는 공부에 대한 부담이 별로 크지 않았다.
그런데 1990년대에 들어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미취학 아동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영어나 수학 심지어 논술까지 가르치는 학원과 과외가 성행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우리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기가 무섭게 학원과 과외를 돌아야 했고 골목길과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졌다. 아이들의 생애 첫 공부는 학원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초·중·고등학교 12년 내내 사교육을 받는다. 그러다보니 공부는 당연히 학원에서 하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그저 학원 선생님이 외우라는 것만 외우고 풀라는 문제만 푼다. 교과서를 들고 학교에 다니기는 하지만 선생님이 설명해주지 않으면 혼자서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학원이나 과외를 중단하면 점수가 떨어지고 다시 사교육을 받으면 반짝 점수가 오른다. 그래서 사교육 그만두는 것을 학교 안 다니는 것보다 두려워한다. 학교 선생님의 설명보다 학원 강사의 족집게 강의에 더 귀를 기울인다. 학교 수업 시간에 학원 숙제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결과이다. 훌륭한 인성이나 가치관 따위는 차치하고라도 평생 사교육에 의존해서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다면 눈물을 머금고라도 우리 아이들을 사교육에 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학원과 과외 공부에만 의존한 아이들이 희망하는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런 아이들은 대부분 중간에 지치거나 흥미를 상실하고 만다. 중학교 때까지는 그럭저럭 성적을 유지할 수도 있지만 고등학교에 가면 성적이 여지없이 곤두박질치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이면 마땅히 갈만한 대학을 찾지 못하고 자괴감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교육은 중독이다. 갈수록 의존성은 커지고 효과는 떨어진다. 끊으면 큰일날것 같은 두려움을 떨칠 수가 없다. 부모의 욕심도 문제다. 엄마들은 아이가 걸음마를 떼기 전에 보행기를 태운다. 보행기를 타고 다니며 다리의 힘을 기르면 더 빨리 걷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런데 아이가 걷기 시작했는데도 보행기를 계속 태운다면 어떻게 될까? 이때부터 보행기는 아기의 다리 힘을 약화시키고 발육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변한다. 그럼에도 아이가 넘어지는 것이 안타까워 계속 보행기를 태운다면 아이는 끝내 혼자서는 걸을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한창 뛰어놀아야할 나이에 부모님의 등쌀에 못 이겨 사교육 시장으로 내몰린 아이들, 그런데 이런 사교육 순례가 과연 부모들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다줄까? 부모들의 기대와는 달리 너무 어린 나이부터 과다한 사교육을 받는 아이들 가운데 학습능력이 향상되어 성적이 오른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체로 사교육은 자율적인 학습 습관 형성에 방해가 된다. 오히려 너무 일찍 공부에 질려버려 스스로 학업을 수행하려는 의지를 상실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공부에 대한 자기 부정과 공포심에 사로잡힐 가능성도 높다.
공부를 잘 하려면 무엇보다 ‘스스로 학습’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스스로 학습’은 자신의 현재 학습능력을 직접 진단하고 거기에 맞는 목표를 설정해 적절한 학습 전략을 시행하며 스스로 학습의 성과도 측정하고 평가하는 과정이다. 한마디로 주체적인 탐구학습 과정 이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 하는 공부가 중요하고 학습 능력 향상은 흥미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우리 학부모들은 공부하는 이유도 모르는 아이들을 끌고 사교육을 찾아다닌다. 알면서도 이러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아이들은 다하는 데 내 아이만 가만있으면 불안하다’는 이른바 ‘이웃집 현상’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나 우리 부모들은 현명해야 한다. 그 불안을 떨쳐버리지 않으면 더 큰 과오를 범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열 시간의 ‘타율학습’보다 한 시간의 ‘자주학습’이 아이들의 미래를 밝게 해준다는 사실을 마음속에 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