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의 언어순화” 어른들이 본을 보여야…
박용국/ 영광신문 논설위원, 통일부 교육위원
필자는 교직에 있을 때 학교마다, 지역마다 학생들의 언어문화에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음을 실감한 바 있다. 당시 내 나름의 비교 기준은 학생들의 욕설, 비속어 사용 빈도였는데 근무했던 14개 초등학교 학생들의 언어문화는 같은 영광군 안에서도 마을과 가정의 언어문화와 무관치 않은 차이가 있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의 언어문화는 어른들의 언어문화를 비추어주는 거울이 아닌가 싶었다.
요즈음 학생들의 일상 언어문화에서는 그 동안 학교에서 언어문화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옛날보다 더 욕설, 비속어가 늘었으면 늘었지 결코 줄어들었다 할 수 없는 현상들이 너무나 많이 목격된다. 나는 몇몇 중등학교와 멀지않은 곳에 살기 때문에 우연히 하교하는 학생들의 뒤를 따라 걷다가 본의아니게 가끔 그들의 대화를 듣게 되는데 그 때마다 ‘심각하다’는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말끝마다 비속어와 육두문자 욕설을 따라 붙이기 때문이었다.
에둘러, ‘자기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비속어인지 아닌지‚ 욕설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 알고서야 저럴 수는 없다’고 스스로 걱정을 다스려 보았지만 마음이 개운치는 않았다. ‘어디서 누구한테 배운 언어일까? 왜 저런 언어가 몸에 베이게 되었을까? 인터넷이나 메스컴 영향일까?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말싸움, 몸싸움을 보고 배운 것일까? 아니면 부모님들과 지역사회의 언어문화가 그대로 반영된 것일까?’하는 갖가지 의문과 개탄을 떨쳐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청소년들이나 젊은이들은 정열이 넘치고 솔직담백하기 때문에 때에 따라서는 말투가 어느 정도 격렬해 질 수도 있고, 애교스런 과장이나 비약이 오리혀 정감을 높혀주느 계기를 만들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작금의 청소년 언어문화 현실에서 비속어와 욕설 사용 정도는 도저히 애교로는 보아줄 수 없는 심각한 수준에까지 와 있다. 또레들의 놀이터에서 있음직한 직설적인 언사나, 예비군 훈련장에서 나타나는 장난끼 있는 언사처럼 애교로 보아줄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버린 것이다.
옛말에 이르기를 ‘칼로 베인 상처는 치료하면 아물 수 있지만, 말로 베인 상처는 평생 아물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최근의 하버드대학 연구보고서에서도 ‘어릴 때 심한 욕설을 들으면 뇌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남는다’는 결론이 나온 바 있다. 언어가 한 사람의 인격을 만드는 중요한 사회적 도구임을 깨우쳐 주는 말들이다. 오늘날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폭력이나 따돌림 등의 근절도 언어문화의 개선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시사를 주는 말들이다. 언어는 사용하기에 따라 정보나 감정의 교환 수단이 될 수도 있고 흉기보다 무서운 폭력 수단이 될 수도 있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청소년들의 언어순화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도해 볼 수 있다. 각종 캠페인 전개, 칭찬하기나 선플달기, 카운슬링을 통한 감정 다스리기 훈련 등 얼마든지 많고 좋은 대책들이 나올 수 있고 실행하기에도 까다롭거나 어려울 것이 별로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무리 좋은 대책을 강구해도 가정과 사회의 언어환경 개선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도로아미타불이 된다는 것이다. 언어구사는 고도의 지적 행위요 감정 표현 행위이면서도 환경의 영향을 받은 습관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사회가 청소년 언어 순화 캠페인을 소홀히 해온 것도 아닌데 왜 청소년 언어문화는 시대가 바뀔수록 거꾸로 점점 비속해지고 각박해져 왔을까? 그 대답은 명확하다. 언어문화 순화를 설득하고 강요했지만 정작 언어환경은 점점 비속해지고 각박해졌기 때문이다. 부모들과 사회 지도층이 모범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언어순화 교육과 언어환경 제공이 정반대로 치달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교육 받은 것보다 어른들의 행동을 본받았고 그 것이 습관화 되어버린 것이다. 가정에서의 가족간 대화, 사회에서의 어른들의 말투가 아이들의 가슴과 머리에 그대로 각인되었고 동료간에 그대로 투사된 것이다.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들을 미래의 희망으로 여기지 않는 사회가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생각이나 바램보다는 본을 보여주는데 있다. 어른들은 서산대사의 말씀 ‘눈내리는 벌판을 걷더라도 어지럽게 걷지 말라. 그 발자욱이 뒤따라 오는 사람들의 길잡이가 되리니’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볼 일이다. 학생들의 언어순화가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폭력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는 희망과 부모님들의 언어순화로부터 아이들의 인성교육을 시작해야 한다는 사고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결국 가정과 지역사회 언어문화 개선이 아이들의 언어순화를 가능케 하고 바람직한 인성을 키우는 실질적 방안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