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피 속에 녹아 흐르는 몸짓을 흔들어 깨우는 가락

모두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신청(神廳) 걸궁, 우평 마을 굿판

2012-11-08     영광신문

강구현/ 칠산문학회장, 영광신문 편집위원

도깨비 제사(請神)를 필두로 문굿(迎神) 당산굿(娛神) 줄굿 헌식상 샘굿 돌당산굿 마당밟기(성주굿 조앙굿 정지굿 장광굿) 판놀음(娛神) 날당산굿(送信)으로 이어지는 신청 걸궁, 우평마을 굿판은 가을걷이를 끝내고 천지신명께 감사의 제사를 올리며 마을과 각 가정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우리 민족 고유의 원형을 간직한 공동체 놀이판이다. 그러나 이 놀이판은 단순한 제례의식이거나 공연 차원의 형식에 얽매인 한계성을 뛰어넘어 인간의 피 속에 녹아 흐르는 원초적 몸짓을 춤사위로 끌어내는 신명의 판이고 인간의 몸과 마음 속에 내재 된 무한 에너지를 가장 자연스럽게 발산해내는 생명예술이 정점에 다다른 최고의 놀이판이며 인간의 원형질을 고스란히 재현해내는 자연현상의 일부이다.

삼현육각의 선율을 타고 끊어질듯 이어지는 소고놀이의 춤사위는, 마치 살랑살랑 불어대는 봄바람에 몸을 내맡긴 버들가지가 있는 듯 없는 듯 하늘 한 자락을 휘감았다 놓았다 꺽이다가 휘어지다가 하늘로 솟구치다가 땅으로 내딛다가를 되풀이하듯, 충만한 생명의 끝없는 몸짓으로 이어진다.

저돌적으로 판을 끌어가는 쇠소리, 섬세하고 간드러지는 조잘거림으로 판의 사이사이를 휘젓는 장고소리, 땅 속 저 깊은 곳에서 울어대며 산을 넘고 허공 저 멀리로 퍼져가는 장중한 북소리, 백수의 왕 사자가 포효하듯 모든 소리들을 아울러서 간간히 울어대며 시공을 초월한 듯 한 울림으로 가슴을 파고드는 저 육중한 징소리.....그 소리들의 가락을 타고 어우러지는 잡색들의 풍자와 해학 그리고 신명과 넘쳐흐르는 힘....

보는 이와 공연자가 따로 없는 이 판놀음 속엔 인간 내면의 모든 것이 한꺼번에 녹아 흐른다. 아직 고등학생 정도 밖에 안 될 것 같은 소녀가 흥에 겨워 춤판에 어울려서 저 자신도도 모르게 춤사위로 신이 나고, 여섯 살짜리 꼬마는 엄마와 함께 팔장을 끼고 돌며 폭댄스가 한창이다. 뿐만 아니라 그 춤 판 속에서는 우리의 춤만 출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요즘 유행하는 가수 싸이의 말 춤도 람바다도 마카레나도 지루박이나 탱고 블르스도 폴카도 아프리카 원주민의 원시성과 남미의 쌈바도... 전 세계의 어떤 춤도 어색하지 않게 함께 어우러질 수 있다.

모두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이 굿판에서는 그 어떤 권위나 지위도 필요 없고 점잖이나 체면, 형식 등 겉치레가 불필요하다. 옆에서만 지켜보던 이장님도 마을 어르신도 몸이 불편한 할매도 유치원생도 지엄하신 선생님이나 훈장님도...하나같이 그 선율을 견딜 수 없어 저절로 함께 어울릴 수 밖에 없다.

자신과 마을의 안녕 등 주변 모두의 소망을 기원하며 마지막에 한 판 흥겨움의 마당으로 어우러지는 판놀음 속에서는 삶의 모든 희노애락이 참가자 모두의 또 다른 삶의 가치로 승화되며 미래를 향한 신념으로 재창출된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신청 걸궁 판굿은 어떤 이념이나 종교보다도 현실적이며 합리적이고 자연발생적이라 할 수 있다. 미신이 아닌 인간 의지로써 맹목적이지 않으며 스스로의 소망을 스스로 풀어가고 성취해나가는 에너지가 충전되는 그런 판이기 때문이다.

영광의 빛을 불러오는 우도농악단(보존회장 최용)이 그 맥을 이어 기획주관하고, 판의 어울림을 한층 고조시키기 위해 우정출연을 해준 통영오광대(보존회장 김홍종)와 전국 각처에서 달려온 꾼들, 삼현육각 연주 팀, 창극팀 그리고 마을 주민들과 영광의 각 예술단체(문학, 사진, 서예, 미술, 도자기...등) 회원들과 외지에서 자발적으로 찾아 온 수많은 사람들.....모두 함께 어우러진 신청 걸궁, 우평마을 굿은 이제 우평 마을을 훨씬 뛰어넘어 전 국민에게로, 전 세계인에게로 퍼져나가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그렇게들 모두모여 신이 났는데도 지체 높은신(?) 분들의 얼굴이 하나도 안 보인다. 선거철 되면 애써서 표 얻으러 다닐 필요 없이 이렇듯 신명나는 판 속에서 같이 어우러지면 말로만의 소통이 아닌 가슴과 가슴의 소통이 이루어져서 표가 장대비 오듯 쏟아질 것이건만 쯪쯔... 아마도 한 쪽 구석에서 지켜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몸이 들썩거리니 그 신명을 견딜 수는 없고, 점잖은(?) 체면에 나설 수는 없고 그래서 살짝 빠져나갔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