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인의 겨울 노래

강구현/ 칠산문학회원

2012-12-14     영광신문

지금 한국에 폭설이 내리고/온 몸에 피멍 든 강산들 파묻히네/고개 숙인 잿빛 하늘/무덤 같은 지붕에 입 맞추고/맥없이 주저앉은 굶주린 소들 곁으로/다정하게 어둠이 다가 서네// 국민을, 나라를, 미래를/아무도 걱정하지 않는 겨울 밤/ 인적이 끊긴 백야의 도심을 바라보 는/빙그레 웃는 저 자(者)는/누구의 망령을 빙의 했는가//싸구려 외투 깃을 세우고/버스 기 다리는 음화(陰畵)같은 사내여,/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전대미문의 협잡꾼을 믿었으니/할 말이 있을리 없겠지/그대의 이번 후회 얼마나 갈까//수십 번. 수십 수백 번을/양치기 소년 들에게 속았어도 또 속는/때늦은 후회마저/재빨리 잊는 미덕(美德)을 발휘하는/우중(愚衆) 이 설치는 나라//지금 한국에 눈 내리고/장작 몇 개비도 준비하지 못한/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겨우 목숨 붙은 것들을 덮치고 있네/거대한 투망 같은 어둠은-윤석진 “한국의 겨울” 전문-

광주의 모 대학에서 중국어를 가르치는 친구 석진이가 몇일 전에 쓴 것이라며 보내온 시(詩 )다. 읽어보니 눈물이 난다. 열이 오르고 부화도 치민다. 여러 가지 걱정도 앞선다. 선거가 끝나면 이 나라 국민들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슴을 치며 후회 할까? 그리고 얼마나 편안한(?) 망각 속으로 빠져들까?

애써서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기억하지 않으려는, 또는 정말로 망각의 달인(?)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우중들을 앞에 두고 양치기 소년들은 화려한 거짓말들로 현혹하고 있다. 지키지 못할, 지키지 못할 수밖에 없는 공약(空約)의 난무.....이 추운 혹한의 계절에 몸뚱이 하나 건사할 수 있는 장작 몇 개도 준비 하지 못한, 그래서 내일도 기약할 수가 없고, 겨우 겨우 목숨만 부지해가고 있는 대다수 약자들의 삶과 고통 위로 화려한 말빨의 공약(空約)들은 폭설로 내려 쌓이며, 그들의 목줄을 더욱 옥죄며 그러니 나를 선택하라고 협박하고 있다.

열심히 살았건만 어쩌다 한 번 잘못된 결과물로 남은 것이 신용불량자라는 낙인, 그들에게 이 나라는 더 이상 삶의 현장이 될 수 없다. 그들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그 흔한 핸드폰 하나도 자기 명의로 살 수가 없고, 정부가 지원해준다는 수 천 수 만가지의 융자 보조 혜택도 생각조차 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그들이 어쩌다 과태료나 세금 한 번 밀리면 어김없이 최고장이 날아들고 없는 재산에 가압류니, 구류니, 사회봉사 명령이니 하는 따위의 협박장으로 으름장을 놓으며 숨도 못 쉬게 한다. 그런 그들의 대물림이 예견되는 절망을 두고 양치기 소년들은 어느 누구 하나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쪽수가 얼마 안 될 뿐만이 아니라 괜히 말 한번 꺼냈다간 사회적 논란만 가중시키고 머리만 아파질 테니까? 진짜 양치기는 우리 속의 99마리 양보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서 황야를 철환했다는 교훈도 있는데....

인적이 끊긴 백야의 도심을 바라보며 자조하는 디오게네스여!

우울한 음화처럼 눈 내리는 밤거리를 방황하는 중년의 고독한 양심이여!

너무 상심하지 마시게나. 그래도 지금은 과거처럼 산란계, 육계, 삼계, 오골계로 구분되어 지역 패권주의에 휘말린 양계장 선거 형국은 벗어나지 않았는가? 비록 유력 대권주자들이 한 지역에 편중되어 있어서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그 망할놈의 지역감정의 대립보다는 여(與)와 야(野),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라는 그럴싸한 외모는 갖추지 않았는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그 시절 그 노래, 지금은 아무도 부르지 않는 그 노래, 언제나 우울한 예측이 어쩌면 잘도 들어맞기만 하는 이 시대에 늘 혼자서 몸부림치는 외침이여! 절규여!

비록 그대 혼자일지라도, 그대가 부르는 그 노래 가락은 이 시대 이 강산 방방곡곡에 여울져서 이 추운 겨울 눈보라 속에 떨고 있는 가난한 자들의 가슴이라도 뜨겁게 달굴 것이며 그렇게 이어지는 노래는 거대한 합창이 되어서 이 얼어붙은 겨울 하늘에도 자스민 향기 가득 뿌릴 것이네.

아무런 조건도 없이, 이해타산도 없이, 바보처럼 젊음의 열정을 불태우던 그때가 가장 빛나던 생의 한 때였노라고,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이었노라고 추억하면서도 모두들 떠나고 없는데 나만 혼자 남아서 아직도 못다 부른 그 노래를 바보처럼 부르고 있노라고, 과연 이런 내가 제대로 사는 것인가? 라고 고민하지 마시게. 까짓 거 이 넘치는 세상에 굶어죽기야 하겠는가? 그래도 그대 삶 속엔 아직 목숨 같은 시가 있고 노래가 남아있거늘, 모순이 깊을수록 그대의 시는 더욱 빛나리니 그렇게 끈질기게 함께 견디어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