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한 지식인들의 출현을 막으려면
박자이/ 영광신문 논설위원
“품행이 단정하고 학업성적이 우수하여……” 이는 1980년대 이전까지 각급학교의 종, 졸업식에서 소수의 학생들에게 수여되었던 우등상장의 문구이다. 그 때는 학기, 년도 단위로 학생 개개인의 품행과 성적을 평가하고 그 결과를 학급, 학년 구성원들과 비교하여 상위 5~10%에 해당하는 학생에게 우등상을 주었다. 품행이 단정해도 학업성적이 뒤지거나, 학업성적이 우수해도 품행이 단정하지 못하면 우등상을 받을 수 없었다. 간혹 공부만 잘하면 우등상이 주어지기도 했지만 우등상장 문구는 수장자로 하여금 행동을 단정히 하고 선행도 실천해야 한다는 의지를 다지게 할 수도 있다고 믿었다.
1980년대 초 이후 우등상은 학교에서 사라졌다. 학교에서 주어지는 상은 선행상, 근면상, 봉사상, 공로상, 학업성취상, 학업진보상, 특기상… 등으로 분화되고 다양화 되었다. 많은 학교에서는 졸업생 전원에게 각기 다른 명목의 상을 주기도 했다. 학생 개개인의 행동 특성과 학업성취 형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상을 준 것이었다. 학생들의 개성을 존중하고 보다 많은 학생들에게 스스로 발전하고자 하는 동기를 심어주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사회는 그동안 어떠한 교육시책이나 개혁방안도 취지를 살려 받아들이지 못했다. 교육 현장에서는 오로지 입시교육과 취업교육만 행해지고 있을 뿐이었다. 초등학생에서 대학생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학생들은 지식 습득과 스펙 쌓기 경쟁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유아원, 유치원 어린이들까지 선행학습 경쟁에 빠져들었다. 뜻있는 인사들의 인성교육 회복 호소도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인성교육 프로그램은 시행되지 못했다. 오히려 도외시 되고 배제되기까지 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교육을 본받자"고 했고,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력이 세계 최고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이는 지식과 학력에 대한 찬사요 진단일 뿐이었다. 인성교육 부재는 우리 사회를 병들게 했고 그 증거는 최근 들어 부쩍 많이 나타났다. 이대로 간다면 앞으로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그치지 않고 있다.
광복 이후 우리의 부모들은 보릿고개를 견디면서도 소 팔고 논 팔아 자녀 교육을 시켜 유능한 지식인과 기능인으로 길러 냈다. 그러나 요즘 들어서는 성폭행, 뇌물 수수, 독직, 횡령, 논문표절, 언어폭력 등에 유능한(?) 지식인들이 적지 않게 나타나기도 했다. 그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 나오고, 어렵다는 시험을 통과하기도 하고, 높은 학위도 받은 최고의 지식인이었다는 사실에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폭력배와 다를 바 없다. 자신들을 키워준 사회의 은혜를 외면하고 사회적 책무감과 분수를 망각한 오만한 지식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인터넷이나 SNS 상에서는 별의별 언어폭력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들의 언어폭력은 매스컴을 통해 가감 없이 중개되기도 하고 보도되기도 한다. 언어폭력은 모든 폭력의 불씨가 되고 사람의 영혼까지 파괴하는 무서운 무기가 될 수도 있으니 신중하게 대처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는 그들을 철저하게 외면해야 한다. 상대할 필요도 없고 관심을 보일 필요도 없다. 제 풀에 겨워 수그러들게 해야 한다. 시민들은 결코 그들의 선동에 부화뇌동하지 않아야 한다.
오만한 지식인들의 출현을 막는 방법으로는 인성교육 강화 외에 길이 없다. 국가, 지역사회 지도자들은 국민과 시민들의 마음에 신뢰를 심어 주어야 한다. 학교는 인성교육 프로그램 시행 비중을 높여야 한다. 가정에서는 어른들이 몸소 수범 생활을 실천하여 아이들의 본이 되어야 한다. 아이들은 지시하거나 가르치려 들면 싫어하고 피할 수도 있지만, 본을 보이면 따라 한다고 했다. 사투리를 쓰는 부모와 살면 사투리를 배우지 않던가. 아이들의 인성은 함께 사는 부모님을 본받을 뿐이다. 인성교육은 사회, 학교, 가정이 하나가되어 추진해야 한다. 셋 중 어느 하나라도 무너지면 전체가 무너진다.
2013년 새해에는 더 이상 오만한 지식인들이 출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국가와 지역사회 하늘에 화해와 화합의 해가 떠올랐으면 좋겠다. 인성교육의 빛이 우리 교육사회와 지역사회 지평에도 환하게 비추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