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이 오면 그대

강구현/ 칠산문학회장, 영광신문 편집위원

2013-09-13     영광신문

척박한 삶의 현장에서 님이 보내주신 문자메시지가 내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 것도 거친 파도와 싸우며 조업을 하던 도중 잠깐 틈을 내서 들여다본 손전화에 찍힌 님의 마음, 상투적인 안부를 묻는 것이거나 인사치레로 보낸 것일지라도 반가울질데 좋은 시 한 편으로 님의 마음을 대신해서 보내준 것이었기에 그 고마움과 감동은 배가 되었습니다.

그대/구월이 오면/구월의 강가에 나가/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뒤따르는 강물이/앞서가는 강물에게/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 주면/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한 번/더 몸을 뒤척이며/물결로 출렁/걸음을 옮기는 것을/그 때 강둑 위로/지아비가 끌고 지어미가/미는 손수레가/저무는 인간의 마을을 향해/가는 것을//그대/구월의 강가에서 생각하는지요/강물이 저희끼리만/속삭이며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젖은 손이 닿는 곳마다/골고루 숨결을나누어 주는 것을/그리하여 들꽃들이 피어나/가을이 아름다워지고/우리 사랑도/강물처럼 익어 가는 것을//그대/사랑이란/어찌 우리 둘만의 사랑이겠는지요/그대가 바라보는 강물이/구월 들판을 금빛으로 만들고 가듯이/사람이 사는 마을에서/사람과 더불어 몸을 부비며/우리도/모르는 남에게 남겨 줄/그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을/구월이 오면/구월의 강가에 나가/우리가 따뜻한 피로 흐르는/강물이 되어/세상을 적셔야 하는 것을-안도현 시 구월이 오면전문-이낙연 올림

칠산바다에서 꽃게잡이 조업을 하고 있는데 우리지역 이낙연의원님이 보내주신 문자메시지다. 정치를 하는 분이기에 어떤 목적이 개입돼있거나 지역구 유권자중 한사람이라도 관리하고자 하는 차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설령 그런 이유에서일지라도 한 편의 좋은 시를 인용해서 보내준다는게 얼마나 멋진 일인가? 또한 여러 가지 바쁜 일정을 소화해내기도 벅찰텐데 어느덧 바뀐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고 그 계절을 알리는 전령으로서 타인을 생각할 여유가 있고 계절 감각을 만끽할 수 있는 망중한(忙中閑)이라니....

이렇듯 우리들 삶을 가만히 되돌아볼 수 있는 생각을 갖게 하는 시 한편을 누군가에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은 받는이로 하여금 보내준 자에 대한 인간적 믿음을 갖게 한다. 시 자체도 좋지만 그 시 속에 내재 된 작은 나눔과 사랑의 본질을 알고 타인에게 전해줄 수 있는 사람 또한 시의 내용과 똑같은 정서가 마음속에 간직돼있고 이미 그 시에 동화(同化)되어있기에 타인에게도 전해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메시지를 받는사람도 행복하지만 보내는자의 마음은 더 행복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구월이 오면/구월의 강가에 나가/우리에게 따뜻한 피로 흐르는/강물이 되어/세상을 적셔야 하는 것이다.” 발신자는 어쩌면 그 시처럼 살고자 자신에게 다짐하고 있음을 수신자가 느낄 때 그에 대한 신뢰는 더욱 견고해진다.

공자께서(시경)삼백편을 한마디로 말하면 사악함이 없는 것(詩三百 一言 蔽之曰思無邪)”이라 말씀하셨다. 우리들의 일상이 늘 시처럼 살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 시를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인생을 관조할줄 아는 지혜를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시의 효용성을 말할 수 있다.

세상은 만물의 여인숙이고 세월은 쉬지않고 가는 나그네이던가? 계절은 어느덧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9월이다. 9월은 여름을 마무리하는 햇살과 함께 오곡백과가 알알이 영글어가는 계절이며 민족의 대 명절인 추석이 들어있는 달이다. 그래서 우리들 마음도 조금은 더 풍성해지고 여유로와지며 넉넉해져가는 그런 달이기도 하다. 그렇듯 우리들 삶과 마음이 익어가는 이 계절과 더불어 이제 우리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보다는 사랑하는 일을, 누군가를 죽이려는 마음보다는 살리려는 마음을, 내 것으로 쟁취하려는 생각보다는 타인에게 베풀고자 하는 생각을 키워가야 할 계절이 바로 9월이다.

그동안 문자메시지에 대한 답장을 한 번도 못했는데 이번만큼은 답장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필자 또한 안도현 시인의 작품 너에게 묻는다라는 짧은 시 한 편으로 답장을 대신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너는 한번이라도 누군가에게 뜨거워본 적 있느냐?”

필자의 인용구도 “9월이 오면이라는 작품의 정서와, 추구하고자 하는 삶의 가치가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대상 역시 타인이기 이전에 나 자신이 먼저인 것이다.

이제 추석이 몇일 남지 않았다. 우리나라 모든 사람들이 오랜만에 만나는 정인(情人)들과 함께 초추(初秋) 양광(陽光) 한줌씩 서로 서로 나눠가지며 행복이 충만한 연휴가 되길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