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이성천/ 자유기고가

2014-01-10     영광신문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학교 현장에서 철저히 외면받고 있다. 고쳐도 계속 발견되는 무더기 오류 문제와 긍정사관·자학사관 극복이라는 명목으로 포장했지만 결국 친일·독재를 미화했다는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교과서는 지난해 8월 검정 통과 직후부터 수백건에 달하는 사실 오류가 쏟아졌고, 지난 달 민족문제 연구소가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분석한 결과 근현대사 관련 단원에서만 모두 400여건에 이르는 오류와 왜곡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이 교과서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기초해 일제지배를 미화하고 친일파를 옹호하며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고 있다. 또 부패한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의 독재를 미화하는가 하면 805월 신군부가 시민에게 발포한 사실 등을 언급하지 않았거나 처참한 피해 상황에 대해서 기술을 회피하는 등 사실상 5·18민주화운동에 대해서도 왜곡하고 폄하했다. 이 뿐 아니다. 임시정부 활동과 독립운동에 대한 내용도 축소, 누락하거나 사실에 기반하지 않는 왜곡들로 점철돼 있다.

다행히 전국 고교 가운데 교학사 교과서를 선택한 것으로 파악된 학교는 단 한군데도 없다, 다만 3월 개교를 앞둔 경기도 파주 한민고만이 남게 됐다. 친일과 군사독재를 미화하고 숱한 오류 논란에 시달린 교학사 교과서가 학교 현장에서 선택받지 못한 채 몰락한 셈이다.

일부 학교 현장에서는 교학사 교과서 채택 사실이 알려지기 무섭게 외압이 아닌, 학부모·학생들의 반발·저항이 시작됐고 자연스러운 채택 철회로 이어졌다. 그런데 교육부는,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했다 철회한 20개교를 특별조사했고 그 조사 결과, 외압이 있었다는 발표까지 하고 나섰다.

교학사를 채택하면 학교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이고 주변 반대의견을 수렴해서 철회하면 외압인가 묻고 싶다. 교육부 조사야말로 외압이며 협박이지 않는가?

일본에서 역사왜곡 교과서인 '후소사 교과서' 파동이 일었을 때 채택률이 0.039%에 불과했다. 자신들이 행한 식민통치를 미화하고 다른 나라를 침략한 행위를 찬양하는 교과서 채택이 극히 저조했던 이유는 일본의 양식있는 시민들과 학계의 반대 여론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 내각의 총리는 고이즈미였다. 그 또한 극우 보수인사였지만 그러한 결과를 겸허히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비하면 박근혜정부의 그릇된 역사인식과 왜곡교과서 봐주기는 가히 노골적이다. 독재자를 아버지로 둔 현 대통령에게 아부하려는 정부와 새누리당, 보수 진영의 협조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부실과 왜곡투성이라는 학계와 언론의 따가운 지적을 받으면서도 교학사 교과서 저자들은 역사학계 전체와 기존 교과서들을 좌파로 몰아붙이며 여전히 색깔론을 들고 나왔다. 물론 좌우이념적 성향에 따라 역사관은 다를 수도 있다지만 기록만큼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명확히 기술해야지 성향에 따라 왜곡해서는 절대 안될 일이다.

이렇듯 역사를 왜곡 집필한 뉴라이트 진영의 학자들과 이를 비호하는 현 정부의 행태를 좌시하거나 용납한다면 일본 극우세력들의 동아시아 역사왜곡을 비판해 온 우리의 건강한 역사의식마저도 점차 설자리를 잃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역사를 왜곡한 권력에게도 미래는 없다. 억지로 틀어막고 인위적으로 변화를 유도하면 물은 갈 길을 잃고 역류하고 만다. 지금의 교과서 논란은 소통부재인 권력의 아전인수에서 비롯된 것이다.

입맛대로 역사를 농단하고 싶어하는 자들에게 고한다. 언제까지 틀어막고 부인할 것인가? 쓰고 뼈아픈 과거에서 진정으로 해방되기 위해서는 결코 그 역사를 지우고 왜곡해서 될 일이 아니다. 겸허히 수용하고 그에 따른 준엄한 반성이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 나치독일을 청산하기 위해 뼈를 깎는 자기성찰로 일관했던 독일의 교훈을 또박 또박 다시 한 번 새겨 볼 때이다.